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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큰 근심, 큰 기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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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근심, 큰 기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로마서 9:1-3 

     

    어제는 광복절이었습니다. 로마서 9:1-3절에 나타난 바울의 애국정신을 생각하며 교훈과 깨달음을 얻고자 합니다.

    교포 출신 유대인인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는데도 고집 센 동족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현실 때문에 큰 고통이 있었습니다. 동족 유대백성들은 바울을 핍박하고 모욕하고 배척하고 거부했고 바울을 그토록 괴롭혔습니다. 마지막 바울의 순교도 바로 이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민족을 포기할 수 없는 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으로 내 동포 내 민족을 구원하고 골육의 친척을 구원하는 것이 바울의 영원한 숙제였고 마음의 약점이었고 부담이었고 평생 괴롭고 힘들었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롬9:1-2]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은 가슴이 너무 아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것은 지금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지금 현재도 이스라엘은 그 인구의 80%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약만 믿고 있는 유대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다만 선지자 중의 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구 15%정도는 이슬람이고 기독교인은 전 인구의 3%에 불과합니다! 바울의 답답한 마음을 절실히 이해합니다. 그래도 박해를 받아도 민족을 버릴 수 없었던 바울은 애국자였습니다. 기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기독교인에게는 국경이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그랬습니다. 
    당시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거짓을 말하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여 백성을 멸망시키기로 하실 때 모세는 그렇게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거역하고 도전했던 백성들이었지만 그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목숨을 내어 놓고 호소합니다. 
    비록 백성이 죄를 짓고 내게도 대적하지만 용서하고 긍휼을 베푸소서- 그렇지 않다면! 자기 생명을 걸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한 이름을 지워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출32: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큰 근심, 작은 근심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이런 저런 일들로 근심하고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감하고 대담했던 천하의 사도 바울도 민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의 근심은 개인적인, 감정적인 인간관계의 괴로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근심과 고통의 수준을 생각합니다.
    [박완서님의 산문집]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가 종종 생각납니다. 꼭 제 모습 같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나라와 민족의 큰 일에는 무관심하다가 늘 작은 일에 화를 내고 흥분하고 소리지르는가? 늘 이 사람이 싫고 저 사람이 밉다는 소리만 하고 있는가? 물론 이분은 수준이 높은 문인이요 신앙인이시기에 그럴 리는 없었겠지만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깊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어쩌면 그렇습니다. 큰 일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내 감정이 상하면 감정 못다스려 흥분하고 분개하고 모두를 시끄럽게 하는 수준은 아닌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근심의 수준, 고민의 수준, 고통의 수준을 생각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고민하고 있습니까? 개인적 감정에 끌려다니는 고민이나 고통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이루어내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큰 고민, 큰 근심, 큰 고통을 배우고 싶습니다. 

     증오와 분노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수 없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바울의 큰 고민은 큰 분노나 큰 증오나 큰  적개심이나 큰 분파심이 아니었음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큰 근심이었습니다. 크게 아프고 슬펐던 것입니다. 큰 증오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무서운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큰 적개심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만 큰 근심을 했을 뿐 저주하거나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적개심으로 결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극을 낳을 뿐입니다. 증오와 분노로는 결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차라리 슬픔입니다. 차라리 눈물입니다! 차라리 아픔입니다! 사랑입니다! 현실 속에서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고 역사가 그렇지 않다고 이상적인 말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습니다! 믿어야합니다! 증오와 분노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갈 수 없다는 것을! 이 나라를 위해 큰 근심, 사랑의 근심으로, 그치지 않는 고통으로 기도합니다. 

    우리 속에 도사린 무서운 금기 언어- 정치얘기, 종교얘기, 지역얘기
    특히 이 코로나와 홍수 등이 겹친 힘든 시점에서 정치까지 분열된다면 소망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가 무엇보다 양극화의 정치적 모든 대립들이 화합되기를 사도바울의 마음으로 크게 근심하며 고통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해서는 결코 안될 아주 예민한 숨겨진 금기 주제가 있습니다. 정치얘기, 종교얘기, 지역얘기입니다. 아무리 분위기가 좋아도 이 이야기만 나오면 싸움과 큰소리가 시작되고 물건들이 부서지기도 합니다.^^ 원수가 됩니다. 그래서 정치, 종교, 지역 얘기는 묻지도 말고 꺼내지도 말라는 것인데 그런데 역설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러기에, 그것이 가장 깊은 곳에 도사린 숨겨진 속마음이기에 어떻게든 풀어보고 싶은 것입니다. 
    생각해봅니다. 
    어느 나라나 의견 차이는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승화시키느냐가 일류국가의 받아들임일 것입니다. 결과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내 의견을 버릴 줄 아는 능력입니다. 정치도 사안별로 야당이 제안해도 맞다고 생각하면 여당도 100% 받아들이고 여당이 제안해도 맞다고 생각하면 야당도 100% 받아들이는 나라는 꿈에 불과한 것일까요? 거기에 깊은 자아의 진통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꿈을 꿉니다. 제발 지역얘기, 학력얘기를 해도 평안하고 무시당하지 않는 그런 나라, 그런 나라! 그런 참사랑과 기쁨의 평화로운 나라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처음 사람을 볼 때 이 사람이 여당인지 야당인지 진보인지 보수인지 네편인지 내편인지 궁금하십니까? 인격을 보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의견을 진영논리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개인적 영성 여정을 이야기하자면 저는 보수적 경건 부모님 밑에서 철저히 신앙교육을 받고 자라다 나중 진보적 신학대학인 모교에서는 사회참여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참 적응이 어려웠습니다. 당시 정의롭고 용감한 자는 당연히 학생운동을 해야했고 안하면 비겁하게 보이던 시절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본 교단도 성령 충만을 강조하는 성풍회와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인권 운동파가 극도로 갈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적극적인 인권운동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신앙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가난한 자, 짓밟히는 자, 억울한 자, 인권을 유린당하는 자의 편에 평생 서겠다는 결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분명했습니다. 때로는 그 사안에 따라 인권유린의 현실이 너무도 아파서 일어나, 나갔고, 뛰었고, 외쳤고, 던졌고, 그리고,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어느 쪽에서 극렬하게 활동하던 때가 있었고 논쟁과 설전과 극한 토론을 피하지 않았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증오만 낳는 것이었고 화해의 길이 아님을 절실히 느꼈던 것입니다! 양극화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웠습니다. 두 가지를 다할 수 없는 것일까? 긴 세월의 고민이었습니다. 어떻게 방향을 정해야 할까? 

    유학을 가서 논문을 쓸 때 이 논문을 쓰고 싶었습니다. 양극화 현상을 하나로 만드는 논문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수님이었던 류 램보 교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었습니다. 
    [램보 교수]님은 [신앙적 개종의 이해]라는 책을 쓰신 예일대 출신의 학자였습니다. 
    Understanding Religious Conversion (Yale University Press, 1992)

     

    박응천 교수, 류 램보 교수, 이목사 

     

    여러 이야기 중 램보 박사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개종을 해야 될 것입니다! 개종이요? Conversion 컨버젼? 다른 종교로요? 아니요, 신앙 안에서의 개종! 보수가 진보로 변하는 정도의 혁명적 내적진통, 진보가 보수로 변하는 내적 진통, 그것은 거의 개종에 가까운 자기 혁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알게 되고 그 개종의 진통과 생각의 변화를 통해서 비로소 다양성 속의 일치( Unity in Diversity)가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아는 목사님들 중에서도 순복음을 하다가 민중운동을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사회운동을 하다가 성령충만으로 바뀌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사상개조, 내적변화의 여정의 진지함일 것입니다.  
    평생 보수였는데 갑자기 진보가 될 수 있을까요?
    평생 진보였는데 갑자기 보수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태어날 때 원래 진보로 태어난 것도, 보수로 태어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보수인 당신도 언젠가 어떤 환경에 있었다면 유명한 민주투사가 되었을 지 모릅니다.
    진보인 당신도 언젠가 어떤 환경에 있었다면 확고한 보수주의자가 되었을 지 모릅니다. 
    진보 없이 어떻게 역사가 발전하며 보수 없이 어떻게 나라가 안정되겠습니까?
    핏대 높여 정치 얘기만 하는 말만의 보수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웃을 사랑하며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보수가 필요합니다. 
    핏대 높여 정치 얘기만 하는 말만의 진보는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웃을 사랑하며 자기 것을 나누어 주는 진보가 필요합니다.
    진지하게 고민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큰 고민을 품고 마침내는 모두를 포용하는 단계까지 가는 진통을 서로 겪어야할 것입니다. 제2, 제3의 개종, 이것이 내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사랑을 위한 것이냐를 물으며! 

    도산 안창호- 대공주의(大公主義)

     

    그것을 주장했던 분이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선생님이었습니다. 도산 안창호의 대공주의(大公主義)는 사사로운 개인감정을 버리고 큰 마음으로 모두를 품고, 사도 바울식으로 하자면 큰 고민, 큰 고통으로 내가 먼저 희생하여 큰 뜻을 이루어내자는 사상이었습니다. 
    그의 웅변이 특별히 힘이 있었던 것은 어디서나 분열하고 파벌을 만드는 기질을 가진 동족들에게 '우리 모두는 형제와 자매 아닙니까? 한 민족입니다.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우리 하나가 되기도 부족합니다~!'라고 가슴으로 외쳤던 뜨거운 큰 지도자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를 기념하는 기념석에 새겨진 글귀 입니다!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증오와 분노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부터 우러난 근심과 정직한 사랑의 고통만이 역사를 바꿀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갑니다. 
    바울의 큰 고민을 풀어나간 시작은 작은 전도의 실천, 사랑의 실천이었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애국이었던 것입니다. 
    교회가 사랑으로 하나 되어 이웃을 구제하고 지역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다시는 차별도 인권유린도 없는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
    큰 근심은 작은 실천으로 해결됨을 바울은 생애를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For The Kingdom) F.T.K

    아프리카 우암 어린이 센터의 벽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F.T.K를 썼습니다!

     

     

     

    지난 주간 우암교회 청년부는 진천읍의 6가정이 수해로 거처를 잃고 마을회관에 거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6개의 생필품을 준비해서 갖다 드렸습니다.

    작은 애국이었고 작은 복음 전도였고 작은 하나님 나라 확장의 수고였습니다!


     

     

     

    이 작은 수고들은 모두 로마서 9장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고민을 우리가 받아 우암가족들이 함께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작은 수고였던 것입니다. 
    이번 주간의 충북 도청 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하여 1천만원을 성금으로 전달하는 것, 그리고 우암 가족들의 성금으로 재해 지역을 가능하면 빨리 방문하여 물건을 전달하는 것도 계획하고 있음은 바로 이 민족 사랑, 나라 사랑,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이 온 세상에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모든 수고는우암가족들의 진실한 헌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수고하시는 당신의 마음을 축복합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수고를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존경합니다!” 
    애국은 가장 가까운 곳의 사랑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우리 다시 거룩한 부흥이 다시 올 것을 기도하고 기대합니다. 
    작은 실천, 작은 마음 하나가 역사를 바꿀 것입니다. 
    코로나로 황무해진 우리의 마음, 
    홍수로 황폐해진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이 불기를 기도하며 찬양하시겠습니다. 

    <결단 복음성가>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 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땅에 임하소서

    <결단 기도>
    1. 코로나의 재확산을 막아주소서! 주님, 긍휼을 베푸소서!
    2. 수해피해로 어려움을 당한 가정들에게 주님! 은혜를 베푸소서!
    3. 대립의 시대는 점점 사라지게 하시고 화해와 평화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4. 우암교회가 계획한 모든 일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지게 하소서!
    5. 우암가족 모두가 한분도 빠짐없이 큰 축복을 받게 하소서! 아멘! 아멘!



    • 이혜신2020.08.17 14:06

      옷은 후줄근해 보이지만
      얼굴에서는
      대한민국 민족 우암교회의 목사님다운 기상氣像과
      타고난 정기精氣가 이미 그때부터 보입니다^^

      이 목사님의 후줄근한 옷을 보니
      고등학교때 입고 다녔던 제 교복이 생각납니다ㅎ

      -교회 일로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어머니께서 아버지의 낡은 옷으로 내 교복(윗옷)을 만들어 주셨고
      그 교복을 잘 입고 다녔던~~

      그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어 어머니가 고이 보관하신 그 교복을 보니;;
      하지만 한 번도 창피하다는 생각을 해 본일 없이 잘 입고 다녔고
      지금도 어머니의 손길을 생각하며 잘 간직하고 있는-

      "큰 근심, 큰 기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아멘~ 아멘!!

    • 이혜신2020.08.17 16:43

      다시 사진을 자세히 보니 류 램보 교수님 옷도 조금....
      아하~
      어쩌면 그 당시의 fashion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 이준원2020.08.19 10:22

      수련주간 중입니다^^
      깜박 자체 댓글을 못달았는데 ㅎㅎ
      이렇게 누님 목사님께서 추억의 이야기들을 나눠주셨네요^^ ㅋ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온 우암가족들께도 평안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시국이 어수선한 가운데서도 주님 평안을 사모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샬롬!
      샬롬! 의 은총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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