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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순교자 스데반; 하늘의 문이 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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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교자 스데반! 하늘의 문이 열리다!

     

    사도행전 7장 1-60절, 53절까지는 스데반의 긴 설교가 나타납니다.
    그 전, 스데반에게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습니다! 사도들처럼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행 6:8-15>
    [행6: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아마도 스데반에게도 병고침과 귀신을 쫓는 능력 등이 드러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진실로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행6:3)이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행6:5)’이었습니다.
    그가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자 서기관 등이 거짓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잡아 공회에 끌어왔고 마지막 순교의 때가 되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했는지 스데반의 설교 전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빛났습니다. 
    [행6:15] 공중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스데반은 이곳에서 마지막 순교설교를 합니다. 
    7장 1-53절까지의 일생의 마지막 순교 설교는 이스라엘 역사를 낱낱이 영적으로 설명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신학과 설교 능력의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성경묵상을 통한 오직 단 한 분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이 분명했던 것입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중단된 미완성의 설교가 되었습니다. 
    죄악의 고발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설명하고자 했을텐데 그들은 더 견디지 못하고 모세의 율법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성 밖으로 끌고 가서 돌로 쳐서 죽입니다.
    스데반의 순교장면입니다. 

    [행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6]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행7:57]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행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행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행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스데반은 이 땅의 일생 마지막 순간에 하늘을 우러러 보았고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이 순간 스데반을 바라보고 계셨을 것으로 믿습니다! 스데반은 이 순간 하늘이 열렸음을 선언했습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지금 하늘이 스데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스데반의 순교는 하늘을 연 거룩한 순교였습니다.
    그들이 스데반을 죽이려고 성밖으로 끌어내었습니다. 현재 기드론 골짜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때 사도바울이 된 사울도 따라갔습니다. 사실 스데반의 긴 설교가 기록된 것은 사도바울이 누가에게 가르쳐준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스데반의 이 순교장면과 긴 설교를 어떻게 누가가 기록했을까요? 바울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비록 분개해서 죽이는데까지 이르렀으나 기억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잊지 못할 설교였을 것입니다. 로마서 등에 이스라엘의 죄악상을 설명할 때 그 맥락이 스데반의 설교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 미완성 순교 설교를 나중 사울, 사도바울이 완성시켰습니다! 

    지금 기드론 골짜기에 스데반의 순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예수님처럼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말라고 무릎을 꿇어 크게 외쳐 용서하고 순교했습니다. 이 순교는 증오와 한을 남긴 죽음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순교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면류관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늘의 면류관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데반 Στέφανον Stephen 면류관(冕旒冠 Crown)

    순교라는 단어는 늘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이 시대, 너무 가벼워진 믿음, 취미클럽, 동호회 활동같은 교회 생활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목숨을 건 진지한 신앙의 각오와 기도와 결단을 잃어버리고 가벼운 여가생활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순교신앙의 진지함을 잃어 가벼워질까 두렵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분명히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결국 12제자는 요한만 빼놓고 모두 순교했습니다. 
    종종 부르는 찬송가처럼 그들은 결국 모두 순교했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아멘!
    사도들도 당당했습니다! 그 당당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 [행5: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순교를 상상하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생명을 주님을 위하여 던졌던 것입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지켰던 것입니다. 
    한국교회 수난의 역사들도 참으로 무겁습니다.
    천주교이긴 하지만 한강변 양화진 절두산에 가면 한강물을 피로 물들였던 그 처절한 순교기록들이 남아있습니다. 눈물겨운 그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주기철목사님, 손양원목사님 등의 거룩한 순교의 피가 지금 우리에게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우암교회의 3대 목사님이셨던 곽경한목사님도 무심천변에서 공산당들에게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두려운 죽음 앞에서 고민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 황성규 교수님이 신학대학에 입학할 때의 일화가 종종 생각납니다. 두 번이나 스스로 순교할 자신이 없다고 했던 그를 나중에 교수님들이 구제해주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묻습니다. 나는 과연 순교할 수 있을까? 나는 복을 받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가? 아니면 순교할 각오로 예수님을 믿는가? 신앙이란 무엇인가! 복을 받는다더니! 
    순교는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확신과 그 사랑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을 초월한 결단입니다.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때 가봐야 알 것입니다. 
    신학생 시절의 책들이 생각납니다. 읽지 말라고 했던 일종의 금서들이었습니다.
    * 김은국ㅡ순교자는 목사들의 죽음 앞의 변절을 이야기했고 
    * 엔도 슈샤꾸ㅡ침묵- 순교자들의 고뇌와 천주교 신부의 변절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인들은 당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이라는 영화에서 누가가 격려한 말이 있습니다. “죽음은 순간일 뿐입니다. 그 순간을 지나면 영원한 아름다운 나라가 열리고 우리를 영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두려움이 더 긴 것일 뿐! 죽음은 순간이니 믿음을 지키고 당당하십시오!" 
    초대교인들은 구차한 인생이 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히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런 당당함이 있을 때 하늘의 문이 열릴 줄 믿습니다. 그런 순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를 때 당연히 순교의 각오도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여기에서의 증인은 순교자라는 뜻을 역사적으로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증인(證人) μάρτυς 마르투스= witness-> martyr 순교자(殉敎者)
    순교의 각오가 있으십니까?
    교회 전통의 두 가지 순교가 있습니다.
    ‘적색순교’(red martyrdom)- 핍박의 상황에서 피흘리는 순교
    ‘백색 순교’(white martyrdom)- 날마다의 삶 속에서 나를 죽이며 사는 생활 순교 
    백색순교로 살았던 사도 바울은 결국 적색순교에도 승리했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 욕심을 죽이고, 자아를 죽이고, 성질을 죽이고, 분노를 죽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죽이고, 그리하여 날마다 죽음과 부활을 경험했습니다.
    순교의 역사가 다 지나간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를 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기독교인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 동영상들을 보면 끔찍합니다. 그들도 스데반처럼 믿음을 굳건히 지키다가 주님께로 돌아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는 극형을 당했지만 그러나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빛났고 그의 시선은 그를 택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당당해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차하게 살아있으나 죽은 사람도 있고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 살아 지금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히11:4) 스데반의 내면은 확신과 믿음으로 가득 찼고 그의 시선은 그를 격려하시는 주님과 마주친 감격의 시선이었습니다.
    나아가 스데반의 순교는 결국 사울이라는 위대한 사도를 만드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순교를 다시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순교입니까? 눈 질끈 감고 죽기만 하면 나는 스데반처럼 영광스러운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까? 평소에는 제대로 살지도 못하다가?
    아니, 나는 정말 생명을 바칠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긴 하는 것입니까? 내 신앙은 순교자의 각오로 그렇게 절실합니까? 예수님의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의 중요성을 생각합니다. 순교의 각오가 있다면 오늘 내 삶 속에서 순교자의 각오로 믿음대로 사랑하며 소망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우리는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는 못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뜻을 따라 내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삶의 순교자, 생활 순교자(White Martyr)의 각오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에 용기와 진지한 결단의 힘을 주소서! 아멘! 아멘!

    결단찬송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 이준원2020.06.24 18:45


      순교를 다시 생각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순교입니까?
      눈 질끈 감고 죽기만 하면 나는 스데반처럼 영광스러운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까?
      평소에는 제대로 살지도 못하다가?
      아니, 나는 정말 생명을 바칠만큼 예수님을 사랑하긴 하는 것입니까?
      내 신앙은 순교자의 각오로 그렇게 절실합니까?
      예수님의 그 은혜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의 중요성을 생각합니다.
      순교의 각오가 있다면 오늘 내 삶 속에서 순교자의 각오로
      믿음대로 사랑하며 소망을 품고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집니다.
      우리는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는 못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예수님의 뜻을 따라
      내 육신의 소욕을 죽이는 삶의 순교자, 생활 순교자(White Martyr)의 각오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에 용기와 진지한 결단의 힘을 주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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