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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두아디라- 용납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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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11월 5일(화) 두아디라 교회 (계시록 2:18-29) 




     

     

     



    두아디라 교회는 요한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네 번째 교회입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7교회 중에 가장 긴 편지를 받은 교회인데 지금의 터키의 아크히사르(Akhisar)로서 당시 교통의 요지였고 염색 산업이 발달했던 상업도시였습니다. 지금은 돌기둥 흔적만 남아있습니다. 
    두아디라 교회는 아마도 사도행전 16장에 나오는 원래 두아디라 출신의 의류업 국제 무역 여류 사업가인 루디아가 빌립보 지역에 있을 때 바울로부터 복음을 받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후 훗날 고향 두아디라로 돌아와서 세운 교회라고 여겨집니다. 루디아는 유대인 교포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사도행전 16: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이 두아디라에 보내는 내용에는 칭찬과 경고가 함께 있습니다.
    [계2: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使者)에게 편지하라  
    7교회에 똑같이 나타나는 서두, 사자(使者)라는 말은  헬라어로 앙겔로 ἀγγέλῳ 인데 천사(使 angel)는 천사는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교회를 지켜가는 천사와 같은 온 교인들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교회를 지키는 사자使者=천사들이입니다! 
    [계2:18] -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예수님의 눈은 우리를 불꽃같이 바라보고 계시고 그의 발은 빛나는 주석처럼 세상을 지배하는 권세를 가지고 계시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계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칭찬의 말씀이십니다!
    여기에서 사업事業은 헬라어로 에르곤 ἔργον=works 인데 행위, 행동이라고도 번역이 됩니다. 예수님의 일을 우선순위로 삼은 자의 삶의 우선순위와 진정한 관심사, 행동의 실천적 영성이 분명한 것에 대한 인정과 축복입니다. 그들에게는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있었습니다!
    여기에서의 섬김(디아코니아 διακονία은 먼지를 뚫고 세상을 밝히는 수고라고 여러번 말씀드렸습니다. 인내 ὑπομονή 휘포모네는 배 밑에서 노를 젓는 노예-휘페르테스; 일꾼의 인내와 수고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한 인내를 주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아노니" -알아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참으로 귀한 칭찬! 우리의 나중이 더욱 좋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책망이 시작됩니다. 이세벨이라는 여자 때문입니다.
    [계2: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용납의 고민- 받아들임과 경계함의 고민; 이건 아닌데~ 아닌줄 알면서도 하도!주일날 놀러가면 어때~아닌데~ 기도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보다 세상 말하고 세상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여자-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기도를 멀리하고 패거리 만들어 사람 끌고 다니는 일에 관심-두아디라, 사업이 발전하고 조합이 많은 지역)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놀러다니고 즐기러다니고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라는 여인이 있어 두아디라 교회를 흔들었던 것 같습니다. '자칭'이라고하니 착각도 심했던 것 같습니다. 이세벨은 구약성경에서 바알을 섬겼던 여자로서  아합왕의 아내였는데 희대의 악녀로 알려져 있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칭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똑똑한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여자γυνή 구네 woman 라는 표현은 비교적 상류층 여인에게 썼다는 용법을 말하기도하는데 그렇다면 아마도 남편의 세상적 직위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 여인은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여인이었습니다. 자칭 귀부인이고 말빨도 있고 신분도 있는데 믿음은 변질된 믿음이었습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세상적인 일에 교인들을 끌고 다니면서 순수 신앙을 변질시켰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우상의 제물을 먹게한 것이며 그것이 음행이라고 꾸짖고 있습니다. 놀러다니고 즐기러다니고 그리고 신앙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세상과 야합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이런 류의 여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이 여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하고 기도를 멀리하고 패거리 만들어 사람 끌고 다니는 일에만 관심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두아디라는 모직 산업이 발전하고 각종 친목단체와 조합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디도서에서 바울은 '늙은 여자'를 꾸짖고 책망합니다. 
    [딛2:3]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나이가 들어서 늙은 것이 아니라 그 심령이 세속에 물들어 빤질빤질해지고 세속 얘기에 닳고 닳아빠진 여자를 말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약삭빠르고 세속적인 이야기만 가득하여 돈밖에 모르고 권력 밖에 모르고 나서기 좋아하며 과시하기 좋아하며 지배하기 좋아하는 허영에 가득한 여자들은 이미 늙어빠진 여자들이기에 꾸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순수함을 가진 영혼은 존경받을 것입니다.  
    용납의 고민과 갈등 
    문제는 이 이세벨의 말빨이 하도 좋고 휘두르고 다니니 피하지 못하여 용납하게 되는 것에 있었습니다. 용납이 죄가 되었습니다!
    -네가 용납함이니 
    용납의 고민이 있습니다. 받아들임과 경계함의 고민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건 아닌데~ 아닌줄 알면서도 하도 강권하니 끌려다닙니다. 양심을 팔고 신앙을 팔고 끌려다닙니다. 틀린 줄 알면서도 질질 끌려갑니다. 기도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보다 세상 말하고 세상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이 여자 이세벨을 따라 결국 신앙이 변질되고 만 것! 용납의 죄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키는 길!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이세벨은 결코 깊이 기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만나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운 사람은 결코 깊이 기도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보는 일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정말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공중기도를 잘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내면의 기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문턱 앞에서 늘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는데 모든 것을 쏟습니다. 그것이 이세벨의 정체입니다!

    이세벨도 설교를 많이 들었을텐데 벗어나지 못하고 회개하지 못했습니다.
    [계2: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때로는 깨닫기도 했을텐데 자기의 인생 습관과 스타일을 못바꿉니다. 바꾸는 것이 두렵고 바로 믿는 것도 자신이 없습니다. 
    바울은 디모데 후서에서 이 어리석은 여자들을 지적합니다. 아무리 배워도 소용이 없고 인격과 성격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딤후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딤후3: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주님의 경고와 심판이 있습니다.
    [계2: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계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따라다니던 패거리들을-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침상에 던진다는 것은 움직이기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침상에 누워있는 경우는 몇가지 뿐입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인다는 것은 이세벨을 따라다니던 패거리들을 영적으로 죽인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꼭 기억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교회를 다녔어도 이세벨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오직 나름 권력을 즐기는 일에 마음을 쏟았습니다. 결정권을 즐기고 안된다, 된다 간섭권을 즐기며 타락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남은 자들을 권고합니다!
    [계2: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계 2: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아직 물들지 않은 그대여, 절대 물들지 말고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사람보고 실망하지 말고 지금 가진 믿음을 끝까지 지키라는 권고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내 믿음을 내가 지키면 됩니다.
    저 사람도 새벽기도 안하는데, 헌금도 안하는데, 봉사도 안하는데 내가 왜라고 생각하면 나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직분자라는 사람이 저렇게 즐기면서 사는데 내가 왜?라고 할 때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볼 것 없습니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바뀌어도 나는 내 믿음을 굳게 지킬 뿐입니다.

     


    끝까지 주님의 일을 지키라!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라! 
    [계2: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계2: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계2: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늘 빛나는 소망)을 주리라 [계2: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세상 풍조는 나날이 바뀌어도 나는 내 믿음 지키리니~~!!!)
    모든 유혹과 갈등을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 
    이 부분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일이 있습니다!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기도, 전도, 사랑, 나눔, 겸손이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내 일로 삼는 자에게 놀라운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권세를 주십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 철장의 권세,
    영적 권세와 물적 권세와 인적 권세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의 권세를 우리도 소유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질그릇 깨지듯 깨질 것입니다. 결국 그런 인생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저는 강남에서 참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 삶의 스타일을 못벗어나고 결국 사라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지키고 주님 주신 사명을 내 일로 지키는 자들에게 새벽별같은 소망을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새벽별 같은 은혜를 소망합니다! 그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11.05 18:31


      용납의 고민과 갈등
      문제는 이 이세벨의 말빨이 하도 좋고 휘두르고 다니니 피하지 못하여 용납하게 되는 것에 있었습니다.
      용납이 죄가 되었습니다!
      -네가 용납함이니
      용납의 고민이 있습니다. 받아들임과 경계함의 고민이 있습니다.
      분명히 이건 아닌데~ 아닌줄 알면서도 하도 강권하니 끌려다닙니다.
      양심을 팔고 신앙을 팔고 끌려다닙니다. 틀린 줄 알면서도 질질 끌려갑니다.
      기도하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보다 세상 말하고 세상 이야기하는 것이 더 재미있는 이 여자 이세벨을 따라
      결국 신앙이 변질되고 만 것! 용납의 죄가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키는 길! 기도하는 것 뿐입니다!
      이세벨은 결코 깊이 기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기도는 결국 자기 자신을 만나야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이 두려운 사람은 결코 깊이 기도하지 못합니다. 진정으로 기도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보는 일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정말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의 공중기도를 잘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내면의 기도가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문턱 앞에서 늘 돌아와 사람들을 만나는데 모든 것을 쏟습니다.
      그것이 이세벨의 정체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생각합니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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