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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여인들의 본심- 하늘의 여왕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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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여종들 되게 하소서! (예레미야 44:11-19)

     

    애굽 땅 다바네스에서도 예레미야의 예언은 계속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는 현실의 고난과 영혼의 곤고함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지금 그곳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도 이민을 와서 고달픈 상황이요, 또 같이 애굽으로 피난민으로 온 유대인들도 고달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깊이 생각하라는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거부할 때 심판 뿐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예레미야도 힘들었습니다. 피난민으로 강제로 끌려온 62세 쯤의 예레미야, 순교를 예감하고 있는 예레미야는 그러기에 사명을 기억하며 원칙을 원칙대로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한 이들에 대한 심판이 선언됩니다. 
    [렘44: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렘44:12]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인간의 고집! 고집이 큰 죄가 됩니다!)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렘44: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렘44: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런데 여기에서 반발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거부하고 반발한 것이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의 비극입니다. 시편의 말씀입니다. 
    [시49:20]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예수님께서도 깨달음의 축복을 말씀하십니다. 4가지 밭의 비유의 핵심도 결국은 깨달음이었습니다. 
    [마13:19]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마13:23]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내 신앙의 깊이는 결국 깨달음에 달려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들의 깨달음을 방해하는지 깊이 묵상할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남자들과 여인들이 예레미야에게 반발하며 거역합니다. 
    오히려 우상 하늘 여왕에게 분향하고 제사를 할 때 더 잘먹고 잘살았으니 이제 예레미야가 아무리 얘기를 해도 하늘 여왕에게 제사를 바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렘44: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렘44: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렘44: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렘44: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자세히 들어보면 이미 유다가 망하기 전부터 벌써 우리와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도 다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았느냐는 주장입니다.
    우상숭배가 그렇게 뿌리가 깊었습니다. 이 하늘 여황은 이미 예레미야 7장에도 나타납니다. 
    [렘7:17] 너는 그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하는 일을 보지 못하느냐 [렘7:18]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렘7:19]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나를 격노하게 함이냐 자기 얼굴에 부끄러움을 자취함이 아니냐 
    이들의 우상숭배는 이렇게 뿌리가 깊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유다백성들이 하나님만을 의지한 것이 아니었고 이미 민간 뿐만 아니라 왕들도 하늘의 여왕에게 제사를 드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하늘의 여왕은 앗수르-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던 여신 이쉬타르(아스다롯- 삿 2:13 ; 10:6 ; 삼상 12:10 ; 왕상 11:5)를 말합니다. 이 여신은 다산과 풍요를 대변한다고 믿어져 바벨론에만 해도 이쉬타르를 섬기기 위한 성소가 무려 180개 정도나 되었었습니다. 이 여신에 대한 숭배는 고대 근동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방 사람들과 구분하여 여호와께서 택하신 선민選民들, 성민聖民들인 유다백성들이 지금 자기들도 원래 하늘 여왕을 믿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기가 막힌 일이요, 기가 막히는 주장과 발언들입니다. 겉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적으로는 하늘여왕을 믿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마치 한국인들의 신앙이 입으로는 기독교인이지만 사고방식은 유교이고 가슴에는 불교가 있을 뿐이라는 평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입으로는 여호와 하나님이었으나 실제 가슴으로는 하늘 여왕을 믿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왕들도 그랬고 모든 관리들이 다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하늘 여왕은 재물의 축복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이들의 주장은 먹을 것이 풍부하면 되는 것이지 무슨 하나님을 굳이 믿어야 하느냐, 하늘 여왕에게 분향하니 더 잘 먹고 더 잘 살더라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재물과 부귀영화가 우상이었습니다. 하늘 여왕이든 뭐든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것을 믿겠다는 말이었습니다. 물욕의 우상에 빠져 영생도 구원도 사랑도 다 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없고 내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의 수준이었습니다.
    내 신앙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만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 복과 은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우리의 진실한 생애를 통해 보장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잘먹고 잘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얼마나 잘 살면 만족하겠습니까? 내 영혼의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성을 칩니다. 여인들도 말대꾸를 합니다. 
    [렘44:19]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남편들과 다 마음이 합해서 우상을 섬겼다고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구절입니다.
    여성들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여종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들이 강한 것 같지만 인류역사상 모든 가정은 어머니가 지배하고 아내가 지배하고 며느리가 지배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여종들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는 여종들이 중요합니다!
    나아가 우리의 속 마음을 우상숭배를 하는 여성들의 마음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이 여인들의 도전 앞에서 내 신앙의 진실성을 점검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 구원과 영생, 그 가치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속 마음은 이 여인들과 같기에 감사할 줄 모르고 살며 늘 원망하며 살며 늘 미워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봅니다.
    그러나, 진정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은 결코 우상에게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 떡을 달라던 백성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영생의 떡이 더 중요하다!  그러자 백성들이 이 말씀을 어렵다고 말하며 떡이나 더 달라고 하다가 떠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위대한 대답을 합니다!
    [요6:67]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요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6: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한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
    생각하면 우리가 우상숭배의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를 생각합니다!
    이 깨달음이 변치 않기를 원합니다!
    깨달음을 주옵소서! 
    영생의 하나님을 아는 깨달음을 주옵소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기도하고 사모합니다.
    이 믿음을 다시 굳게 붙잡고 이 새벽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 이준원2020.10.08 12:13


      하나님만을 믿으십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 복과 은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우리의 진실한 생애를 통해 보장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더 잘먹고 잘살기를 원하는 것입니까?
      얼마나 잘 살면 만족하겠습니까?
      내 영혼의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구원과 영생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신앙,
      오늘도 굳게 잡으시고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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