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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첨부파일 3개
    111월 8일(금) 라오디게아 교회( 계시록 3:14-22)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진실 그 자체이십니다. 그리고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며 태초에 천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 권세와 그 구원의 능력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책망과 징계의 말씀을 주십니다. 계시록의 7교회 중에서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집중적으로 꾸중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는 터어키의 빌라델비아에서 남동쪽 약 70km 쯤 떨어진 내륙에 위치한 도시로서 지금의 에스키 히사르(Eski-hisar)입니다. 
    당시 라오디게아는 부유한 상업도시였고 은행이 발달하고 의학도 발달하여 유명한 의학 학교가 있었습니다. 특히 근처의 히에라볼리에서 흘러내리는 온천물을 이용하여 귓병을 치료하는 특효약과 콜로니온이라 불리우는 안약의 산지-의료도시로서도 명성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수차례의 지진으로 인하여, 이 도시의 유적은 대부분 땅 속에 파묻혀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전도하여 설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골로새서(골 2:1, 3:13~15, 4;12, 4:16)의 여러 곳에 이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골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골4: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아마도 라오디게아에 있는 "눔바 Nymphas "라는 여성도의 집에 교회가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눔바는 영어로 님프Nymph인데 요정을 뜻합니다. 헬라어로는 아가씨, 신부라는 뜻을 가집니다. (Nymphas = "bridegroom") 아마 여성도 눔바는 믿음의 열정이 뛰었났고 그래서 교회를 시작할만한 성령체험이 있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뒤 점점 변질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약속의 말씀도 주십니다. 

    가장 큰 약점- <미지근한 신앙>, <차지도 뜨겁지도 아니한 교회 >


    라오디게아에 온천물이 있는데 라오디게아에서 6.5KM 떨어진 히에라볼리의 온천 물이 수로를 통해 라오디게아로 흘러 도착합니다. 원래 온천물은 뜨거워야하고 유황성분도 있어야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그 물이 식어버렸습니다. 아마 그 당시에도 그런 현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영적인 현상과 똑같았던 것 같습니다. 차라리 차겁던지! 

    뜨거웠던 믿음이 미지근해진 분들이 있습니다. 시험에 들은 것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시들해집니다. 사람에게 무슨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거나 실망한 것, 마음에 응어리진 것, 원망하는 마음과 속상한 것이 해결되지 않은 분들입니다. 이럴 때 일수록 주님을 바라보셔야합니다. 모든 기억을 털어버리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 인생만 무너집니다. 
    그런가하면 좀 깊은 이야기입니다만 하나님께 대한 섭섭한 마음이 무의식에 숨어있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에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다는 류의 내적 서운함이 숨어있는 경우입니다.
    어떤 경우이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극복해야합니다. 하나님께 항의를 해서라도-간절한 기도를 드려서라도 극복하고 결국 납득을 해야 다시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다시 뜨거워지기를 원합니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서 반드시 다시 뜨거운 열정을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열정을 잃어버리고 무능해진 자, 늘 부정적인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 교회 안의 무신론자가 된 사람들을 꾸짖습니다. 
    [습1:12]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서 찌꺼기 같이 가라앉아서 마음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등불로 두루 찾아 벌하리니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열정도 시들어간다!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리면 인생의 열정도 시들어갑니다.
    궁시렁거리라고 주어진 인생이 아닙니다. 환경만 탓하면서 보내라고 주신 시간이 아닙니다. 시간이 아깝고 인생이 아깝습니다. 신앙의 열정이 회복되어야 인생의 열정도 뜨거워집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분명히 분석하고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며 살아갑니다. 
    주님은 그것을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이라고 엄중하게 말씀하십니다. 지나친 자기애에 빠지거나 자기도취에 빠지거나 자기환상에 사로잡혀 사는 이들도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 자신을 바로 아는 일입니다. 지나친 비교의식으로 예민해져서 열등감에 빠지거나 지나치게 남을 의식해서 자만감에 빠지는 모든 것들이 다 생각의 균형을 잃은 것입니다.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면 분노가 되고 안으로 스며들면 우울증이 됩니다. 
    < 자신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비극>
    [계3:18] 내가 너를 원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지혜 중의 가장 큰 지혜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기에 세상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델피신 전의 말을 인용해 '그노티 세아우톤'( Know Yourself) 네 자신을 알라!-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가장 큰 지혜로 가르쳤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문제는 자기 자신을 깨닫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17절)”고 자부합니다. 자기 만족에 빠진 교만한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정체와 문제를 아는 최소한의 지혜만은 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자기 성찰을 통한 스스로의 자기 인식- "제가 좀 원래 욕심이 많습니다. 제가 좀 우울증이 있습니다. 제가 좀 성격이 모난 데가 있습니다, 제가 좀 질투심이 강합니다~", 이 정도만 알아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신 것은 라오디게아 교회가 세상적 부요로 착각하는 것을 지적하고 불로 연단한 진짜 금-믿음을 사서 믿음의 진짜 부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께로부터 오는 믿음, 결국은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믿음으로 내 인생을 해석하고 세상을 해석해야하는데 내 생각으로 해석하다보니 늘 눈뜬 장님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금보다 더욱 귀한 보배입니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흰 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은 라오디게아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양털로 만든 겉옷(trimita)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것보다 진실과 순결의 영적인 흰 옷을 사서 입어 인간 냄새나는 추악한 속모습을 가리우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는 말은 온천수로 만든 안약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의 안약으로 자신의 참 모습을 보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그러나 라오디게아교회에도 주시는 위로와 소망의 권고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기에!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사랑하고 아직도 믿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소망이요, 행복입니다!
    그렇습니다. 라오디게아도 교회였습니다. 비록 자기 착각에 빠져있고 신앙관리 인격관리에 실패했어도 그러나 믿음으로 시작한 공동체였음을 주님께서는 믿고 계셨기에 징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참 사랑은 책망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문제 해결방법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였습니다. 
    자신을 바로 알고 회개하고 열심을 내는 것이 문제해결의 단 한가지 길이었습니다. 
    문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주님께 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의 문이 닫힌 사람들, 아무리 두드려도 열지 않는 사람들, 참으로 많이 만납니다. 

    전도할 때 많이 만납니다. 안에서 열어야합니다.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주님께로 나아가셔야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에는 평화가 오고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면 우리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최후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절)


     나는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않은 미지근한 사람이 아닌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나 실상은 가난하고 벌거벗은 자가 아닌지? 착각 가운데 살아온 나의 인생은 아니었는지? 우리 모두 주님 앞에 문을 열자. 우리의 마음 문을 활짝 열자. 그러면 주님께서는 또다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실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복된 주님과의 교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11.08 10:24


      신앙이 미지근해지면 인생도 미지근해집니다!
      인생은 열정으로! 생명력으로! 능력으로 살아갈 때 행복해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다!
      늘 새로운 열정으로!
      늘 새로운 감격으로 살아가는 그 생의 힘을 기도를 통해서 얻으시고
      지켜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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