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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토록 신상을 세우고 싶은 욕망
    첨부파일 3개
    11월 20일(금)  다니엘 3:1-12 / 느부갓네살이 세운 우상 신상 

     

     

     


    느부갓네살은 두라 평지에 대단한 크기의 우상 신상을 세웠습니다. 엄청난 크기의 금신상이었습니다. 높이는 27미터이고 그 너비는 2.7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모두가 와서 절하게 했습니다. 
    [단 3:1]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단 3:2]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을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게 하매 [단 3:3] 이에 총독과 수령과 행정관과 모사와 재무관과 재판관과 법률사와 각 지방 모든 관원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의 낙성식에 참석하여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앞에 서니라 [단 3:4] 선포하는 자가 크게 외쳐 이르되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언어로 말하는 자들아 왕이 너희 무리에게 명하시나니 [단 3:5]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절하라 [단 3:6]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라 하였더라 [단 3:7]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언어를 말하는 자들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자 곧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금 신상에게 엎드려 절하니라 [단 3:8] 그 때에 어떤 갈대아 사람들이 나아와 유다 사람들을 참소하니라 [단 3:9] 그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이르되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단 3:10] 왕이여 왕이 명령을 내리사 모든 사람이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엎드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이라 [단 3:11]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음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단 3:12] 이제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그런데 다니엘의 세 친구들로서 지방을 다스렸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신상 앞에서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풀무불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들은 살아나는 기적을 보이게 됩니다.
    먼저 왜 느부갓네살은 그렇게 신상을 세우고 싶어했는지 생각합니다. 학자들은 그 신상의 얼굴이 느부갓네살의 얼굴을 닮게 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남기고 싶어하는 인간의 모든 집착이 그렇게 큰 것이었습니다. 
    바벨의 욕망이 다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שֵׁ֑ם 셈! a name 이름을 날리고 남기고 떨치고 싶은 욕망이 바벨의 욕망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속에 있는 느부갓네살의 욕망을 좀 점검해보려고 합니다.
    모든 인간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합니다. 죽기 전에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고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잊혀지지 않는 것이 내가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름에 대한 집착은 이토록 강한 것입니다. 
    업적과시, 공적과시, 자기과시- 보상심리- 댓가를 받아야는 것! 참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인간의 본능입니다. 
    모든 인간 집단의 갈등과 싸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복잡한 모든 갈등관계를 열고 들어가보면 결국 날 알아달라, 나를 더 알아주고 인정해달라, 내가 너보다 높다, 내가 너보다 옳다, 내가 너보다 강하다, 내가 너보다 위다!라는 경쟁 갈등입니다. 평생 이것과 싸웁니다. 
    무능한 것도 문제이지만 과시욕 또한 역사의 방해물입니다. 모든 동상, 기념탑, 기념물에 대한 논쟁이 지금도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인들까지도 이런 무의식의 과시욕에 이끌려감을 경고합니다. 
    [마6: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6: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마6: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6:16]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칭찬과 격려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강단에서 칭찬을 좀 많이 하는 것은 모두의 숨겨진 수고를 축복하고 싶기 때문이며 또 숨겨진 능력을 격려하여 더욱 발휘하게 하고 싶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을 세우는 것으로 오해 받을 때가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똑같이 격려받고 발전하고 성장하고 세워지고 아름다워지기를 위해 늘 격려하고 칭찬하고 축복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교만해지지 않고 분명히 자기자신을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데 그것을 우리는 겸손이라고 부르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도 자기 의가 되기 쉽습니다!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믿음을 바라보며 그열심이 하나님의 의義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결국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자기 의義의 과시였을 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 
    [롬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은 그래서 고백합니다.
    내가 남보다 수고를 많이 했다는 것을 솔직히 말하고 싶습니다. 나 남보다 더 수고한 것 같긴 합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시는 은혜로 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겸손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때로는 사람들이 몰라주고 제대로 평가를 안해주어서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를 비교를 해볼 때 부당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많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일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는 천국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합니다! 
    [마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십니다!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닙니까? 그런 경지까지 이르기를 원합니다. 
    [고전8:3]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한국의 살아있는 성인으로 알려졌던 부산 청십자병원 장기려박사님이 예배시간에 교회 전도사님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설교가 세상에서 이름난 의사라고 다가 아니며 세상에서 많은 일을 했다고 다 천국가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존경한다고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는 젊은 전도사님의 도전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꼭 그 자리에 있는 유명한 장기려박사님을 향한 말같이 생각될 수 있는 설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느낌으로 분위기가 어색할 때 예배 후 장기려박사님이 정말 떨리는 마음으으로, 겸손한 태도로 진지하게 당시 일개 전도사였던 분에게 물었다는 것입니다. 전도사님, 나같은 사람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요? 전도사님이 너무 황송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그 장기려 박사님을 마음 깊이 존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이 말한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을 그래도 실천한 분이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때로 비교당하여 인정받지 못할 때 그 내면의 묘한 섭섭한 기분은 참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감정이 됩니다. 믿음으로 당당함으로 주님 앞에 서서 이겨내시고 활짝 웃으시는 믿음의 경지까지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알아주십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20.11.20 06:45


      때로는 사람들이 몰라주고 제대로 평가를 안해주어서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나에 대한 평가를 비교를 해볼 때 부당하게 느껴질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많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진정한 겸손일 것입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모든 수고는 천국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시고 알아주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합니다!
      [마13: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우리의 믿음과 인격이 여기까지 이르러 늘 평안하기 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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