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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고민이 성공했기를!
    첨부파일 2개
    3월 2일(화) 마태복음 19:13-22
    부자 청년의 고민, 나의 고민


    [마 19:13] 그 때에 -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예수님께서는 이 전 구절에서 결혼을 소중히 여길 것을 말씀하신 후 결혼생활의 고귀한 열매인 자녀들을 인정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우리 부모님들도 목사님들의 축복안수를 받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여성과 어린이가 무시당하던 시절, 어린이를 안수해주시고, 작은 자를 세워주셨습니다. 
    - 제자들이 꾸짖거늘
    어린아이들은 늘 시끄럽고 요란하니 제자들이 저리 가라고 꾸짖었던 것 같습니다. 
    [마 19: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7세 이하의 ‘작은 아이들’(파이디아)눅 18:15 신생아 또는 젖먹이 아이, 유아(乳兒)들- ‘브레페’)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님은 마태복음 18:3절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한다고 이미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9: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Wordsworth)가 'My Heart Leaps Up'이라는 시(일명: 무지개)에서 한 말입니다. 어린아이들 때는 순진했는데 세상에 물들어 오염되었다면 그 어린 시절의 마음을 내 아버지, 스승으로 삼아 다시 돌아가야한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 순수했던 마음을 되찾아가기 원합니다.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아주 중요한 질문을 합니다.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성경 원문에는 '보라!' Look! ἰδοὺ 이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제자들에게는 이 장면이 인상깊은 사건이었던 것 것 같습니다. 20절을 보면 청년이라고 했으니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기사는 마가복음 10장과 누가복음 18장에도 나타나는데 마가복음을 보면 이 사람은 예수님께 달려 나아와 무릎을 꿇고 질문했던 사람이었고 누가복음은 그가 관원-의회원 중의 하나라고 했으니 젊지만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었고 진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고 답변하십니다. 하나님 한분만 선하다고 하십니다. 
    [마 19: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예수님께서 선하지 않다는 뜻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이 청년에게 좀 더 진지하게 물으시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한 일을 네가 정말 알고 싶어서, 정말 간절히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이냐고 그 질문의 핵심을 다시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먼저 기본 테스트를 하십니다.
    -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마 19: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마 19: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한 기본 질문을 주십니다. 이중 앞 다섯 가지는 십계명의 내용이요 마지막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레위기 19:18절을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곧 이웃 사랑으로 드러나야했습니다.
    [레19: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그런데 청년은 당당합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잘 지켰다고 했으니 유대교 모태신앙으로 잘 자랐던 것 같습니다. 마가복음은 좀 자세히 설명합니다. 
    [막10:20]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님께서는 그 청년을 귀엽고 기특하게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막10: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그런데 그 청년의 마지막 질문,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What do I still lack?" 은 좀 더 깊이 묵상해야할 내용입니다.
    이 정도면 저 남보다 잘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하는 은근한 내면의 자부심과 자랑의 드러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나만큼 믿는 사람있나요하는 과시욕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는 청년의 마음에 공허함, 또는 스스로 뭔가 2% 부족한 영혼의 갈증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뭔가 열심히 믿는다 했는데도 만족이 없는 영혼의 어두움을 느끼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내가 '무엇을 함으로서' 영생을 얻는다는 생각 자체가 자기 의義의 조건부 거래에 불과한 것입니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인정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는 보상심리가 하나님의 의義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로 그를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그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먼저 귀중히 여기십니다. 사도바울이 절실히 깨달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바울도 그 자신이 율법의 의義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자기 의’(自己 義)를 주장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빌 3:6) 그러나 결국 내 신앙이라는 것이 나를 과시하기 위한 도구였다는 것을 깊이 깨달을 때 은혜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요한복음은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그 자체일 뿐! 예수님께서 알고 계시는 내 자신의 원죄성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죄사함의 은혜를 믿는 것! 그것 뿐! 그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요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요6: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영생도 그래서 예수님을 알고, 믿기 위해 알고, 알기 위해 믿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요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평생 깊이 생각해야할 신앙의 도리입니다!

     그런데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 못했을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충격 요법을 주십니다. 
    [마 19: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신앙의 위선과 자기 만족을 깨뜨리는 강력한 충격요법입니다. 정말 그렇게 남보다 잘믿는다면, 네 모든 소유를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빈 몸으로 나를 따르거라! 모든 허위의식을 깨뜨리는 도전적 명령이었습니다.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고민합니다. 이것은! 내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했던 사람이 바로 성 프란시스코였고 수많은 출가 구도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근심-λυπέω 뤼페오 pain, sad - 청년의 근심, 나의 영적 근심 
     근심, 아파하고 슬퍼했다는 뜻입니다. 고민했다는 뜻입니다. 이 청년이 훗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청년이 이 인생 고민, 신앙고민에 마침내 해법을 찾아내고 성공했기를 바랍니다. 사실, 이런 예수님의 충격요법은 신앙의 진실을 생각하게 하는 영적 도전이지만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진심도 우리가 모두 다 버리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이런 수도사로 제자로 섬기는 자로 베푸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극단적 금욕주의자들이 있어 광야의 기둥에 올라가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감탄하고 몰려들자 그 기둥들은 점점 높아졌고 그 부분 금식과 고행 기도를 통해 자기를 과시하는 일이 생겨나자 교회가 그것을 금지시킨 역사도 있었습니다.
    청빈을 은근히 과시하며 그 댓가로 사람들의 존경을 얻고자 하는 마음 자체도 이미 또 다른 자기 명예의 추구에 불과함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라고 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 Calvin은 그래서 청빈(淸貧)도 좋지만 깨끗한 부유함- 청부(淸富)를 강조했고 모든 삶의 현장의 직업 자체가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프란시스코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또 그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만도 아닙니다. 못 한벌을 걸치고 산다면 무소유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허구입니다. 저소유로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사치와 허영만은 절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청빈도 예수님께서 2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시키시고 이끄시면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인정과 명예를 구걸하여 청빈한 척 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도하시면 순종할 뿐입니다. 사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 청년이 훗날 어떻게 되었는지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청년을 사랑하셨다는 것으로 보아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훗날, 진정 삶의 현장에서 이름없는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영적 성공을 거두었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적도전에서 언젠가는 마침내 성공하고 싶습니다.

     사순절을 지나며, 아니 우리의 평생, 이 청년처럼 우리도 고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제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까? 진정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모든 것을 다 팔고 나갈 수 없음을 알기에 최소한의 정직함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나누고 베푸는 제자가 되기 원합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과시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지금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물질과 시간을 나눈다면 주님께서 기억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늘 부족하고 또 부족할 뿐이라는 겸손을 잊지 않고 살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과 결심을 도우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21.03.02 07:17


      사순절을 지나며, 아니 우리의 평생, 이 청년처럼 우리도 고민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제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까?
      진정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모든 것을 다 팔고 나갈 수 없음을 알기에 최소한의 정직함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나누고 베푸는 제자가 되기 원합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과시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주님의 마음으로
      지금 곁에 있는 이들에게 진실한 마음으로 물질과 시간을 나눈다면 주님께서 기억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늘 부족하고 또 부족할 뿐이라는 겸손을 잊지 않고 살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마음과 결심을 도우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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