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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누가 더 큰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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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5일(금) 누가 더 큰 사람인가 마태복음 17:1-10


     

    < 영원한 내면의 고민- 경쟁, 시기와 질투! 누가 더 큰 사람인가?  >

    [마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마18: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참고로 말씀을 드리자면 이곳에 기록하는 묵상은 새벽기도 때에는 다 하지 못하는 말씀을 기록용으로 연구용으로 또 참고용으로 자세히 남기는 것입니다. 이해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도 함께 나타나는 제자들 사이의 갈등에 대한 말씀입니다. ▶ [막9:33] ▶ [눅9:46]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갈등을 여러 번 목격하십니다. 12제자 사이에도 은근한 암투가 있었습니다. 누가 더 예수님께 인정받고 사랑받고 누가 더 높은지에 대한 견제와 경쟁과 질시였습니다. 인간인지라 제자들 사이에도 경쟁이 있었습니다. 오죽하면 베드로는 마지막 예수님께 사명을 받는 자리에서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요한에 대해서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질 필요없고 너는 네 할 일을 하라고 어찌보면 좀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요21: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요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훗날 성령충만을 받은 다음에는 이런 마음이 씻은 듯 없어집니다. 그리고 요한과 함께 열심히 합력하여 초대교회 부흥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의 뜨거운 협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교훈과 배움이 되었습니다. 인생살이 속에서 내가 옳다, 내가 너보다 높다, 내 말이 맞다, 내가 더 많이 안다, 내가 고참이다, 나를 알아 달라라는 보상심리와 자기 과시 심리가 평생 따라다닙니다. 때로는 교단이나 교회 조직의 선출직 직분이 정신적 병이 되어 교회 안에서도 공로싸움과 갈등과 인신공격이 심해지고 추해지는 것이 아닌가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홀로 영광받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사실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우리에게는 은혜가 되게 하소서!”가 맞건만 너무도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들이 많으니 환멸을 느끼고 생겨난 표현일 것입니다.


    돌이켜! strafh'te 헬라어 스트라페테! Convert! 컨버트!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을 못가면 갈 곳은 한 곳 뿐입니다. ‘결단코’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돌이켜!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이키다' 라는 헬라어 스트라페테는 컨버트 convert 즉 개종하는 것 같은 깊은 결단을 의미합니다. 내 자신의 철저한 점검과 확인을 통해 내려놓을 것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인간은 견제나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질투나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내가 아니라, 나도 함께!”의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독한 것으로 사람을 참으로 초라하게 만듭니다. 성장 과정에서 사랑받지 못하거나 끊임없이 형제들과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사람들은 사람을 잘 사랑할줄 모릅니다. 독한 시기와 경쟁을 극복하는 기적의 방법은 그를 축복하고 인정하고 칭찬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평안해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자꾸 경쟁심으로 추해질 때 꼭 그를 위해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기적의 평안이 내 마음에서 생겨납니다.


    < 예수님의 이름때문에! 그를 영접합니다!>

    [마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교만한 사람을 싫어합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인간세계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을 교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내가 교만하게 오해되지 않는지 자신을 점검하고 제어하는 훈련도 필요할 것입니다. 
    자기를 자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요 겸손은, 수련과 깨달음의 결과입니다. 겸손의 깨달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자기를 낮추는 것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만과 자부심이 구별되어야 하고 <겸손함>과 <겸손한 척 함>이 구별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겸손의 덕(德)이 내 인생의 아름다운 인격의 특징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영접(迎接)하는 것 δέξηται 데케타이(원어), 받아들이는 것, Receive 리시브, 받아들임이 중요합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도 받아들여 주고 체질에 맞지 않는 것도 영접해주고 상대방의 거슬리는 태도도 받아들이고 참아주는 것이 영접함입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사고방식, 내 인격으로는 영접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평생동안 선악으로 구분해 왔고 적대관계로 길들여진 모든 선입견과 편견과 사고방식을 변환시키기 위한  철저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영접한 그 어린 아이가 바로! 뜻밖에도‘예수님’일 수 있음을 성경은 가르칩니다.


    < 실족(失足) 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 >

    [마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失足)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마18:7] 실족(失足)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失足)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失足)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예수님은 사람을 실족케하는 죄에 대하여 엄하게 가르치십니다. 소자(小子)- 별볼일 없는 자를 모욕하고 업신여기는 자는 연자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 하신 예수님은 나아가 죄를 지은  그 손과 발과 눈을 빼어 버리라고까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신체나 용모를 가지고 사람을 모욕함으로서 사람을 실족케 할 수 있습니다. 부모 형제나 출신 고향,  지역, 가문, 학벌 등을 가지고 그를 무시하고 깔보고 모욕함으로서 그를 실족케 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혀가 아차! 실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혀-말은 곧 평소의 생각과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숨겨진 내 인격입니다. 작은 자 하나를 실족케하면 연자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하신 예수님은 이제는 그 손과 발과 눈을 빼어 버리라고까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사회 환경적으로 작은 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영혼으로 이해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별히 그 작은 자들 중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나를 믿는’ 작은 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자는 지금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된 존재들입니다. 국적이나 외모나 가문이나 지역이나 지방색이나 학벌이나 재산이나 성별이나 연령 등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인권을 소중히 여길줄 아는 우리의 인식훈련이 되기 원합니다. 


     문제는 그들을 실족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실족(失足)은 헬라어 원어로는 스칸달리조 σκανδαλίζω 입니다. KJV(킹제임스 버전 성경)은 이것을 offend – 오펜드 - 공격이라고 번역했습니다. NIV(뉴 인터내셔널 버전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But if anyone causes one of these little ones who believe in me to sin” 만일 네가 나를 믿고 있는 이 작은 사람으로 하여 죄를 짓게 한다면...“

     종종 그런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다녔었는데 목사에게 크게 실망하여, 장로님에게 실망하여, 교인들에게 환멸을 느껴서 교회에 다니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큰 죄책감을 느끼고 두렵고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 나를 신뢰하며 존경하며 나를 의지하고 믿음의 길을 걷던 사람들이 바로 내  행동 때문에 크게 실망하고 시험에 들고 신앙에 환멸을 느끼게 되고 교회를 멸시하여 떠나가고 사람을 미워하는 죄를 짓게 된다면, 나는 연자맷돌을 매고 깊은 바다에 빠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것이 먼저 믿은 자들의 고민입니다. 막상 오래 믿어도 본성은 잘 달라지지 않음에도 초신자들은 먼저 믿은 자들, 직분자들에게 지나치게 큰 기대를 하고 완벽한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더 실망하고 실족할 가능성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설명이 위로가 됩니다!


    실족(失足)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마18:7] 실족(失足)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失足)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失足)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실족(失足)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결국 언어를 통해 소통을 하게 되는데 언어소통에서 완벽한 사람이 있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실족케하는 일이 늘 생깁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초신자들에게도 분명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먼저 믿는 사람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지나친 기대를 버릴 것과 모든 사람은 다 한계와 약점이 있다는 것도 분명히 가르쳐 상처를 받지 않을 분명한 지식과 인식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약(弱)한 것이 악(惡)한 것으로 바뀝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을 바라보며 왈가왈부하지 말라고도 분명히 가르쳐주셔야 합니다. 상처받지 않아야할 책임도 있음을 분명히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책임이 있습니다. 불어-프랑스말-로 유명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se oblige],고귀한 신분(귀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귀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그 신분에 걸맞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Obligation of the noble). 그 책임을 평생 의식하고 살아야 한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평생기도이며 고민이기도 합니다. 


    오 주님! 우리의 행동과 삶이 시험거리, 실족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의 언행심사(言行心思)에서 오직 주님 향기가 드러나게 하소서!


    < 수호천사(守護天使) 천사론(天使論) Angelology >


     예수님께서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이 소자(小子)들의 “저희 천사‘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마18:10] 삼가 이 소자(小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18:11] (없음)' 인자가 온 것은 잃은 자를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천주교에서는 천사론이 많이 발전되어 있어 매년 10월 2일을 수호천사의 날로 지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천사론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천사를 하나님의 기능적, 직무적 도구로 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수많은 곳에서 이 천사에 대한 기록이 나타납니다. 때로는 천사로 때로는 사자(使者)로 번역된 하나님의 심부름꾼으로서의 천사와 사자(使者)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시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예수님께서도 천사들의 존재를 경험하시고 인정하시고 또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숭배나 경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혹여라도 천사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천사는 여러 가지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도구일 뿐입니다. 천사는 가치판단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러 모양으로 사용되는 기능적, 직무적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각 개인마다의 수호천사가 24시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와 늘 함께 하고 계시다는 것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날개달린 천사가 보이지 않게 늘 함께 한다는 것보다는 어떤 형태, 어떤 모양으로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고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기능하는 것은 모두가 수호천사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에게 수호천사가 되어주는 일입니다. 오늘 하루 그 누군가에게 수호천사가 되주었다면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평강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샬롬!



    • 이준원2021.02.26 06:37


      주님, 경쟁과 시기와 질투를 생각합니다. 그것이 때로는 나를 자극하여 발전하게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심령을 병들게 하고 내 인격을 추하게 만들었음을 생각합니다.
      마음을 넓혀 그 모두를 축복하며 칭찬함으로서 해방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옵소서!

      모든 약자를 더욱 사랑하게 하시고
      내 언행이 남을 실족하게 하지 않도록 늘 저를 붙들어주시기 원합니다.
      더욱 겸손하게 하시고
      더욱 진실하게 하시옵소서!

      사순절을 지나며 다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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