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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우간다) 선교보고 및 묵상 - 이윤재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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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163)

    우리가 교회다 (We are the church)

    교회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선교사들과 줌으로 공부하다가 책에 나온 사진 한 장에 주목하게 되었다. 르완다의 한 조각가가 'Giving and Receiving (다른 이름으로 The Exchanging of Gifts)라는 이름을 붙여 조각한 나무 조각상 사진이다. 책의 저자는 이 조각이 시집온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모습을 그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이 조각은 단순히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만을 표현한 것 같지는 않다. 교회를 주제로 한 내용을 다룬 만큼 분명 신앙과 교회에 관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나 생각했다.

     

    먼저 이 그림은 사람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둘의 관계가 어떤지 그림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만 왼쪽에 있는 사람이 쪼그려 앉고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무릎꿇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왼쪽이 연장자이고 오른쪽이 젊은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나는 내내 이 그림을 보면서 왼쪽을 하나님, 오른쪽을 사람으로 상정했다(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하여 영성과 교회에 대한 몇 가지 묵상의 씨앗을 얻을 수 있었다.

     

    먼저 왼쪽 사람을 보자. 그는 음식을 들고 상대방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다. 조금 자세히 보면 그는 음식을 두 손으로 꼭 들고 있는데 그림으로만 보면 상대방이 그에게 음식을 주는지 그가 상대방에게 음식을 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습으로 볼 때 그가 준비한 음식을 상대방에게 주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중요한 것은 그의 진지하고도 적극적인 자세다. 그는 상대방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상대방보다 낮은 자세로 그를 바라 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누구신가?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을 은혜의 하나님이라 부른다. 왜 은혜인가? 은혜를 나타내는 히브리어 '헷세드''구부리다, 굽히다'의 뜻이다. 은혜는 받는 사람이 구부리는 것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구부린다. 조각에 나타난 왼쪽 사람이 그렇다. 그는 자기의 소중한 것을 주기 위해 불편해 보일만큼 허리를 굽히며 그나마 두 손으로 음식을 공손히 들고 있다. 그의 구부러진 허리는 곧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저자세이다. 그의 굽혀진 자세는 바티칸 천정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그림을 떠오르게 한다. 하나님은 방금 창조한 흙덩이 아담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손을 뻗고 있다. 하나님의 뻗은 손은 지금 이 시간도 우리를 향하고 있다.

     

    다음으로 오른쪽 사람을 보자. 그가 보인 첫 번째 모습은 그가 무릎을 꿇고 있을 뿐 아니라 음식이 든 그릇에 손을 올려놓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무릎 꿇는 모습은 경건하다 못해 간절하다. 무릎은 항복과 염원을 담은 인간의 독특한 자세다. 그가 간절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결핍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시어머니든 남편이든 고대의 여성은 언제나 약자였으며 의존적이었다. 그가 과부였다면 그 결핍은 더 심각했을 것이다. 그의 결핍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 음식 위에 올려진 손이다. 그는 그에게 주어지는 음식을 거절할 여유도 힘도 없다. 그는 남의 도움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인가? 결핍적인 존재다. 자기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다. 그는 매일 그에게 필요한 것을 위하여 무릎 꿇을 수 밖에 없고 오늘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음식에서 손을 뗄 수도 없다. 그가 누구든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루터가 임종하면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거지다. 이것은 사실이다' (We are beggars. It is true). 이것은 평생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살 수 없다며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외치고 살았던 루터의 마지막 고백이요 또한 우리 자신의 고백이다.

     

    이 사람을 조금 더 자세히 보면 한 가지가 더 눈에 띄인다. 그것은 그의 몸이 상대방으로 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술의 균형을 위한 조각가의 기술일 뿐 아니라 인간의 이중적 실존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이다. 인간은 날마다 무릎 꿇어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산다. 그러나 그 하나님을 다 알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다.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과 멀리 있고 하나님은 전적 타자로 저만큼 있다. 하나님은 존 오트버그의 말대로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깝게' 계신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수록 하나님은 더 멀리 있는 것 같다. 모세가 시내산에 다가갈수록 하나님은 더욱 '흑암' 속에 계셨다. 이것을 하나님 쪽에서 '신비'라고 부른다면, 우리 쪽에서는 '피조물성' 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무릎꿇고 그에게 나아갈지라도 그를 온전히 알거나 그처럼 완전해 질 수 없다. 하나님과의 '거리' (59:2)는 우리에게 필연적이고 그 거리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성화와 성장의 출발점이 된다. 우리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갈망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의 과제는 평생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지만 혹시 다 이르지 못해도 상관없다. 하나님쪽에서 다가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본질은 무엇인가? 선물보다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어릴 때 우리는 부모가 주는 선물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우리는 부모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얍복강은 야곱의 일생의 분기점이었다. 얍복강 이전의 야곱은 하나님의 손만 바라보았다. 팟죽, 장자권, 라반의 딸들, 소떼, 양떼가 그것이다. 그러나 얍복강에서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얼굴(브니엘)을 보았다.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자 그는 하나님의 군대(마하나임)가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고(실용성) 유익하기(유용성) 때문에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 하나님을 우리는 로또 하나님 혹은 수퍼마켓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나를 위해 하나님을 믿는 이익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그와 함께 사는 존재적 관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안에는 온갖 좋은 선물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선물도 하나님 자신보다 크지 않다. 우리는 시123편의 종처럼 주모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제 오른쪽 사람을 중심으로 이 그림을 다시 보자. 인간으로 표상되는 오른쪽 사람은 왼쪽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 은혜의 특징은 한번 받으면 언젠가 되돌려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모습 그대로' (as we are) 받아 주시면 우리는 언젠가 '있어야 할 존재'(as we should be)가 된다. 음식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뿐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기도 하다. 이런 눈으로 음식을 다시 보면 갑자기 그릇이 텅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나님이 주실 때 그릇은 커 보였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때 그릇은 매우 작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을 두 손으로 정성을 다해 우리에게 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거기에 가볍게 한 손만 올리고 있다. 그나마 몸은 뒤로 바짝 쳐져 있어 마지못해 드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최선의 것을 드린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드린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헌신은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봉사와 희생은 얼마나 작은가?

    자신의 몸을 화해의 제물을 주신 분에 대해 우리는 오늘 무엇을 드리나? 우리가 드리는 것은 너무 작고 초라하다. 갑자기 한 어부의 기도가 생각난다. '하나님, 바다는 넓고 나의 배는 너무 작습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대단하게 일하고 몸을 바쳐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일은 망망대해에 떠 있는 작은 배에 불과하다. 그때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선교사 스터드(C.T Studd)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면 그 분을 향한 어떤 희생도 결코 크다고 할 수 없다' (If Jesus Christ be God and died for us, then no sacrifice can be too great for me to make for him).

     

    마지막으로 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두 사람이 보여주는 깊은 관계성이다. 두 사람은 그냥 그 자리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둘은 가운데 놓인 음식을 통해 필요로 연결되고 손과 발을 통해 체온으로 연결되고 마주 보는 눈동자를 통해 내면의 영혼과 연결된다. 이는 이 작품을 아프리카인이 만들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이 그림을 주변의 여러 아프리카 학생, 목회자, 신자들에게 보여주었더니 이들의 공통적인 반응은 이는 아프리카 특유의 관계성, togetherness를 보여준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이 관계중심적 공동체성은 그들 존재의 DNA로 삶의 구석 구석에 나타나고 그것은 또한 그들의 말, 사고, 행동을 통해 나타난다. '막대기 하나로 연기는 낼 수 있지만 불을 지를 수는 없다', '한 줌 나무로는 솥의 물을 끓일 수 없다'의 일상의 격언에서 부터 '내가 있어 우리가 있고 우리가 있어 내가 있다'(I am because we are, we are because I am)라는 '우분트', 나아가 '땅은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준 것이 아니라 자녀가 부모에게 쓰라고 빌려준 것이다'(The earth was not given to you by your parents, it was loaned to you by your children)는 자연에 대한 지혜 역시 함께 사는 이들의 공동체성으로 부터 왔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일까? 교회는 이들에게 건물이거나 신학이거나 조직이 아니다. 교회는 최고의 조상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큰 형님으로 성령님을 따뜻한 어머니로 서로 사랑하는 형제와 자매의 공동체다. 한 마디로 '우리가 교회다'. '그것'이 교회가 아니고 '사람'이 교회이며, '그들'이 교회가 아니라 '우리'가 교회고 ''가 교회가 아니라 '너와 내'가 교회다.

     

    그렇다. 우리가 바로 교회다(We are the church). 이것은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는 고백과 함께 2천년 교회사에서 교회에 대한 중요한 고백이다. 건물이, 제도가, 신학이, 심지어 목회자가 교회가 아니라 우리가 교회다. 이 땅에 생명의 밥으로 오셔서 피흘리신 화해자 그리스도가 있고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피 흘릴 준비가 되어 있는 형제와 자매가 있는 곳은 어디든 그리스도의 교회다. 그 교회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은 반드시 그 교회를 회복시키실 것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조각을 통해 하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 김수용2021.10.12 10:43

      할렐루야 목사님!
      오랜만에 묵상의 시간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과 저와의 관계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늘 받고자만 했던 나의 모습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오늘부터 그 말씀을 기억하며 겸손의 모습으로
      주님의 그 사랑을 채워보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복음에 앞장서시는 목사님의 사역을
      늘 중보하며 건강하세요 목사님..
      축복합니다. ^^

    • 나화영2021.10.12 22:28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윤재목사님 귀한 묵상의 글 감사드립니다.
      너무 값지고 귀한말씀 생명의 말씀을
      조각상을 통해서 깨닫고 은혜의 하나님사랑을 깊이 느낄수있도록 세밀하게 영적깨달음을 주신 존경하는 목사님 감사드립니다.
      방송설교를 통해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은퇴하시고 선교를 아프리카 우간다로 가셔서 예수님처럼 헌신하시는 우리목사님 기도로 응원합니다..
      더많은 하나님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해주세요.
      목사님하시는 아프리카선교사역과 건강과
      가정을 위해 먼곳이지만 성령의교통하심으로 날마다 중보기도하겠습니다~~^^
      목사님더욱더 강건하세요..



    • 이준원2021.10.13 10:16


      아프리카 선교사님이신 우리 이윤재목사님의 묵상은 참 특별합니다.
      일반적인 선교 활동 보고를 넘어서서 깊은 묵상으로
      그 아프리카 현장의 영적문제를 분석하시고 또 생각하시는
      깊은 마음을 느낍니다.
      단순히 물질을 전달해주는 것보다
      이런 깊은 영적 깨달음을 전달해주셔서
      그들이 스스로 복음의 능력 안에서 기쁨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심이
      진정한 선교사역임을 믿습니다.

      목사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모든 사역 위에 주님의 크신 도움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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