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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용서와 배려 - 실로의 춤추는 여인들
    첨부파일 8개

    20190908 실로의 춤추는 여인들 (사사기 21:23-25)

     

    오늘 설교는 19금 설교입니다. 잔인성, 폭력성에 대한 주의와 경고를 미리 드립니다. 
    오늘 사사기의 마지막 3장 부분은 사사시대 역사의 흑역사입니다. 덮어버리고 싶은 충격적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성폭행과 처참한 죽음과 살인과 동족상쟁과 전쟁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이어지기에 성경에 이런 이야기도 있는가 싶고 세상에 이런 일이! 싶은 내용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미리 경고합니다. 영이 혼탁해지기 쉬운 이야기이니 결론을 잘 찾지 않으면 복잡하고 어수선해집니다. 길을 잘 찾아내시기 바랍니다. 

    [줄거리] 
    에브라임에 살던 레위 사람이 베들레헴 출신 첩을 들였는데 첩이 행음하다가 친정으로 가버렸습니다. 4달 후에 레위사람이 그 친정까지 찾아가서 서로 화해하고 데리고 오는 도중 날이 저물어 베냐민 지파의 지역인 기브아란 마을에서 마침 고향 에브라임 사람을 만나 유숙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동네 불량배들이 레위인을 동성애로 욕보이려다가 첩을 대신 내보내자 그녀를 밤새 욕을 보이고 죽게 하였습니다. 격분하고 통분한 레위인은 시체를 끌고 고향 에브라임으로 돌아와 시체를 12덩이로 나누어 12지파에게 보내어 원통함을 호소하고 원수를 갚아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기막힌 사실에 격노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연합군 (40만 명)이 동원되어 먼저 베냐민 지파에게 그 불량배들을 내어 놓으하고 했으나 베냐민 지파는 거부하고 오히려 나머지 11지파와 싸움을 하기로 덤벼들어 몇 번의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연합 지파 쪽은 무려 40만의 대군이요(17절) 베냐민 지파는 26,700명에 불과했는데도(15절) 베냐민 지파가 얼마나 전쟁을 잘하는지 1차 전투에서 연합군 2만 2천명이 죽고 2차 전투에서도 1만 8천 명이 죽어 도합 4만명이나 죽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흥분한 연합군은 작심하고 총력전을 펼쳐서 베냐민 지파를 살육하고 짓밟습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가 다 죽지는 않아서 600명은 겨우 목숨을 지키고 광야로 도망갔습니다. 
    [삿20:47] 베냐민 사람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에서 넉 달 동안을 지냈더라 
    그래도 분이 안풀린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지파가 살고 있는 기브아로 돌아와서 온 성읍을 다 무너뜨리고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삿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은 모두 다 불살랐더라 
    그리고 전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맹세합니다. 
    베냐민 지파가 후손을 잇지 못하도록 멸절시키도록 딸을 주지 않는다는 맹세였습니다. 
    [삿21: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 하리라 하였더라 

    자~
    피비린내 나는 숨가쁜 1차 스토리는 여기까지입니다. 같은 동족이 같은 동족을 다 씨를 말려 죽여버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제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지금 뭘 한거지? 그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민합니다. 흥분과 광기와 고함과 함성 속에 '너 죽는다', '죽여봐 죽여봐~',  '오냐 누가 이기나보자~!' '겁나면 그만 두던가 끝까지 가보자!' 그래서 다 죽었고 그때야 제 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뭘 한거야? 
    왜? 
    사람이 태어나 어린 시절, 방실 방실 웃고 살았는데, 어느 날 서로 원수가 되어 사람이 죽이게 되었을까? 
    죽이니까 기뻤을까요? 정신을 차리게 되자 그들은 울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뭘 한겁니까?
    그들은 전투 맹세는 미스바에서 했지만 회개는 벧엘-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와 회개합니다. 
    [삿21: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삿21: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삿21: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벧엘- 하나님의 집에 모여 울면서 기도했던 그들, 민족을 위하여! 회복을 소망하며! 이제라도! 우리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회개한 이 장면이 소망의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
    [삿21: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피차 죽이고 증오하고 공격했지만 화해에 가치를 두고! 지금이라도 화해에 가치를 두고! 
    지금이라도 화해하고 사람을 살려보려고 했던 고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중이 있었습니다. 베냐민의 남은 600명이라도 살려내서 후손을 이어가게 해야겠는데 지금 맹세를 했으니 다시 맹세를 번복할 수도 없어 어떻게 이 일을 해결해야할까 고민하던 그들은 한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을 할 때 길르앗 야베스만 빠졌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분노한 이스라엘은 길르앗 야베스를 또다시 공격하는 살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왜 길르앗 야베스는 이 전투와 이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을까요? 
    이 것을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1)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비겁함- 죽어야 했습니다. 
    2) 용서와 화해를 거부하고 끝까지 베냐민을 미워한 고집- 죽어야했습니다!
    특히 2번째 해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죽어도 나는 화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람은 죽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합니다. 
    우리는 그런 고집은 없는지! 늘 깊이 기도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총회는 화해를 거부하는 길르앗을 쳐서 화해의 제물로 삼기로 하고 길르앗 사람들을 쳐서 멸하고, 그 가운데 아직 남자를 모르는 처녀 400명을 잡아와 베냐민 지파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200명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실로에서 열리는 축제에 예배 몸찬양을 드리는 여인들을 잡아가서- 보쌈을 해서 결혼을 하게 묵인하도록 합니다. 이들은 춤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제사의 춤을 추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삿21: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이 부분은 시각에 따라 폭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전쟁 끝 긴장한 눈으로 이 춤을 추는 여인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와 형제들과 군인들이 있었기에 폭력적, 강제적인 것만은 아닌 축제적 성격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강제성, 폭력성이었다면 대 참사와 전쟁이 일어났을텐데 그런 일이 없는 것으로 보아 양해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처녀들의 부모 형제들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초막절 축제 때, 이스라엘의 대명절 때 생겨난 화해와 축제의 마지막 마무리 장면입니다. 
    [삿21: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삿21: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이렇게까지 베냐민을 살려내려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의 저력을 발견합니다. 
    인간이해, 역사이해, 영혼이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심성이 희망의 씨앗이라고 하겠습니다!

    실로- 예루살렘 북쪽 약 32㎞ 지점; 실로는 예배의 장소-평화를 의미합니다. 
    현재의 실로,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다. 

     

     현재의 실로,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다. 

     

    실로– שִׁילֹה  Shiloh 평화의 장소, 안식의 장소 
    실로는 가나안 정복 후 성막을 있었던 곳으로 엘리 대제사장 때 블레셋에게 법궤를 빼앗기기 전까지 이스라엘의 중앙성소였습니다(삼상 4:3). 성전도, 법궤도 이곳에 있었습니다. (법궤는 잠시 벧엘로 옮기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실로에 대해 창세기 49장에서 야곱은 그 유언을 통해 독특한 구절을 남겨놓은 바 있습니다.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입니다. 실로라는 단어를 평화를 주시는 예수님의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창49:10]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살로가 오시기까지!
    평화의 왕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서 평화를 이루신 그 신비, 그 구원의 사랑!
    그것이 창세기 49:10절, 실로의 신비입니다.

    훗날 이 베냐민 기브아 출신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바로 사울왕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위대한 사도 바울도 바로 이 베냐민 지파 출신입니다. 지파를 살렸더니 역사도 발전되었고 인물이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이야기,성경에 별 얘기가 다 있네요 하신다면 저는  이게 그렇게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이런 일이 없었나요? 우리 가정에는 이런 일이 없을까요? 내 속에 숨겨진 흑역사는 과연 없는 것인가요? 숨기고 있는 것 뿐이지 모두가 크고 작은 흑역사들이 있습니다.  
    추석만 되면 우울증이 도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하고 억울했고 부당했고 아팠고 힘들었고 괴로웠던 기억이 도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가족치유, 관계치유, 기억치유, 과거치유!
    평생을 살면서 너무나도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가족치유, 관계치유, 기억치유, 과거치유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

    오늘 우리 실로로 나아와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실로의 성막터의 유적 

    사랑과 감사로 이 명절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아팠던 일이 많았습니까?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처럼 한번 울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해결책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될대로 되라! 막가자~다 죽어버리자 망해버리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려보려고 애썼던 그 마음 하나를 이 명절에 붙들고 싶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모두의 가정에, 모두의 인생에 부귀 영화 권세는 없더라도 화목하기만 해도 불화만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 추석의 계절, 실로의 평화를 만들고 나누는 사람들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요한복음 13:34절을 기초로 만든 찬송을 함께 부르며 결단합니다!

    466장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 
    요한 복음 13:34절을 본문으로 작사작곡한 스페인 찬송 

    죽기까지 사랑(용서)하신 주 그보다 더 큰 사랑 없네- 
    내가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나 너희들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라 – 
    죽기까지 사랑(용서)하신 주 그 보다 더 큰사랑 없네   

     실로의 성막터에 세워졌던 교회당의 유적 


    • 이준원2019.09.09 12:17


      죽기까지 사랑(용서)하신 주

      그보다 더 큰 사랑 없네-

      내가 너희들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나 너희들을 사랑하듯 서로 사랑하라 –

      죽기까지 사랑(용서)하신 주

      그 보다 더 큰 사랑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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