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중적 자아에 대한 처절한 고민
    첨부파일 2개
    8월 6일(목) 이중적 자아에 대한 바울의 처절한 고민 로마서 7:15-25

     

    로마서 7장은 사도바울의 처절한 자기 고민이 나타나있습니다.
    어떤 문학에도 이런 진지한 토로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절실합니다.
    [롬7:15]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깊은 고민의 토로입니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습니다, 나라는 사람을 나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분위기와 상황에 따라 내가 어떻게 변할지 나도 모릅니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롬7:16]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건 아니라는 것도 율법을 통하여 알게 되었으니 율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은 율법 자체는 다 맞는 것이고 결국 내가 문제였던 것입니다.
    [롬7:1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원하는 것도 있는데, 원하는 것을 하지 않게 되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닙니다. 내게 이런 악한 생각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내 속에 들어 있는 나보다 더 힘이 센 죄인데 그 죄에 끌려 다니는 것도 결국 나입니다. 
    '내가 아니요, 내 속에 있는 죄'라고 말합니다.  20절, 21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이고, 죄는 누구입니까? 변명같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적인 고민이었던 것입니다. 이중 자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롬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선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것이 소망이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원하지 않는 것을 하고 있습니다. 왜요? 죄는 생각을 조종하고 생각을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가기 전 즐기라고 말합니다. 늙고 죽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고 속삭입니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쾌락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냐고 생각이 생각을 설득합니다. 그래도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왜 아니냐고 강하게 내가 나를 압박합니다. 
    [롬7: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가 끌고 가는 생각대로 이끌리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내가 모르고 싶은 사람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이것 한 가지는 분명해집니다. 죄가 아직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롬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잘못된 일을 해버리는 이것이 인생의 현실임을 사도 바울은 절실히 느낍니다.
    [롬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링에서 권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뇌 속에서, 마음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싸우는데, 악하다고 하는 생각, 이건 아냐라고 하는 생각이 늘 이겨서 선한 생각을 질질 끌고 갑니다. 사로잡아 갑니다. 그 생각의 싸움에서는 죄의 설득력과 펀치력이 너무 강합니다. 늘 패배합니다.
    사도 바울!
    이렇게까지 고민할 죄를 지었을 리는 없다고 봅니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적 완벽주의자였고 영적 결벽 증세가 있었던 분이었습니다. 이것이 자기 의義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제가 아는 원로 목사님은 종종 이 얘기를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산속에 금식과 기도와 수도를 많이 해서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서 말씀도 듣는 유명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를 시험하고자 돈으로 아무리 유혹을 해도, 여자가 찾아가서 아무리 유혹을 해도, 산해진미같은 음식으로 아무리 유혹을 해도 까딱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말합니다. 한 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고! 그리고 가서 말했습니다. 수도사님, 저기에 당신보다 훨씬 뛰어난 수도사가 있습니다. 당신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당신보다 훨씬 위대하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자 그토록 평정을 유지하던 수도사가 얼굴이 붉어지며 크게 화를 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돈이나 이성이나 음식을 멀리함으로서 반대 급부, 인기를 얻는 욕망이 깊이 숨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원로 목사님이 이 평범해보이는 이야기를 되풀이 해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도 공감이 많이 갔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민했던 이유는 겉으로는 아마 완벽했을 바리새적 생활 속에 숨겨진 속사람의 모순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심이 숨겨져 있었고 거기에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에 대한 숨겨진 욕망들도 느끼고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 고백은 진실했습니다!
    24절은 참으로 무거운 고백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죄의 탄식 고백이기도 합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Rom.7:24 What a wretched man I am! Who will rescue me from this body of death? 
    탈라이포로스 에고 안스로포스! Ταλαίπωρος ἐγὼ ἄνθρωπος· 
    여기에서 안스로포스는 인류 전체, 인간 전체를 의미합니다. 모든 인간이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고 있는 것일 뿐! 나라는 인간! 참으로 절망적인 존재!
    그런데 그 고백 뒤에 우리가 이미 예측하고 예상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사실 로마서 7:25절은 수많은 토론이 있는 부분입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장 25절 전반부는 은혜 충만한 본문입니다. 아멘! 아멘의 본문입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데 25절의 후반부가 문제가 됩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런즉! 그런즉? 내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기껏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감사한다고 해놓고 나서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을 알기 이전의 현상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예수님을 알고 나서도 생기는 영적 마음의 현상인가요? 이 무서운 갈등의 문제가 예수님을 믿고 다 해결되어 버렸으면 좋았을텐데, 여전히 갈등은 남아 있는 것인가요? 어떻게 해석해야합니까? 
    그런즉 -아라, Ἄρα Then/ 오운 οὖν, so, 그래서!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말하는데 왜 다시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고 하는가요? 그렇다면 예수님의 구원은 능력, 효력이 없는 것인가요? 예수님을 믿는데도 이런 갈등은 계속되는 것인가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해놓고, 그렇게 멋진 결론을 내려놓고 이제 다시 육신으로는 죄를 섬긴다니 맥이 빠집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 문장이 잘못 연결된 것이라고 봅니다. 또는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겼지만', 즉 '섬기지만'이 아니라 '섬겼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으로 시제를 바꿔 해석하거나, '그런즉'- 이후의 문장을 23절 밑으로 가져다 붙이면 해석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여깁니다. (현대어 성경과 Living Bible은 25절의 마지막 부분을 23절의 뒤로 갖다 붙였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떼어 붙여 읽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장은 고민이 됩니다.

    물론 이 부정적인 표현에 잠시 멈칫하지만, 8장이 해결해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마지막 절은 8장 1,2절로 이어 읽을 때 비로소 바로 이해가 됩니다. 즉 로마서 7장 25절의 좀 아쉬운 부분은 8장 1,2절의 확신에 찬 선언으로 해결을 얻는 것입니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런데!
    다시 7장 25절로 돌아갑니다. 그래도! 8장 1,2절의 확신에 찬 선언으로 마음이 든든해졌지만 여전히 25절의 이 구절이 현재형이라는 것을 주목하게 됩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 전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후에도 여전히 율법시대처럼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7장 25절을 해석하며 이것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경험하고 있는 내적 고민을 토로한 부분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율법 시대의 마음의 고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이런 고민은 계속 됨을 사도 바울이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 앞에서 고민했던 나는 은혜 앞에서도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갈등은 여전히 있고 평생 따라다닐 것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함은 없으나 내 마음은 여전히 이중적 갈등 속에 놓여있을 수 있으며 분명히 죄로부터 벗어났지만 아직 죄 가운데 있는! 엄중한 현실을 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그러나 평생을 조심하면서 은혜 가운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고백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를 모독하지 말고, 네 자신에게 너무 자신만만하지 말고, 늘 조심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7장 25절은 “이미 예수님을 믿어 은혜를 받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상태를 다시 정리하자면….”이라고 읽고 8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 육신에 남아 있는 구습이, 그로 인한 그리스도인의 내적인 갈등이, 이 땅에 있는 동안 없어질 것으로 쉽게 생각하지 말 것을 경고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성경학자들이 치열하게 토론하는데, 냉정히 말하자면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똑같이 바울처럼 고민하고 있기에, 이 말씀은 토론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경험의 내용인 것입니다. 우리? 그렇습니다. 뭐 심각하게 토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7장 25절 후반부처럼 살고 있습니다! 
    즉 율법 앞에서 고민했던 나는 은혜 앞에서도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율법과 은혜가 다른 것이 있다면 율법은 내가 내 의지와 결심으로 율법을 이루어보려는 애씀이라면 은혜는 주님의 도와주심이 있습니다. 이끌어주심이 있습니다. 결국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여전히 나는 갈등하고 살지만 은혜 가운데 있을 때! 나를 도와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결국은 우리를 만들어갈 것을 믿습니다.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 평생 거룩의 길, 성화(聖化)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를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계속 내 자신과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의 것이 될 줄로 믿습니다. 7장 23절에서는 패배했지만 그러나 마침내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을 믿습니다!
    내가 나를 쳐서 복종시킬 뿐입니다.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날마다 내 자아가 죽어 주님의 뜻을 이루어 낼 것입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20.08.06 10:02



      뭐 심각하게 토론할 필요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도 7장 25절 후반부처럼 살고 있습니다!
      즉 율법 앞에서 고민했던 나는 은혜 앞에서도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만 율법과 은혜가 다른 것이 있다면
      율법은 내가 내 의지와 결심으로 율법을 이루어보려는 애씀이라면
      은혜는 주님의 도와주심이 있습니다. 이끌어주심이 있습니다. 결국은 구원의 길로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여전히 나는 갈등하고 살지만 은혜 가운데 있을 때!
      나를 도와주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결국은 우리를 만들어갈 것을 믿습니다.
      마침내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를 도우소서!

      아멘!
      아멘1


    새글 0 / 799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공지 ♥ 사랑하는 우암가족 여러분들께!
    2020.02.28
    공지 ★ 코로나! 교회가 세상의 마지막 소망이 되.. [3
    2020.02.26
    769 바울의 일생의 은혜 기억-다메섹 사건! [1
    2020.09.16
    768 9월 16일(수) [새벽 묵상] 예레미야의 기도.. [2
    2020.09.15
    767 9월 15일(화) [새벽 묵상] 감옥에서 땅-미.. [2
    2020.09.14
    766 “다니엘아 갈지어다! 사명의 길, 사랑의 길.. [1
    2020.09.13
    765 9월 11일(금) [새벽 묵상] 너무 아름다워 .. [2
    2020.09.10
    764 9월 10일(목) [새벽 묵상] 희망! 그리고 깊.. [2
    2020.09.09
    763 "빌립! 에디오피아의 내시를 전도하다.. [1
    2020.09.09
    762 9월 9일(수) [새벽 묵상] 소망의 조건! [2
    2020.09.08
    761 9월 8일(화) [새벽 묵상] 예레미야가 바벨.. [2
    2020.09.07
    760 "다니엘아 갈지어다! 사명의 길, 사랑.. [1
    2020.09.05
    759 9월 4일(금) [새벽 묵상] 희망! 이 곳에 그.. [2
    • 66623476-beautiful-religious-background-stairs-to-heaven-bright-light-from-heaven-stairway-leading-up-to-skie.jpg

      다운로드

    • a8c88a0055f636e4a163a5e3d16adab7.jpg

      다운로드

    2020.09.03
    758 9월 3일(목) [새벽 묵상] 정치적 입장과 .. [2
    2020.09.02
    757 [수요 사도행전 강해] “우리가 믿을 때 정.. [1
    2020.09.02
    756 9월 2일(수) [새벽 묵상] 죽음 앞에 선 예.. [2
    2020.09.01
    755 9월 1일(화) [새벽 묵상] 눈물의 선지자 예.. [4
    2020.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