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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죽어 남을 살려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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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0월 8일(화) 사형에 해당하는 죄! 
     


    20장은 조금 긴장되는 장입니다.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나열하고 돌로 쳐서 죽여야한다고, 행악자와 범죄자는 죽이라고 말씀하시니 조금 부담도 되고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먼저 인신제사를 하는 몰렉 숭배자들을 처형하라고 선언합니다. 
    [레20: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20: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레20:3]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聖號-거룩한 이름)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몰렉은 몰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기도하는 우상신이고 암몬족속의 신이었습니다. '왕'이라는 뜻입니다. 머리는 황소이며 몸통은 사람인 청동 우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못지 않게 성경에 많이 나타나는 우상이름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놀라는 것은 믿음이 좋아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는 계속 우상을 숭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는 훗날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바알신상이 들어왔습니다. 나중에는 바알과 아세라와 몰렉을 같이 섬기고 특히 흰놈의 골짜기에는 아예 몰렉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는 장소가 있었으니 타락상이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인신제사는 살인행위- 자녀 살해, 어린이 생명 살해였습니다! 심지어 유대의 왕인 아하스와 므낫세도 자기 자녀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드렸다(왕하 16:3, 21:6)는 기록이 나타납니다. 
    가끔 아브라함도 이삭을 제물로 드리지 않았나 질문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험에 불과했던 것이고 입다가 딸을 바쳤다는 것은 원어 해석에 따르면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아니라 처녀로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했다는 것으로 해석되니 결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제물로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동물을 제사로 드리는 것도 진지한 마음이 없다면 살인과 다름없다고 예언자를 통해 경고하신 바 있습니다.
    [사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그런데도 몰렉에 마음을 뺏긴 유다-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인신제사를 드렸습니다.
    몰렉의 종교는 권력을 탐하는 종교였고 돈 종교, 생식종교, 본능종교, 재물종교, 성공종교였습니다. 부귀영화와 신분상승이 중요했습니다. 권력과 재물을 소유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었습니다. 윤리나 도덕은 필요 없었습니다. 남보다 더 잘살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한 종교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서 말씀하는 진실하게 살아라, 거룩하게 살아라,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라, 베풀며 살아라는 오히려 부담이 되었고 복채를 많이 갖다 바치면 돈을 버는 본능종교를 따라간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그토록 무서웠습니다. 강력했습니다. 말씀신앙보다 흡인력이 강했습니다. 물론 이루어지지도 않는 탐심의 허망한 종교였을 뿐입니다.
    자녀를 죽이고 사람을 죽여서 도대체 내가 얻고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권력? 권세?
    우상에는 감사와 평안이 없습니다. 욕망만 있을 뿐입니다. 
     사람이나 자녀를 죽일 것이 아니라 내가 죽어야 했습니다. 내 탐욕이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마음에도 이 몰렉이라는 본능종교가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몰렉을 찾아보니 의외로 10번 이상 성경에 몰렉-몰록이라는 단어가 여기 저기 숨어있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그 몰렉이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몰렉이라는 우상, 성공과 출세에 대한 이기적 집착!
    오늘 본문에는 죽이라는 말이 계속 나타납니다.  '거룩'을 위해 죽이라 하십니다. 무섭습니다! 즉 다른 사람을 제물로 죽일 것이 아니라 거룩을 지키기 위해 사실은 죄인 중 죄인 된 내 자아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말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 육체의 욕망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골3:5] 땅에 있는 지체-육체-욕망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그 하나님의 뜻을 내 뜻이나 욕심보다 먼저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맞습니까? 확실합니까?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는 약속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방조자의 책임을 물으신다!
    [레20:4]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레20:5]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주목해야할 것은 그 우상 숭배자와 함께 있었던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라는 말이 2절과 4절에 계속 나타납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범죄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말리고 가르쳐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실패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방조의 죄가 있습니다. 죽여서 질서를 잡아야할 책임을 회피한 자는 무서운 징벌을 받게 됩니다. 
    죽이라고 하시는데 인정 때문에 죽이지 못합니다.  
    참으로 힘든 것이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말하는 순간부터 원수가 되고 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피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르치고 교정하고 인도해야합니다! 물론 방법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죄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정죄받으면 반발합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또 돌이켜보는 존재이기에 그 마음을 배려하는 접근이 중요합니다. 정성과 진심을 담아서 가르쳐야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돌이키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누구나 늘 죄의식과 죄책감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말해주는 영혼의 멘토가 되어주고 서로 죄사함을 위해 기도해주는 야고보서적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레20: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무당에게 가서 미래를 묻습니다.우리의 미래를 누구에게 묻습니까? 미래를 궁금해할 것 없습니다. 내 현재가 나의 미래입니다. 오늘의 내 삶의 결과가 바로 미래입니다. 
    나아가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만이 주관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노력하는 오늘이 곧 나의 미래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미래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거룩하라 하신 말씀을 다시 마음에 품습니다. 
    [레20:7]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20: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다시 점검합니다. 
    내 마음 속에 숨겨진 몰렉- 속에 숨어 내가 경배하는 나의 왕은 무엇입니까? 제물이라도 바쳐서 얻고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삶을 살기 힘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죽이라고 명령하시는 엄중한 그 말씀을 따라 내 욕심을 죽이는 시간, 우상을 파괴하는 시간, 그리고 생명으로 새롭게 되는 우리의 나날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 이준원2019.10.08 14:22


      참으로 힘든 것이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말하는 순간부터 원수가 되고 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른 척하고 피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르치고 교정하고 인도해야합니다! 물론 방법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정죄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정죄받으면 반발합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또 돌이켜보는 존재이기에
      그 마음을 배려하는 접근이 중요합니다.
      정성과 진심을 담아서 가르쳐야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돌이키고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누구나 늘 죄의식과 죄책감의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말해주는 영혼의 멘토가 되어주고
      서로 죄사함을 위해 기도해주는 야고보서적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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