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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첨부파일 2개
    3월 5일(금) 마태복음 20:17-34
    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 예루살렘- 그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시다 >

     예수님은 이제 3년간의 공생애를 마무리하시고 구원 사역을 완성시키기 위한 마지막 여정-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그 길을 제자들과 함께 떠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아니, 베드로처럼 알아들었지만 믿을 수 없었고 또 거부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합니다. 제자들도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너무 무서웠기때문이고 자기들의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마20:17]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마20: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人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마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나는 죽을 것이다. 죽어야한다! 그러나 살아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과연 이 말씀을 얼마나 이해한 것일까요? 지금 그들은 이것을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훗날 깨달은 후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고 구원의 신비와 사랑의 은혜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청원>

     [마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마20: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마20: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마20:23] 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이 심각한 장면에서 사태파악을 하지 못한- 또는 거부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것이 기다리던 출세의 길인 줄로 생각한 그 어머니는 미리 청탁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왕권을 잡게 되면 야고보와 요한을 높은 자리에 앉혀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의 이름을 마가복음 15장 40절에 근거해서 '살로메'라고 말하기도 하며, 요한복음 19장 2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이모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내가 마시려는 이 잔을 너희가 마실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과 그들의 어머니는 알아듣지를 못하고 ‘할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 잔이 무슨 잔인줄 몰랐을까요? 오늘 우리에게도 물으실 것입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할 수 있다고 대답했던 야고보와 요한의 대답은 사실 이루어졌습니다. 

    초대교회에서 12제자 중 가장 먼저 순교한 사람이 바로 야고보였기 때문입니다. [행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그리고 요한도 예수님의 어머니를 모시는 이유로 오래 살기는 했지만 그도 밧모섬에 귀양을 가는 등 어려움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들이 말한대로 순교와 고난의 잔을 마시게 되었고 그 결과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순교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지금 이 장면에서는 그들은 순교의 신앙까지는 이해하지 못한 단계였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말합니다. 야고보는 비록 제자들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하여 가장 먼저 하늘에 올랐지만 그전에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800km는 바로 야고보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걸었던 길로 알려져 있고 그 길을 가는 동안 여러곳에 야고보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는 진정 예수님께서 마셨던 잔, 그 고난의 잔, 구원의 잔을 끝까지 마셨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그렇게 이끌어가셨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마셨던 그 잔에 동참하여 생명까지 바친 이들이 되었습니다!


    <끝까지 함께 있었던 어머니들, 여인들>

     여기에서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의 신앙을 생각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치맛바람 어머니라는 이해와는 달리 이 어머니는 예수님을 수발하는 정말 수고 많았던 여인이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도시와 마을로 두루 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할 때 여인들이  그들의 재산으로 예수의 일행을 섬겼다"(눅 8:1-3)고 증언합니다.

    [눅8:3]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임종하실 때 "여인들이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 따르며 섬기던 여인들"(막 15:41)이라고 밝힙니다. 또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받을 때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른 여인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그 여인들 가운데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있었다"(마 27:56)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로 불리운 여인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역하던 처음부터 즉 그녀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아버지 세베대와 삯군들과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선 그때부터 그녀도 고향과 남편과 집을 뒤로하고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 나선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르며, 예루살렘의 수난 현장에까지 올라가고 고난의 순간도 지켜낸 여인이었습니다. 비록 한때 두 자녀를 향한 출세의 집념도 있었으나 곧 신앙적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고난의 순간을 끝까지 지키고 예수님의 부활까지 알린 역할을 감당한 당당한 여인이었습니다. 이때의 발언은 아직 고난을 예측할만한 깊이까지는 이르지 못할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의 수고 또한 우리가 기억해야할 줄 믿습니다! 그들도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늘 곁에서 들었고 믿음이 깊어졌던 여인들이었습니다. 


    <세상의 권리욕, 과시의식을 흉내내거나 닮아가지 말아라!>  

     다른 제자들이 이 두 형제와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했습니다. [마20:24]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20: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마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열두제자 모두가 욕심은 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뿐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역시 인정받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남보다 앞서고 싶고 보상을 받고 싶고 댓가를 얻고 싶었습니다. 경쟁에서 뒤쳐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세상의 삶의 방식, 이방인들의 삶의 방식이 아니더냐!고 물으십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권세를 부리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희는 그런 방식으로 살지 않아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삶의 방식, 세상 권세를 과시하는 방식으로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깊은 곳에 숨겨진 권세욕을 생각합니다. 과시욕을 생각합니다. 그 욕망, 그 본능의 충동을 생각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이 구절은 제가 개인적으로 목회자 초기에 늘 외웠던 말씀이지만 아직까지 완성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하는 두려운 구절입니다!

    [마20: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서번트 리더! 종이 되어 섬기는 리더!>

     섬기는 리더가 되라는 말씀, Servant  Leader! 진정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어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는 섬기는 리더가 됨으로, 허리를 굽혀 세상을 구원하고 머리를 숙여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 원합니다.


    < 불쌍히 여기소서! Have Mercy on me!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에 두 맹인을 만나니다. 여러가지로 긴장된 와중에도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을 뜨게 하십니다.

    [마20:29] 그들이 여리고에서 떠나 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더라 [마20:30] 맹인 두 사람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마20:31]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 [마20:32]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들을 불러 [마20:33]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 [마20: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지금 수난의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 그런데 그 순간에도 치유의 사역은 계속 되었습니다. 근본적으로 구원( 救援 Salvation)은 - 헬라어 소테리아 σωτηρία 즉, 치유(治癒)와 연결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치유-구원의 사역에 최선을 다하십니다. 사복음서에는 약 41회의 예수님의 치유기적의 역사가 나타나 있습니다. 치유를 헬라어로 ‘테라퓨온’이라고 하는데=θεραπεύων, 여기에서 테라피(therapy)라는 영어가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치유에 그치지 않고 전인적인 치유테라피(therapy)를 실시해주셨습니다. 육신 치유 뿐만 아니라 생각치유, 감정치유, 관계치유, 마음 치유를 받은 니고데모나 우물가의 여인, 향유를 부은 여인, 간음하다가 끌려온 여인 등을 포함한다면 예수님의 모든 사역은 바로 이 치유의 구원사역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영혼의 치유사역- 구원사역과 연결되었습니다. 우리의 전도도 복음전파도 그런 의미에서 치유사역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최선을 다해야하는 사역(使役 Ministry)인 것입니다. 맹인들은 적극적이었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를 두 번씩이나 반복합니다(31절). 이것은 단순한 외침이 아니라 절규하는 기도, 외치는 기도였습니다! 일평생 수많은 거절을 당했을 맹인들, 그러나 또다시 외치고 기도하였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예수기도 "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Have Mercy on Us!)>

     그들의 기도는 역사상 중요한 예수 기도(Jesus Prayer)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가장 짧고도 가장 핵심적인 기도였기에 이 기도를 예수 기도라고 부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한 구절을 붙잡고 평생 기도했습니다. 오랜 세월 신앙 전통에서 이 짧은 기도 한마디가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쌍히 여겨달라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스플랑크니조마이!) 
    예수님께서 만져주십니다.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사랑과 치유의 스킨쉽(Skinship)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은 치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기도합니다. 

    오 주님! 이시간 우리를 만져주시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영혼을 감정을 생각을! 
    우리의 닫힌 눈을 만져주셔서 보게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치유하옵소서! 

    우리의 육신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생각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감정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관계를 치유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예수님! 병든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리하여 치유받은 영(靈)혼(魂)육(肉)으로 주님을 따르게 하시고 주님만을 찬양하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주님께서 우리는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해주실 줄 믿습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21.03.05 06:19


      사순절을 지나며 나도 모르게 물들어 있는 세상적 권위의식과 과시의식을 생각합니다.
      너무도 깊게 뿌리박혀 내 생각을 지배하는 이 관념에서 해방되기 원합니다.
      섬기는 종이 되게 하소서! 무릎을 꿇어 섬기는 리더가 되게 하소서!
      아직 그리되지 못함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내 생각을 치유하시고 마음을 치유하시고 몸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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