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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9/17 무엇을 위한 싸움인지 먼저 물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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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7일(금)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던가! 사사기 20:17-28


    40만 명이 모인 이스라엘의 군사들이 베냐민 지파와 3번의 전투를 하게 되는데 뜻밖에 두 번이나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 수많은 군사가 죽게 됩니다.
    본문에는 세 번 하나님께 여쭈는 장면과 두 번의 눈물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분명히 앞서 두 번의 질문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전투에서 크게 패배하고 수 많은 군인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여쭈고 또 그 대답을 받은 것은 착각이었을까요? 어떤 오류가 있었을까요? 깊은 묵상이 필요한 장면입니다.
    [삿 20:17]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삿 20:18]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가 먼저 갈지니라 하시니라 (베들레헴유다에서 그가 한 첩을 취하였더니- 한 형제의 범죄에 대해 진정한 회개를 기대하기보다는 마치 이방인과 싸우는 것처럼 승리만을 기원하였다. 이스라엘이 베냐민과의 첫 번째 전쟁에서 크게 패하게 된 것(19-23절)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삿 20:19]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삿 20:20] 이스라엘 사람이 나가 베냐민과 싸우려고 전열을 갖추고 기브아에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삿 20:21]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삿 20:22]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서 다시 전열을 갖추니라 (무엇보다도 그들이 교만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삿 20:23]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삿 20:24]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삿 20:25]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만 팔천 명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삿 20:26]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아서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전까지는 병력의 수효만을 믿고 하나의 요식 행위로 하나님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모든 해결책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는 겸허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삿 20:27]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삿 20:28] 아론의 손자인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시고 섰더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쭈기를 우리가 다시 나아가 내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 주리라 하시는지라
    첫 번째 전투에서 그 군사의 숫자로 보아서 상대가 안될 것 같았던 먼저 베냐민 지파에게 패배하여 2만 2천 명이 죽었고 두 번째 전투에서도 1만 8천 명이 죽었습니다. 40만 명이 다 출전한 것은 아니라해도 다 합해야 2만6천7백 명 밖에 안되는 베냐민 지파에게 무려 4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먼저 적을 가볍게 본 문제를 생각합니다.
    경적필패(輕敵必敗)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뽐내고 우쭐거리며 대적을 무시하다가 뜻밖에 패배할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한 성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자만하며 그 후 아주 작은 아이성을 우습게 보고 공격하다가 처참하게 패배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큰일이 아니라 작은 일들이 모든 계획을 무너뜨릴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생각지 않았던 작은 말 한마디로 무너질 때가 많습니다. 생각 없는 말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주고 큰 갈등의 불씨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 악마는 눈에 띄지 않은 아주 작은 것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항상 깨어있을 일입니다. 경박하고 경솔하지 않도록  자기 생각과 말을 항상 다스려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1~2차 전쟁은 인간의 힘, 40만 명의 군사력을 믿고 일으킨 것이기에 패배했고 3차 전쟁에서 비로서 자신의 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힘을 간구했기에 승리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시편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시 33:16]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나아가 더 깊이 생각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물었던 세 가지 질문과 응답입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누가 올라갈까요라는 질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고응답하셨습니다. 유다는 가장 강한 지파였고 그리고 이번에 끔찍한 죽임을 당한 레위인의 첩의 고향(유다 베들레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심이 필요합니다. 이 대답이 정말 하나님께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착각한 것인지의 문제입니다. 
    저는 목회 활동 중 종종 교인 중에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기도를 많이 하시는 분입니다. 진실한 분입니다. 그러나 늘 조심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단정하는 이면에 자기과시의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그렇게 안들었다고 말씀하시는 분과 갈등이 생기는 것도 보았습니다.
    물론 성경의 증언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응답하셨을 것으로 믿습니다만 결과를 볼 때 그것이 내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으로 여겼던 영적 착각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 세가지 질문은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먼저 이 전쟁의 이유와 당위성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동족이 동족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신중한 태도와 자세가 필요했습니다. 왜 전쟁을 해야하는지를 깊이 생각해야했습니다. 그런데 첫 번째 질문은 당연히 전쟁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누가 나갈까를 여쭈어본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이미 전쟁을 기정사실화 한 자신들의 생각이 들어간 질문이었습니다. 사사 시대의 특징, 이스라엘이 자기 소견대로 행한 모습이 또 드러났던 것입니다.
    둘째 질문에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전투의 패배로 충격을 받은 그들이 '다시' 전투에 나가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은 이 전쟁을 하는 것이 맞습니까? 아닙니까? 였습니다. 반드시 가장 먼저 이 질문이 가장 나와야 했습니다.
    지금 왜 전쟁을 하는 것입니까?
    복수심입니까? 보복과 원수갚음입니까? 전쟁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같은 동족을 죽이는 것이 내 감정을 풀어내는 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정의를 이루기 위한 것입니까?
    전쟁이라는 내용은 같다 하더라도 그 전쟁의 명분과 이유가 분명해야 했습니다.  
    두 번의 패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행히도 큰 깨달음을 얻고 무기를 내려놓고 앉았습니다. 전쟁 중인데 금식을 했습니다. 마음을 다시 다잡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는 동물을 죽여 드리는 제사, 곧 나 자신을 죽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제야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영적 추락을 거듭한 이스라엘은 이제 자기 자신이 가장 큰 대적이 된 것을 깨닫습니다. 
    기도와 깊은 생각으로 싸움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했습니다. 내 분노 감정, 복수심 때문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인지, 생각과 방향과 목적이 정리되어야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보복 감정과 복수심에만 가득 차 흥분한 채로 준비 없이 전쟁에 임했던 그들은 전쟁의 이유를 다시 물으며 자신들의 개인감정을 죽여 태우는 제사를 통해 진정한 전쟁의 당위성을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받기 원했습니다. 
    바른 질문에서 바른 답이 나왔습니다.

    돌이켜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사역과 섬김,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나아갔지만 혹시! 혹시! 지금껏 내가 한 사역들이 혹시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고집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두렵습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오 주님, 내 평생의 사역과 헌신이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기 원합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는 심령으로 다시 간구하오니 나의 자아는 사라지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내는 생애가 되게 하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21.09.17 07:07


      돌이켜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사역과 섬김,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나아갔지만
      혹시! 혹시! 지금껏 내가 한 사역들이 혹시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고집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미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을까?

      두렵습니다.

      다시 기도합니다.
      오 주님, 내 평생의 사역과 헌신이 내 생각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되기 원합니다.
      번제와 화목제물을 드리는 심령으로 다시 간구하오니
      나의 자아는 사라지고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내는 생애가 되게 하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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