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우암교회와 민노아목사님 김정현목사님, 경환목사님,곽경한목사님
    첨부파일 10개
    민로아閔老雅목사님(Frederick S. Miller 1866~1937) 
     1892년 내한; 충북, 청주를 사랑한 선교사! 
     

     “내가 죽게 되면 내가 제일 사랑하는 청주에 묻어달라” 

    청주를 사랑했던 선교사, '내가 죽으면 내가 제일 사랑했던 청주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던 밀러- 민로아 선교사님은 충북 복음화의 기틀을 잡으신 분이었습니다. 
    민노아목사님은 미국 북 장로회 청주 선교부의 선교사로,  1866년 12월 10일 미국 펜실바니아 주 피츠버그에서 의사인 아버지(W. M. Miller)와 어머니 수산 워커(Susan Walker) 사이에서 태어나 1889년 피츠버그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어 1892년 뉴욕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가 되었습니다.  목사가 되자 마자 그는 선교사역의 귀한 뜻을 품고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민노아목사님은 1885년 언더우드 목사가 우리 나라에 입국한 뒤 7년 만인 1892년에 선교사로 입국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서울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학원 선교와 의료 선교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900년, 민노아 선교사님은 복음이 아직 많이 전해지지 않은 충청도 지방에 선교의 뜻을 두고 청주지역 선교 답사팀을 모아 청주읍 시장을 답사한 후 청주에 선교부를 개설하기로 결심하고 선교 본부에 청주 선교부를 신설하는 것을 신청했습니다.
    1904년부터 민노아 선교사님은 청주로 내려와 본격적인 선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민노아 성경학원’을 개설하여 성경 교육을 통해 교회 지도자 양성에 힘썼습니다.
    그는 1937년 71세를 일기로 소천하기까지 45년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으며 33년 동안 청주에서 살았습니다. 그의 묘지는 지금 청주 양관에 있습니다.
    그가 개척한 교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1901년 신대교회 개척, 1903년 괴산읍교회 개척,  1904년 청주읍교회 개척,  1909년 덕촌교회 개척 등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는데 우암교회와도 관계가 깊습니다.
    1920년 우암교회(외덕교회) 창립 이후 민노아목사님은 봄가을로 세례문답을 위해 우암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민노아 선교사는 문학과 음악에 재능이 있었기에 초기에 찬송가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는데, 그 때 많은 찬송가를 번역하기도 하고 손수 작사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문학가, 음악가로서 약 40여 편의 곡을 한국어로 번역해 내었는데, 그 중 『찬셩시』(1905년)에 그의 번역 및 창작시 25편이 수록되었고 《챤숑가, 1908》에도 실렸는데, 그 중 다음의 5편은 번역이 아니라 그가 한국어로 지은 창작 찬송이며, 이 찬송들은 100년 동안 변함없이 사용되어 현 21세기 찬송가에도 그대로 실려 애창되고 있습니다. 그 5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96장), 
    “주의 말씀 듣고서”(204장), 
    “맘 가난한 사람”(427장), 
    “예수 영광 버리사”(451) 
    “공중 나는 새를 보라”(588장) 
    특히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특히 그의 첫 아들이 죽고, 둘째 아들도 죽고, 아내도 죽은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믿음을 지켰던 그의 거룩한 고백이 담긴 찬송이기도 합니다. 민노아 목사님은 재혼했는데 재혼한 아내도 또 소천하게 되는 비극을 지나 강한 믿음을 지켜낸 분이었기에 [예수님은 누구신가]는 그의 신앙고백이 담긴 찬송이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곡은 [에밀]이라는 유명한 교육학 저서를 펴낸 장 자크 루소가 작곡한 곡이라는 것입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동요 "주먹 쥐고 손을 펴서" 와 같은 곡입니다^^ 또 54장 '주여 복을 구하오니'와 같은 곡입니다.  청주에서 최선을 다했던 민노아목사님은 1937년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고 그의 시신은 청주시 금천동 뒷산에 안장되었으나 1985년 일신여고 교내 양관 옆으로 옮겨 졌고 현재 그곳에 묘지가 있습니다.
    민노아 목사님은 우암교회와도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당시 외덕교회였던 우암교회에 자주 오셔서 세례식과 성찬식을 집례해주었습니다. 

    ☛ 우암교회-> 1920년 청주군 사주면 외덕리에 외덕교회(外德敎會)로 설립
    우암교회는 청주읍 교회출신 나정일 영수(領袖)와 전자득 자매 등, 초기 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세운 교회입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양철 건축이 이루어져 많은 분들이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라정일장로님의 묘지는 현재 청주 대학교 뒷산에 있어 추석 때마다 우암가족들이 벌초를 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없어 그 딸 라인길권사님이 우암교회에서 크게 활동을 하시고 부친의 무덤터에 묻혀 계십니다. 언제 한번 방문하셔도 좋겠습니다. 라병열 원로 장로님의 큰 아버지 댁으로 알고 있습니다. 라형진권사님의 가문이신데 얼굴도 좀 닮으신 것 같습니다. 
    전자득 권사님은 당시 어린 처녀이셨는데 우암교회를 끝까지 지켜내셨고 지금 교회에 활발히 출석하시는 장기성권사님(임순자권사님), 그리고 장정길권사님(김경순권사님)의 모친이십니다. 외덕교회- 동네 이름이 외덕리-로 시작한 교회는 훗날 1966년 외덕리가 우암동으로 바뀌면서 당회 결의에 따라 교회 이름도 우암교회로 바뀌게 됩니다. 
    ☛ 1966년 5월 15일 창립주일부터 우암교회로 교회명칭 개명( 엄기현목사님; 1965년 9월 부임) 

    라정일 장로님 (~1936) 



    함태영목사님 부통령, 한신대학(조선신학교 학장) 

    우암교회가 당시 시작할 때에 격려를 많이 해주신 분이 당시 청주읍교회를 담임하고 있던 함태영목사님이셨습니다. 원래 법관 출신으로서 법조계에서 큰 역할을 하셨던 함태영(咸台永)목사님은 나중 평양신학교를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청주읍교회에 부임하셨습니다. 훗날 이승만대통령 때에 부통령이 되고 우리 교단 한신대학교 (당시 조선신학교) 학장이 되신 함태영(咸台永)목사님은 우암교회를 자주 방문하셔서 격려하셨습니다.
    훗날 1954년 새로운 터전에 당시 목회자이시던 한빈목사님께서 대지를 헌납하여 교회당을 교인들과 건축할 때 당시 하순덕집사님- 순천에서 올라오신 소아과 원장님- 훗날 남편 이대원장로님과 함께 우암교회의 부부 장로님이 되신- 하순덕장로님이 함태영부통령의 수양딸이었는데 건축회계였습니다. 일주일간 금식한 후에 서울로 부통령을 찾아갔고 시멘트 1800포대를 청주역으로 받아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함태영 부통령께서 당시 건축을 하고 있는 교회를 찾아와 축복기도를 해 준 기록이 있습니다.  

      소열도 선교사님(T.S.Soltau: 蘇悅道 1890-1970)이 외덕교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함


    소열도 목사님께서는 미국 출신으로 1921년 청주에 오셔서 18년 활동하시다가 신사참배 문제로 추방을 당하십니다. 한국 이름 소열도는 야소(耶蘇:예수)를 기쁘게 전한다는 뜻입니다. 
    소열도 목사님은 1927년 6월 27일 외덕교회(現 우암교회) 임시 당회장으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조선 예수교 장로회 충청노회 제 67회 정기노회 회의록,1927.6.7.)

    우암교회를 최초로 세우신 라정일 영수님은 1920년 이후 10여년간 목회자 없이 홀로 설교하고 심방하시면서 교회를 지키셨고 중간에 최영택목사님이 돕기도 하셨으나 정식 담임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1930년 최초로 당시 노회의 허락을 받은 우암교회 1대 목사님인 김정현목사님이 부임하시게 되었습니다. 김정현 목사님은 원래 경기도 용인분이신데 민노아목사님을 도왔고 또 청주로 민노아 목사님이 내려오시자 함께 내려오셨고 청주읍 교회에서 장로님의 역할을 하시다가 신학을 공부하셔서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러고보면 2대, 3대 목사님도 모두 민노아 목사님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습니다. 
    1933년 우암교회 2대 경환목사님 민로아목사님의 조사(助事)로 일함, 괴산교회 시무 
    1937년 우암교회 3대 곽경한목사님도 민노아목사님께 배웠고 6.25때 순교




    제1대 김정현 목사 (1930-1932)의 사역

    (1883-1970)

    김정현 목사님은 1883년 경기도 용인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외롭게 지날 때 김경조 조사의 전도를 반고 신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용인은 민노아 선교사 구역이었기에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민노아 선교사 집에 사환으로 있으면서 경신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민노아 선교사님이 청주 선교부를 담당하자 김정현도 함께 내려와 그의 조사 겸 전도인으로 활동을 하다가 청주읍교회 장로로 시무하였습니다. 
    그 후 1910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진학하여 신학 수업을 받는 동안 충북지방 여러 교회의 조사로 시무하면서 목회 사역에 임하였고, 일찍이 충북노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실력있는 목사로 정평이 나있었습니다. 우암교회를 사임하고 서울 공덕교회로 이명해 가면서, 보광동교회, 안동교회, 남대문교회 등지에서 시무를 하였습니다. 이미 청주읍교회 장로로 시무하면서 발행했던 두 권의 신앙서적을 비롯해서 집필에도 많은 공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설교집인 [강대보고(講臺寶庫)] 당시 아주 널리 읽혔던 책이라고 합니다. 그의 공로는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1970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제2대 경환 목사 (1933-1936)의 사역
    (1884-1966)

     

    경환 목사님은 충북 괴산군 연풍 유하리 출신으로 일찍이 한학을 연구하였으며, 결혼 적령기를 맞이하여 이나합과 결혼한 후 괴산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이때 장인으로부터 전도를 받고 민노아 선교사의 조사로 발탁되어, 그의 당회 구역인 괴산교회의 조사로서 교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1916년 그는 우암교회의 3대 목사가 된 곽경한등과 함께 평양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의 성실성에 감동한 괴산교회 교인들은 그의 신앙심을 보고, 장로로 선출하였고, 그는 경기 충청노회에서 장로고시를 마친 후 1922년 장로로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다니던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자 곧바로 1923년 12월 19일 제25회 경기충청노회에서 괴산교회의 초빙으로 목사안수를 받고 계속해서 괴산교회에 시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몇 교회에서 사역을 하다가 1928년 청주읍교회 목사로 취임하여 그곳에서 4년간 목회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사역하면서 최초로 여름 어린이 성경학교를 도입하였으며, 상당유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홀륭한 사역을 쌓았던 경환 목사는 이웃에 있는 외덕교회 청빙을 받고 1933년 외덕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우암교회에서 시무하는 동안 특히 청년운동에 힘을 써서 1935년에 기독청년회를 조직하고 신앙운동과 민족 애국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후 충북 괴산에 있는 청안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14년을 목회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은퇴한 후 3년만인 1966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든 사역을 마감하였습니다.


    제3대 곽경한 목사(1937-1942)의 사역



    곽경한목사님은 청주군 남일면 석실리 출신으로 일찍이 기독교를 접한 후 청주읍교회에 출석하면서 성실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원래 머리가 영특했던 관계로 민노아 선교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사경회와 달 성경학교를 졸업하고 청년 전도에 힘을 기울이면서 청주읍교회 교인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습니다. 청주읍교회 박정찬, 이원민, 황준국 목사의 지도를 받으면서 1915년 이동순과 함께 장로로 장립을 받았습니다. 이미 장로로 장립을 받았던 최영택 장로를 도우면서 칭주읍교회를 청주에서 제일가는 교회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청년 전도대를 조직하여 직접 전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다 교역에 뜻을 두었던 곽경한과 최영택 장로는 경기충청노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에 있는
    장로회신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보은읍교회가 설립되자 소열도 선교사를 도우면서 그 교회 조사로 사역에 임하게 되었습니다. 1921년에 고향인 청주군 남일면에 있는 황청리교회에서 시무하였으며, 1922년 청주군 미원면 운암리교회, 1924년에는 옥천군 청산교회에서도 역시 조사도 사역을 하였습니다. 신학교가 있는 평양까지 오르내리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길로 부름을 받은 곽경한 조사는 1927년 신학교를 졸업하였고, 그해 가을에 충청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가 목사가 되자 고향인 청주군 남일면 황청리교회에서 청빙을 하였고, 그곳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하던 중 1987년 외덕교회의 청빙을 받고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외덕교회에서 그는 4년간 열심히 사역한 후, 신대교회로 옮겨갔습니다.
    곽경한 목사는 해방이 되자 곧 청주형무소에서 형목으로 시무하며, 교회 사업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공산주의 사상범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였는데, 이것을 골수 사상범들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6,25사변이 발발하자 집요하게 쫓는 공산당을 피해 고향에 피신하였다가 잡혀 수감되었습니다.옥중에서도 열심히 전도하였는데, 하루 한끼의 식사만 하고 남은 두끼는 수감된 젊은 청년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예수 믿기를 간곡히 권했습니다. 그러다가 1950년 9월 25일 공산당 후퇴시 청주 무심천 변에서 순교 당하였습니다.

    우암교회 100년 그리고 오늘! 새로운 백년을 향하여!
    저는 개인적으로 엄기현목사님의 수고를 기억합니다! 1965년에 우암교회에 부임하셔서 1997년까지 32년동안 시무하시는 동안 놀라운 발전을 이루어내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듣는 말씀! 충북교계의 원로목사님들은 다 엄기현목사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100년 역사의 우암교회의 큰 강물에 언제 합류했든지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입니다! 은혜의 감사 백년을 지나고 이제는 영광의 미래 백년을 향하여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되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우암의 새역사를 함께 써 나갈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11.30 16:49


      100년 역사의 우암교회의 큰 강물에 언제 합류했든지 우리는 모두 하나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인공입니다!
      은혜의 감사 백년을 지나고 이제는 영광의 미래 백년을 향하여 전진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되어!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우암의 새역사를 함께 써 나갈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멘!
      아멘!

    새글 0 / 839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839 곡과 마곡 Gog and Magog의 전쟁 [1
    2019.12.06
    838 천년왕국을 주님과 함께! [1
    2019.12.05
    837 재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1
    2019.12.04
    836 할렐루야! 아멘! 그럼에도 즐거워하고 크.. [1
    2019.12.03
    835 대림절 첫 주!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1
    2019.11.30
    834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 무신론! [1
    2019.11.29
    833 아마겟돈 [1
    2019.11.27
    832 우암교회와 민노아목사님 김정현목사님, 경.. [1
    2019.11.27
    831 내면이 일그러지는 재앙 [1
    2019.11.27
    830 금거문고 맞추어서 새 노래를 부를 때! [1
    2019.11.25
    829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 알.. [1
    2019.11.24
    828 순교의 결단이 필요할 때! [1
    2019.11.22
    827 요한계시록 12장 여인과 용과의 싸움 [1
    2019.11.21
    826 예수님께 사로잡힌 사람 친첸도르프 [1
    2019.11.20
    825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리로다! [1
    2019.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