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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11.25 목 욥선생님의 행실을 존경하며 돌아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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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5 목 욥선생님의 행실을 존경하며 돌아보는 것! 욥기 31:1-23


    욥은 지금 자신의 살아왔던 믿음의 생애를 돌아보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고백합니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욥은 정말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음행도 저지르지 않았고 종들을 괴롭히지도 않았고 존중했으며 고아나 과부나 모든 어려운 이들을 최선을 다해서 도왔던 생애를 돌이켜봅니다. 욥 선생님 말씀에 거짓이 없을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따로 특별히 해석하지 않습니다. 
    [욥 31:1] 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2]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욥 31:3] 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욥 31:4] 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욥 31:5] 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욥 31:6] 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욥 31:7] 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욥 31:8] 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욥 31:9]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욥 31:10] 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욥 31:11] 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욥 31:12] 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욥 31:13] 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욥 31:14] 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욥 31: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욥 31:16] 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욥 31:17] 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욥 31:18] 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욥 31:19] 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욥 31:20] 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욥 31:21]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욥 31:22]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욥 31: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욥선생님의 당당함이 부럽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아무나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줄 알아 깊은 존경을 드립니다. 특히 타락해져 가는 이 세상 속에서 욥처럼 살아간 그 거룩한 수고와 노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배우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더 깊이 생각하고 싶은 것은 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자기 과시가 되고 공로의식이 되어 하나님께 그렇게 불평과 불만을 말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사실입니다. 욥은 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고 사람을 무시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그의 내면에서 자기 과시와 자랑과 교만이라는 무서운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겠죠? 물론 하나님을 두려워한 욥이 교만이라는 무서운 죄를 지었을 것 같지 않지만, 그러나! 깊이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 점에서 사도바울의 영적여정을 생각합니다.
    율법에 완벽하기를 원했던 사도 바울은 동갑 또래 중에서도 1등이 되기를 원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에도 경쟁심이 있어 1등이 되기 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런데 그것이 정말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의 의를 세우기 위한 열심이었을까요?
    훗날 사도바울은 깊은 영적 성찰을 통해서 자신의 열심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과시였고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남들에게 드러내려는 교만에 불과했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의義를 힘써서 방해한 죄를 짓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로마서 10:3] 하나님의 의義를 모르고 자기 의義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義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놀라운 사도바울의 자기 성찰의 깊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위대한 통찰이라고 믿습니다.
    더구나 자기의 열심히 오히려 힘써 하나님의 의義를 방해한 것에 불과하다는 깨달음, 바울의 위대한 자기 성찰을 생각합니다. 
    욥이 자기를 과시하기만 원해서 그렇게 바른 생활을 살고 이웃을 도왔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 벌 받을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욥 31: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그러기에 그는 보상에도 집착했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완벽하게 살았는데 당연히 복을 주셔야 하는데 복은 고사하고 오히려 고난이라뇨! 욥의 분노가 거기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정말 완벽했을까요? 
    교만이라는 무서운 죄는 없었을까요? 욥을 엘리바스나 다른 친구들의 말처럼 정죄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우리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정직한 겸손의 심정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을 세리와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자랑하며 정죄의 기도를 드리고 교만의 기도를 드렸던 바리새인보다 자신의 가슴을 치며 회개의 기도를 드렸던 세리의 기도를 더 소중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리고 인간의 내면을 보셨기에 예수님은 창기와 세리들과 어울리셨고 남편 다섯과 살았고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는 우물가의 여인에게 영혼의 관심을 베푸셨습니다. 간음한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살기 원하며 행실 바르게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의가 되지 않고 나의 자랑이 되지 않기 원합니다. 
    felix culpa 펠릭스 쿨파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복福된 죄罪라는 뜻입니다. 죄가 복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안되는 용어는 죄와 용서와 구원에 대한 깊은 통찰이 없이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이 맨 처음 말했다고 알려졌습니다만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가 그의 위대한 저작 [신학대전 神學大典 -숨마 테올로지카 Summa Theologica 1265-1274 "I, 1, 3, ad 3" ]에서 이와 같은 기록을 남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말한 고백이기도 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내가 완벽해서 아무 죄도 없으니 나는 하나님의 은혜도 구원도 용서도 필요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구원도 용서도 의미가 없습니다. 회개할 이유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이런 역설의 고백이 나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욥을 닮고 싶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노력하며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공로주의나 교만이나 과시주의가 아니기를 기도합니다. 그 어떤 선한 행위를 하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욥처럼 온전하게, 또한 더욱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생애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21.11.25 07:52



      욥을 닮고 싶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노력하며 살기 원합니다.
      그러나 공로주의나 교만이나 과시주의가 아니기를 기도합니다.
      그 어떤 선한 행위를 하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욥처럼 온전하게, 또한 더욱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는 생애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도우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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