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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산 아래에서 할 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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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5일(목) 산 위와 산 아래 마태복음 17:14-27 


    [17: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7: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7: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7: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7: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17:21] (없음 각주;(다른 사본;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변화산의 영적 체험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그 변화산에서 내려와야했습니다. 아직은 땅에서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 아래에서 생겨나고 있었던 일은 지금 시끄럽고 복잡하기가 이를데 없었습니다. 산 밑의 세상에는 내려오자 마자 까다롭고 복잡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으로 세 제자들을 데리고 간 사이에 생겨난 일이었습니다. 간질병 걸린 아들을 치유해달라고 데리고 온 사람과 이를 어찌하지 못했던 제자들과 그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건 기사는 마가복음 9장과 누가복음 9장에도 똑같이 나와있습니다. 마가복음은 이 병을 ‘귀신 들린 병’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내어쫓으심으로서 병을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모든 병이 다 귀신으로부터 온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귀신과 관계없이 그들의 병을 치유해주신 적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현상이 귀신의 소행임을 아시고 ‘꾸짖어’ 귀신을 내어쫓으셨습니다. 그동안 산밑에 있던 제자들은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고 이 때문에 서기관들과 변론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서기관들과 제자들은 지금 발작하고 있는 아이는 고치지 못한 채로 왜 아이가 병에 걸렸느냐 누구의 죄 탓이냐, 당신들은 왜 못고치느냐 등으로 시간만 소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예수님이시지만 동시에 아버지의 부정이었습니다. 뜨거운 아버지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을 뜨겁게 역시 움직였습니다. 아버지는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어떻게해서라도 고치고 싶은 마음으로 드린 말인데 예수님의 꾸중을 듣습니다. 유명한 마가복음의 말씀입니다.
    [막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아이의 아버지는 곧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고 요청합니다. 소리를 지릅니다.
    [막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꾸짖고 귀신은 물러나가고 아이는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켜주심으로 깨끗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부끄러운 마음으로 왜 그들은 고칠수 없었는지 예수님께 묻습니다. 마태복음은 이 문제해결로 [믿음]을 강조합니다. 믿음은 용기입니다. 믿음은 절대확신입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안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아가 마가복음은 [기도]를 강조합니다. 믿음과 기도는 결국 기적의 양면성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믿음이요 기적의 도관을 깨끗하게 하는 일입니다. 믿음도 기도도 그 진실함의 차이, 간절함의 차이,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7장 21절은(없음)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은 성경의 장, 절이 결정된 후 사본 비교를 통해서 생겨난 일입니다만 그 원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마17:21] (없음; 각주; 다른 사본;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막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우리도 산밑의 문제를 평생 목격하며 살아갑니다. 산 밑- 문제 많은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오늘 하루도 소란과 아우성과 웅성거림과 말과 탈이 있을 것이고 내 마음도 또 속상하고 우울하고 힘들고 어려울지 모릅니다. 산 아래의 세상은 그런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로 이겨내시고 아주 많이 힘드실 때는 변화산을 생각하십시다. 언젠가는 변화산의 나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 의욕적으로 하루를 살아가시되 치유와 회복과 화목과 사랑과 웃음을 나누어주는 생애가 되기 원합니다! 


    [마17: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人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마17: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다시 제자들은 근심합니다. 그러나 고통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면류관도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노우 크로스 노우 크라운! 중요한 것은 구원의 사역의 신비와 의미를 분명히 깨닫는 일, 거기에 따르는 고통을 미리 생각하며  마음을 준비하는 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신학훈련, 신앙훈련, 마음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우리에게도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잘 준비하여 당당히 이겨나가기를 원합니다! 

    < 생명의 속전-성전 세겔  >


    [마17: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마17:25]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關稅)와 국세(國稅)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마17: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稅)를 면하리라 [마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失足)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에 내는 국가 세금 외에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치는 성전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었고 성전에 관련된 사람들이 거두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의 가버나움에 계시는데 이때는 이미 성전세가 국세처럼 되어 각 지방 회당의 사람들이 전국의 유대인들에게 받으러 다녔던 것 같습니다. 출애굽기 30장은 이것을 생명의 속전이라고 부르는데  이 규례가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출30: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출30: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의 생명[生命]의 속전(贖錢)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疾病)이 없게 하려 함이라 [출30: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聖所)의 세겔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출30:14] 계수 중에 드는 모든 자 곧 스무 살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출30:15] 너희의 생명을 대속(代贖)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출30: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贖錢)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

     모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20세 이상으로 계수된 사람은 누구나 생명[生命]의 속전(贖錢)을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동시에 성전세(聖殿稅)라고 불렸습니다. 성전세라는 말은 당시 성전-교회당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반세겔이라는 돈을 내야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그 의미를 생명[生命]의 속전(贖錢)이라고 가르칩니다. 원래 속전(贖錢)이라는 말은 속죄할 속(贖)과 돈 전(錢)으로서 ‘죄의 보상금으로 바치는 돈=속금(贖金) ransom이라고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코페르'로서 ‘보상하다’에서 온 말로서 ‘몸값을 치르고 석방시키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구나 반드시 생명의 속전(贖錢)을 드려야하는 이유는 이는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며 죄를 속함 받아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제도인 생명의 속전(贖錢)의 헌신 각오와 결단을 드리고 바침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함받고 인정받는다는 뜻입니다. 즉 성전세=생명의 속전은 내가 하나님께 속죄함을 받았다는 은혜에 대한 감사,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아직 살아있어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내 부끄러운 생애를 용서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는 고백,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생명의 값, 내가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부여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겔(Shekel)은 화폐 단위이기도 하고 무게단위이기도 했는데 무게로는 11.4g이고 화폐 가치로는 금과 은이 조금 달랐습니다. 금 세겔은 은세겔의 15배였고 또 은세겔은 노동자 4일의 품삯이었습니다. 요즘 하루 일당을 3만원씩이라고 친다면 3X4= 12만원인데 반 세겔이니까 6만원입니다. 생명의 댓가입니다. 어떤 분은 계산에 따라 30만원으로 계산하기도 합니다. 내 인생의 가격이기도 합니다. 이 생명의 속전은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내는 것이라는 견해와 일년에 한번 내는 것이라는 해석들이 있습니다만 부자나 가난한 자나 똑같이 내어야했습니다.

    [출 30:15]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세를 요구받으시자 성전의 진정한 주인이시요 예배의 주인이시지만 아직 그런 이해를 갖지 못한 이들을 위해 베드로를 시켜 성전세를 준비하게 합니다. 기적이 또 한번 일어났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마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失足)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베드로는 어부였습니다. 어부는 어부의 일을 합니다. 그 정도의 돈은 남들에게 꾸거나 다른 방법으로 구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렇게 대충 넘어가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낚시질을 하여 자기 힘으로 그 물고기를 잡고 그것으로 성전세를 드리자고 말씀합니다. 사실 여러 고기들을 낚았다면 낚은 고기를 팔았어도 그만한 돈이 나올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꼭 그 물고기 입의 동전이 아니래도 그 물고기들을 낚아 팔면 돈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생명의 속전의 의미라면 내가 아직 살아있어 일할 수 있고 노동할 수 있고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자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베드로가 노력할 때 주님께서는 도우셔서 한 세겔을 얻게 하셨습니다.


     

    생명[生命]의 속전(贖錢)!!
    하나님께 드려야할 반 세겔,

     하나님께 드려야할 내 인생의 가치, 내 인생의 가격은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존재하게 하신 내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시며 갚아가시며 헌신하며 살아가기 원합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21.02.25 06:33


      주님, 오늘도 산 아래의 세상을 살아갑니다.
      어쩌면 오늘도 힘들고 피곤하고 어려운 일도 많고 소란한 일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기도와 사랑으로 치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내 삶의 현장에서 베드로처럼 일하게 하시고
      내 생명을 오늘까지 유지해주신 그 은혜, 용서받고 사랑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사순절을 지나는 오늘도 내 생명의 속전을 드리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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