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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샘과 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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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4일(화) 예레미야 2:9-19 웅덩이를 파야 소용없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필 나라가 망하는 때에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다보니 그의 모든 예언은 주로 심판 경고이거나 회개 촉구의 뼈아픈 말씀들이 많았습니다.
    예레미야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세우시다'라는 뜻인데 그는 레위지파의 제사장 가문이었습니다. 지역적으로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서 출생했습니다.(렘 1:1) 예레미야는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한 까닭에 '눈물의 선지자' 라고 불립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왕국의 마지막 시절, 망국의 처절한 시대에 나라를 구해보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처절한 시대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요시야왕 제13년 곧 B.C.627년부터 예루살렘 멸망(B.C.586년) 이후 유다 남은 백성들이 애굽에 이주하여 정착할 때인 B.C.580년까지 여호야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때까지 5명의 왕을 거치면서 약 50여년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고 유다는 결국 멸망했습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 멸망당한 후에도 버티고 있었으나 B.C. 605년 바벨론에 의해 첫 침공을 당하여 복속된 이래 B.C. 597년과 B.C. 586년 거듭해서 침공을 당함으로써 마침내 멸망하게됩니다. 예레미야는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말년에 애굽에 끌려가(렘 43:5-7)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내성적이고 나약했으나 그러나 최선을 다해 예언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렘2:9]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2:10] 너희는 깃딤 섬들(구브로-싸이프러스섬- 당시 이방의 섬-요세푸스)에 건너가 보며 게달(유대 동쪽 아랍부족)에도 사람을 보내 이같은 일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라  [렘2:11] 어느 나라가 그들의 신들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의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하나님께서 참다 못하셔서 직접 유다와 싸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선민의 나라인 유다는 점점 타락해갔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미개한 신을 믿고 우상을 믿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의리가 있어 신앙이 변절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우상을 믿는 사람들도 자기 신에 대하여 두려워 떨 줄 알고 순종할 줄 아는데 하물며 거룩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택함받은 선민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상을 믿는 사람만큼도 못했습니다. 

    [렘2:12] 너 하늘아 이 일로 말미암아 놀라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적 표현입니다만 하나님의 분노와 한탄이 나타나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사라지고 이제 형식적 습관적 믿음으로 내면은 이미 타락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이며 탄식입니다.  
    우리가 받은 신앙이 얼마나 소중한 신앙이요, 감격의 신앙인데! 
    저는 종종 눈물을 흘리며 간증하는 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신앙은 감격이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감격이 사라지면 내 주장과 내 말만 가득해집니다. 내 생각을 말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흉내신앙, 믿는 척 신앙- 웅덩이 신앙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샘과 웅덩이!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십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수의 근원이십니다! 치유하고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주시고 생명을 주시는 은혜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웅덩이는 수맥과 연결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파도 빗물을 가두어도 물은 흙탕물이요 말라버리고 사라집니다. 생명의 물이 아닙니다. 잠시 후면 말라버릴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영적 수맥과 연결되지 못한 신앙이 웅덩이 신앙입니다. 거룩한 영적 수맥-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되지 않으면 무늬만 신앙, 평생 흉내신앙입니다. 남의 신앙을 흉내낼 뿐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으니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그 영적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껍데기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아무 감격이 없는 신앙입니다. 인격이 바뀌지 않는 신앙이기에 자기 말과 주장만 가득합니다. 늘 자기가 웅덩이를 팠기에 그 웅덩이에는 자아의 흙탕물만 가득하고 영혼의 평안이 없습니다. 아무리 웅덩이가 깊어도 수맥이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그것이 더 문제가 됩니다. 만날 기회도 잃었을 수 있습니다. 생수되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말이 줄어들고 영혼은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렘2: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조상부터 종이된 신분)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렘2:15]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렘2:16] 놉 (애굽의 도시 멤피스)과 다바네스(애굽 북동부 지역)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렘2: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그들은 여기 저기 도움을 청합니다. 강대국들에게 아부하면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유다를 침공하고 정수리를 상하게 했습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머리를 밀고 노예낙인을 찍었다고도 해석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스스로 자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그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의 판단에 따라 그런 형벌을 결국 자초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 아니 하지않는 자신에게 책임이 있었습니다.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스스로 자취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렘2:18] 네가 시홀의 물(나일강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앗수르의 강물-유브라데)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하나님을 신뢰하지않고 늘 강대국을 찾아가 아부하고 도움을 받으려하지만 도리어 비참하게 짓밟혔던 것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습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웅덩이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생명수와 연결되는 절대 수맥이 내 영혼에 흘러야합니다. 생수되신 예수님과 연결되어야합니다. 몇십년 습관신앙은 생수가 아닙니다. 웅덩이에 불과할수도 있습니다. 절대 순종으로 절대 겸손으로 절대 진실로 다시 생수와 연결이 되어야합니다. 주님을 부를 때 응답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렘29: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렘29: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 이준원2019.05.14 09:09


      영적 수맥과 연결되지 못한 신앙이 웅덩이 신앙입니다.
      거룩한 영적 수맥- 하나님의 은혜와 연결되지 않으면 무늬만 신앙, 평생 흉내신앙입니다.
      남의 신앙을 흉내낼 뿐 내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으니 껍데기만 남아 있습니다.
      그 영적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껍데기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아무 감격이 없는 신앙입니다.
      인격이 바뀌지 않는 신앙이기에 자기 말과 주장만 가득합니다.

      늘 자기가 웅덩이를 팠기에 그 웅덩이에는 자아의 흙탕물만 가득하고 영혼의 평안이 없습니다.

      아무리 웅덩이가 깊어도 수맥이 연결되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녀도 그것이 더 문제가 됩니다.
      만날 기회도 잃었을 수 있습니다.
      생수되신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말이 줄어들고 영혼은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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