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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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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4일(목) 마태복음 20:1-16

    포도원의 품꾼들- 은혜의식, 공로의식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아침 6시경)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0: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하루의 일당)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20:3] 또 제삼시에(오전 9시)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20: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20:5] 제육시(오전 12시)와 제구시(오후 3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20:6] 제십일시(오후 5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20: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20: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20: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20: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20: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20: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20: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20: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 포도원의 품꾼들; 공평과 불공평, 은혜와 공로!>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4복음서중 마태복음에만 실려있는데 해석하기 쉽지 않고 많은 영적 도전을 주는 비유입니다. 아침 일찍 와서 일한 품꾼과 오후 늦게야 온 품꾼이 같은 품삯을 받았다는 것이 불합리해보이고 공평성에 어긋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향은 인간의 보상관념을 뛰어넘은 하나님의 구원의 열정과 그 긍휼의 은혜를 생각하는 일입니다. 인간과는 다른 하나님의 관점과 방향성과 뜻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온 사람들의 '원망"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들의 말처럼 종일 더위를 견디며 수고하였는데 늦게 온 사람과 똑같이 취급당했으니 모욕감과 무시당한 느낌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품삯 지불이었고 정서적으로도 만족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드디어 원망하게 됩니다. 인격적으로 비교 모욕을 당했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이해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의 마음과 생각입니다. 주인은 왜 다섯 번이나 인력시장에 나갔을까요? 아침 6시, 9시, 12시, 3시, 그리고 오후 5시까지 나가서 추가로 계속 품꾼들을 고용했을까요? 주인은 왜 청지기를 시키지 않고 직접 인력시장에 나갔을까요? 여기에 가난하고 어려운 품꾼들을 단 한명이라도 구원해보려고하는 집주인의 마음을 이해해야합니다. 그들과 계약을 한 데나리온은 최소한의 하루 생활비였습니다.  하루를 마치는 오후 5시까지 한 푼도 벌지 못한 채 빈 손으로 굶주린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사람들... 하루의 시장이 파해가는 그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장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서성거리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주인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이 비유는 거침돌이 되지 않고 은혜가 될 것입니다.

     전통적인 해석 중 하나는 아침 일찍 온 사람들은 저녁 무렵에 끝나리라 추측하고 적당히 노동했으나 늦게 온 사람들은 뒤늦게라도 일자리가 생긴 것에 감사하여 아주 열심히 일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즉 포도원 주인이 늦게 온 품꾼에게도 일찍 온 품꾼과   같은 삯을 준 것은, 그들의 일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다는 추측입니다. 일찍 온 품꾼은 종일 일하다 보니 조금 느슨하게 일을 하게 됐을 수도 있지만 늦게 온 품꾼은 자신을 불러준 포도원 주인에 대한   감사와 자신에게도 일이 주어졌다는 감격이 겹쳐 열심히 일했을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주인의 긍휼입니다. 이 비유의 주인은 곧 하나님이시요, 계속 시장에 나가서 한 사람이라도 더 품삯을 주고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 해석의 심리적 열쇠 중의 하나는 이 비유를 읽으면서 나는 일찍 온 품꾼의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는가 아니면 늦게 온 품꾼의 마음으로 생각하게 되는가를 스스로 살펴보는 것입니다. 혹시 주인의 태도가 아무래도 불합리해 보이십니까? 공평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어서 이 비유가 마음이 들지 않고 자꾸 마음에 걸리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왜 이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요? 나를 분석하고 내 신앙적 태도와 자세를 생각합니다. 혹시 예수님을 비교적 일찍 믿으셨거나 모태신앙이신가요? 섬기는 교회에서 연조가 오래되시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일을 많이 하셨다고 생각하고 계시나요? 어떤 입장에 내가 서있는지요? 반대로 신앙을 늦게 알고 교회도 나오신지 얼마되지 않으셨나요? 그러나 나오신지 얼마 되지 않은 분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고참이 됩니다. 

     이른 아침에 온 품꾼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제 구시(오후3시)에 온 사람들과 제 십일시(오후5시)에 온 사람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마치! 입니다! 사실 내가 계약한 것을 어기지 않았다는 주인의 말은 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서의 문제, 무엇보다 상대적 비교차별의 문제가 생겨 정서적으로 폭발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주인은 원망하는 아침에 일찍 온 품꾼들에게 말씀합니다.

    <“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

     이 말씀을 이해하는 핵심은 마태복음 20장 직전의 19장의 베드로의 질문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마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마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人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그리고 이 본문의 결론도 똑같습니다.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예수님은 보상을 원하는 베드로에게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보상을 받을만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신을 돌이켜보라는 것입니다. 보상을 받을만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과 그 수고에 대한 정확하고 겸손한 인식이 필요함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나아가 다른 가난한 영혼들에 대한 긍휼을 가지고 그들이 나보다 나을수 있음도 인정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베드로는 이 마음에서 벗어나 모두를 품었습니다. 불편했던 요한과 동지가 되었고 사람들이 거북해했던 늦게 믿은 바울도 다 품었고 말썽꾸러기 마가도 다 품었습니다. 먼저 믿었다고 완벽한 것도 아니었고 때만 묻어갔던 자신을 돌이켜보며 모든 늦게 온 품꾼들을 존중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런 의미에서 갈수록 예수님의 진정한 마음을 알아 진정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예수님의 동역자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공평함의 원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원리를 배우고 기억해야합니다.


    <'공평함의 원리'보다 중요한 '은혜의 원리'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왔기에 더 받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그들도 ‘같이’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고 상급도 ‘같이’ 받고 나누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면 먼저 온 품꾼들도 ‘주인이 선하기 때문에 악하게 보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는데까지 내 마음이 성장해야합니다. 주인의 마음으로 늦게 온 사람이 같은 데나리온을 받아도 참 불쌍하던 그 사람에게 주인이 긍휼을 베풀어주니 참 좋다는 마음까지 내 마음이 넓어져야합니다. 이 마음을 배우지 못하면 서운함과 분노로 은혜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이 비유가 처음 시작하시면서 천국은 이와 같다! 천국은 바로 이런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하셨음을 주목해야합니다. 5시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주인의 마음을 나도 가지면 그 마음이 천국이 됩니다. 그 사랑으로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주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교만의 사슬에 마음이 묶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더 먼저왔고 더 수고했다는 우월의식과 자만심, 불평하는 마음으로 감사를 잃어버린 마음의 가시밭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의식을 잃어버리고 기득권 의식과 공로의식과 서열의식에 서서히 안주하게되면 모든 것이 섭섭하고 기분나쁘고 따지고 들 것 뿐입니다! 그 공로의식이 내 순수함을 빼앗아갑니다. 늘 비교하면서 더 인정받고 더 대우받으려는 욕망이 우리의 감사와 행복을 무너뜨립니다.

     뒤늦게 온 사람들이 같은 보상을 받았을 때 마음이 좀 불편해도 주님의 따뜻한 마음을 이해해주는 것을 배웠다면 먼저 온 사람이나 나중 온 사람들이 함께 천국을 이루어갔을 것입니다. 일찍 왔던 늦게 왔던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다는 것, 그 은혜에 감사할 수 있었다면 정말 행복했을텐데요... 그래서 평생 기도합니다!

    <공로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으로 기쁨의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이 비유를 평생 들어왔습니다. 이 비유가 시험이 아니라 은혜가 되는 것이 내 숙제였습니다. 이 비유에 대한 내 감정반응이 결국 내 신앙의 현주소요 성향이요 수준입니다. 평생을 들었던 이 비유의 해석과 적용은 역시 내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내 생각과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그리고, 교회 헌신의 방법론과 태도와 자세를 공로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으로 바꾸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이 비유를 묵상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주인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이미 내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마20:1]. 이 마음과 사고방식에 이르기를 평생 도전합니다.  마음, 그 사고방식이 거룩해지고 넓어져 이 비유가 시험이 아니라 은혜가 되기를 내 평생 기도합니다. 


    오 주님! 나를 도우셔서 생각과 시야가 넓어져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나도 살게 하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21.03.04 06:22


      이 비유를 평생 들어왔습니다. 이 비유가 시험이 아니라 은혜가 되는 것이 내 숙제였습니다.
      이 비유에 대한 내 감정반응이 결국 내 신앙의 현주소요 성향이요 수준입니다.

      평생을 들었던 이 비유의 해석과 적용은 역시 내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내 생각과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그리고, 교회 헌신의 방법론과 태도와 자세를
      공로의식이 아니라 은혜의식으로 바꾸었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이 비유를 묵상하면서 모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주인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볼 수 있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은 이미 내 마음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마20:1]
      이 마음과 사고방식에 이르기를 평생 도전합니다.
      마음, 그 사고방식이 거룩해지고 넓어져 이 비유가 시험이 아니라 은혜가 되기를 내 평생 기도합니다!

      오 주님! 나를 도우셔서 생각과 시야가 넓어져 주님의 사랑을 나도 살게 하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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