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나병환자가 무슨 돈이 있다고~
    첨부파일 2개
    9월 6일(금) 레위기 14:21-32 
     제물을 가져옴 - 가난한 나병환자에 대한 배려


    나병환자의 8일째 제2차 정결식에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에는 양이 세 마리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소제물과 기름도 필요했습니다. 

    [레14:10] 여덟째 날에 그는 흠 없는 어린 숫양 두 마리와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한 마리와 또 고운 가루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소제물과 기름 한 록을 취할 것이요 
    그런데 나병환자가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부분 쫓겨나 거지처럼 살았었습니다. 악성 피부병의 경우는 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그 환자들의 친척들이 도와줘야하는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도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위하여 정결례를 드리는데 돈이 없어서 바울이 재정적으로 도와주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행21: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그래서 재정적 힘이 미치지 못하는 나병환자들에게 배려를 해주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비교하자면 양이 세마리에서 한마리로 줄었고 고운 가루도 십분의 일로 줄었습니다. 
    다 자란 수양 한 마리는 120만원 정도이고 여기에서 바치는 어린 양은 3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것도 없는 이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었습니다.  
    * 힘이 있는 나병환자 -> 양 세 마리, 십분의 삼 에바에 기름 섞은 것, 기름 한 록 
    * 가난한 나병환자 -> 양 한 마리, ( 속죄제 양두마리는 비둘기로 대체)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 기름 한 록 

    [레14:21] 만일 그가 가난하여 그의 힘이 미치지 못하면 그는 흔들어 자기를 속죄할 속건제를 위하여 어린 숫양 한 마리와 소제를 위하여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에 기름 섞은 것과 기름 한 록을 취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힘이 약한 자들을 배려하시고 형편을 고려해주셨습니다.
    [레14:22] 그의 힘이 미치는 대로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삼아 [레14:23] 여덟째 날에 그 결례를 위하여 그것들을 회막 문 여호와 앞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그런데 속죄제는 양이 아니라 다른 제물로 대체해도 되지만 속건제물만은 산비둘기나 집비둘기가 아니라 그대로 어린 양으로 해야 했습니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속죄제는 소, 염소, 양, 비둘기, 고운 가루로 형편에 따라 다르게 드릴 수 있었지만 속건제만은 반드시 오직 [흠없는 숫양]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레위기 법의 원칙인데 그래서 가난한 나병환자들도 속죄제물은 비둘기로 대체할 수 있지만 속건제물만은 원칙을 따라 양으로 드려야했습니다. 
    [레14:24] 제사장은 속건제의 어린 양과 기름 한 록을 가져다가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고 [레14:25] 속건제의 어린 양을 잡아서 제사장은 그 속건제물의 피를 가져다가 정결함을 받을 자의 오른쪽 귓부리와 오른쪽 엄지 손가락과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 바를 것이요 

    왜 속죄제는 바꿀 수 있는데 속건제는 가난하거나 부요하거나 간에 반드시 정해진 대로 숫양을 드려야했을까요? 해석해보자면 속죄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형편을 따라 용인해주실 수 있는 부분일 것입니다.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은 제물 때문에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시50: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시50: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시50: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시50: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시50: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시50: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그리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이십니다. 
    [시51:16]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시51: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51:18] 주의 은택으로 시온에 선을 행하시고 예루살렘 성을 쌓으소서 [시51:19]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즉 속죄제의 경우에는 제물보다 중요한 것이 상한 심령과 통회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속건제의 경우는 배상문제가 걸려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배상을 하여 제사장에게 드려야할 것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빚진 것 등을 배상해야했습니다. 배상문제는 그냥 넘어갈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빚진 것을 내가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반드시 갚고 보상하고 배상해야했습니다.
    속건제사는 그래서 배상을 해내야 완성되는 제사였습니다! 성전에서 끝나는 제사가 아니고 사람을 만나 현실적으로 보상하고 갚아야 해결되는 제사였습니다. 즉 사람 사이에서 해결해야할 물질 문제나, 실제적 손해배상관계는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지 말고 반드시 깨끗하게 해결하라는 뜻으로 속건제물은 양보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가난한 자라고 제물은 안내는 것이 기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제물은 결코 돈자랑을 하거나 부담을 주려고하는 의도가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제물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충성의 표시입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마음을 똑같이 드려야했습니다. 
    [출30:15]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헌금은 마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사도 바울이 강조합니다. 
    [고후 8: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제물 자체가 아니라 제물에 담긴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없으셔서 사람의 돈을 취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 돈을 구걸하시겠습니까? 어느 정도 돈이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채우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드린다고 해서 모든 재물을 다 받으시는 것도 아닙니다. 받아주시는 것이 축복인 줄로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의 형편과 처지가 모두 다릅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의 예물도 있고 어려운 가운데 드리는 간절한 예물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보십니다. 

    사실 예배는 설교가 아니라 헌금 시간이 예배의 핵심입니다. 구약 제사의 정신은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러 오는 것입니다. 마음도 시간도 생에서 번 모든 것들도, 영혼도 주님께 드리고 또 받는 것입니다. 제사로서의 예배의 핵심은 드림입니다!

    기도합니다!
    평생 드림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시고 드릴 수 있는 여건도 주시고 마음도 주시고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19.09.06 12:39


      사실 예배는 설교가 아니라 헌금 시간이 예배의 핵심적 중심입니다.
      구약 제사의 정신은 그렇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러 오는 것입니다.
      마음도 시간도 생에서 번 모든 것들도, 영혼도 주님께 드리고 또 받는 것입니다.
      제사로서의 예배의 핵심은 드림입니다!

      기도합니다!
      평생 드림이 부담이 아니라 기쁨이 되게 하시고 드릴 수 있는 여건도 주시고
      마음도 주시고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아멘!

    새글 1 / 868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868 새벽의 풍랑 바다에 찾아오신 예수님! [1
    2020.01.21
    867 네 인생의 비전 맵 Vision Map을 그리라! [1
    2020.01.19
    866 제직의 소명과 사명(2)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1
    2020.01.12
    865 제직의 소명과 사명(1) 주님 나를 부르셨으.. [1
    2020.01.12
    864 여호와 로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 [1
    2020.01.11
    863 호세누 하나님! 내 인생을 뜻깊게 사용하소서 [1
    • 34452256-하늘-배경-위에-오픈-성경-책.jpg

      다운로드

    • 66623476-beautiful-religious-background-stairs-to-heaven-bright-light-from-heaven-stairway-leading-up-to-skie.jpg

      다운로드

    2020.01.10
    862 하나님의 질투! 우리의 사랑을 기다리시는 .. [1
    2020.01.09
    861 여호와 라파- 치유하시는 하나님! [1
    2020.01.08
    860 엘 엘리온-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의지합.. [1
    2020.01.07
    859 엘 올람-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1
    2020.01.06
    858 2020! 우암교회 창립 100주년! 일어나라 빛.. [1
    2020.01.04
    857 내가 믿는 예수님! 그 새삼스러운 감격! [1
    2020.01.03
    85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생명과 빛으로! [1
    2020.01.02
    855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1
    2020.01.01
    854 기도를 통해 무엇이 변화되었는가! [1
    2019.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