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첨부파일 2개
    8월 7일(수) 빌립보서 3:1-11 빌립보 교회를 흔드는 할례당- 자기 과시파들 


    [빌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빌립보서의 별명은 기쁨의 서신입니다. 짧은 4장의 빌립보서에 원어로 볼 때 16번 정도의 기쁨이라는 단어가 나타납니다. 옥중에서 쓴 빌립보서에 나타는 '기쁨'을 생각합니다. 인생의 태도 결정은 내게 달려있습니다. 인생길을 가는 동안 누구에게나 슬픈 일, 괴로운 일, 고단한 일, 즐거운 일, 속상한 일이 번갈아 다가오는데, 그것에 반응하는 태도는 내게 달려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며 사는 태도를 취하기 원합니다! 기뻐하며 웃음을 나누어주면서 살기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같은 말을 쓰는 것- 이 부분에서 저는 사도바울 목사님의 설교준비를 생각합니다. 뭔가 새로운 말을 전해야하는 강박관념^^ 그런데 사도 바울은 똑같은 말씀을 하겠다고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했던 설교 또 리바이벌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체질화될 때까지 되풀이하겠다고 양해를 구합니다. 
    설교를 듣고 사람이 변화됩니까? 그래서 고민입니다. 되풀이 또 되풀이 하는 이유는 설교가 삶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영혼 깊은 곳에 심겨지고 행동으로 드러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빌3: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 (-개역성경 損割禮黨(손할례당)을 삼가라
    개는 좀 모욕적인 표현이지만 최소한의 인격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몸을 상해하는 것- 여기에서는 할례를 받은 것을 유난히 과시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진 독특한 자기 우월감을 말합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헛된 집착과 자기 과시가 강했습니다. 자신의 가문과 연조를 자랑하는 인간적인 과시욕이었습니다. 이들을 바울은 할례당이라고 부릅니다. 가문을 자랑하고 몇대라는 것을 자랑하고 모태신앙을 과시하고 신앙집안임을 과시하기 좋아하며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결국 할례당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마음에 할례를 받은 자들이 진정한 할례당이라고 강조합니다. (롬 2:25-29;골 2:11).
    [롬2:29] 오직 이면적(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그래서 바울은 진정한 할례파가 있다고 한다면 이런 사람들이라고 강조합니다.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할례로 승부하지 말고 진실로 승부하자고 바울은 말합니다! 연조 자랑하지 말라! 누가 더 진실한가로 말하라! 바울의 주장입니다. 할례받은 것 자랑할 것도 없는 것은 할례를 받아도 삶과 인격이 달라진다고 할 수 없고 죄 지을 것은 다 짓는 것을 바울이 절실히 경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연조를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변화가 없는 생애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례요한도 선언한 바 있습니다. 
    [마3: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사실 바울은 완벽하기 원했던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모순 또한 커져 갔습니다. 
    [빌3: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빌3:5]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빌3: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그가 이겨내지 못한 내면의 모순, 로마서 7장의 탄식이 있었습니다.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 바울은 그때부터 구원은 할례나 율법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내면의 숨겨진 모순은 오직 은혜로만 용서받을 수 있엇습니다. 그때로부터 바울은 모든 자아를 다 내어버렸습니다. 자존심도 내어 버렸습니다! 내가 너보다 잘믿는다고 과시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뽐내는 것도 다 버렸습니다! 
    [빌3: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이것이 바울의 일생 고백, 인생 고백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어 고백합니다. 
    [빌3:8]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얻었으면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얻으면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얻은게 뭐냐구 물으시렵니까? 세상의 부귀 영화 좀 얻으셨나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얻었다! 예수님 그분을 얻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나는 예수님을 얻었다! 예수님 그분을 얻었다!그것으로 충분하다!
    바울은 마지막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예수님과 함께 그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합니다.
    훗날 천국에서 발견되지 않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세상에서는 그렇게 유명했는데 막상 천국에 가니까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빌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마지막 날 나는 발견될까요? 천국에서?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빌3:9]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두려워하며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교회 일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나는 죄인일 뿐입니다. 구원받은 죄인입니다.그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과시할 것도 과시할 이유도 자랑할 것도 없음입니다! 그것을 알고 살아갑니다!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이 부분,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이 부분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왜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고난에 참여하셨는지! 무엇 때문에! 왜?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 고난에 참여하게 되어야하는지!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에 참여함을 통해 부활의 권능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 바울의 열망이었습니다!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부활에 이르는 것!
    어떻게 해서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바울은 열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열망합니다! 
    그 고난에 참여하여, 진실하게 참여하여! 마침내! 거룩한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 이준원2019.08.07 11:20


      [빌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이 부분,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이 부분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왜 우리 주 예수님께서 고난에 참여하셨는지! 무엇 때문에! 왜?
      그리고 나는 어떻게 그 고난에 참여하게 되어야하는지!
      십자가의 비밀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난에 참여함을 통해 부활의 권능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 바울의 열망이었습니다!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부활에 이르는 것!
      어떻게 해서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바울은 열망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열망합니다!
      그 고난에 참여하여, 진실하게 참여하여! 마침내!
      거룩한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아멘!
      아멘!

    새글 1 / 818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818 마하나임- 야곱의 기도! [1
    2019.11.13
    817 여갈사하두다 -갈르엣- 미스바 [1
    2019.11.12
    816 벧엘-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1
    2019.11.11
    815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1
    2019.11.11
    814 라오디게아 교회 [1
    2019.11.08
    813 빌라델비아 교회! 지키는 것의 힘! [1
    2019.11.07
    812 키에르케고르;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 [1
    2019.11.06
    811 사데교회- 살았다 하나 죽은! [1
    2019.11.06
    810 두아디라- 용납의 책임! [1
    2019.11.05
    809 감사, 영적 정화의 그 크신 축복! [1
    2019.11.04
    808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1
    2019.11.01
    807 헤렘! 죽음으로 온전히 바친다! [1
    • Yaju-mural-ktv-ceiling-roof-font-b-wallpaper-b-font-font-b-blue-b-font-font.jpg

      다운로드

    • blue-sunny-sky-1600x900.jpg

      다운로드

    2019.10.31
    806 기도의 사람, 고아들의 아버지 조지 뮬러 G.. [1
    2019.10.30
    805 집과 밭을 하나님께 바치다! [1
    2019.10.30
    804 사람의 값! 나의 서원의 무게감! [1
    2019.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