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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도 긴 신학논쟁, 믿음과 행함 - 아브라함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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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9일(수)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위 논쟁 로마서 4:1-8


    로마서 4장 전체가 아브라함의 믿음과 행함에 대한 토론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믿음'과 '행함'은 치열한 논쟁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당시 초기 신학이 정립되던 시기에 바울이 믿음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말했고 행함은 그 뒤에 따라오는 것으로 강조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안에서도 이 신학적 방향에 대한 토론이 있었던 것을 야고보서를 통해 추측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4장 전체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모든 민족은 아브라함이 가장 먼저 '유일하신' 하나님을 '바로','진짜' 만나 믿은 사람이라고 여겼고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축복하셔서 민족의 조상을 삼았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말하는데 바로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이 조상이라는 말이 무려 6번이나 나타나납니다. [롬4:1], [4:11], [롬4:12], [롬4:16], [롬4:17], [롬4:18] 그런데 그것은 단순한 혈통의 조상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이었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행함이 아니라 무엇보다 믿음이었고 믿음이 먼저였다는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기 전에 이미 순종의 절대 믿음부터 있었고 행함과 축복은 그 뒤에 따라온 것임을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처음 부름 받을 때 무슨 '행함'으로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 없었는데 다만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믿음 하나'로 인정받았고 그 믿음으로 하나님께 선택되었고 그 축복과 은혜의 길에서 행함은 저절로 따라온 것일 뿐이라는 신학적 해석 방향입니다.

    [롬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하리요 
    종종 이 구절에서 우리의 믿음의 세월을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예수님을 믿고 온 세월, 그동안의 헌금을 다 합하면 아파트 몇 채를 사고 잘 운용했다면 큰 돈을 벌었을지 모르고, 그동안의 교회를 위해 쏟은 시간으로 사업을 했다면 더 큰 부자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런즉, 여기까지 몇십년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며 살아오는 동안 무엇을 얻었다하리요? 무엇을?! 
    은혜를 얻었고 삶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이유를 알게 되었고 구원과 영생을 얻은 삶을 살게되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것 있습니까? 

    다시 바울은 강조합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다!!!
    [롬4: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롬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바울이 믿음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율법이 행위를 강조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율법은 행위를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었는데 언제부터 율법은 마치 행함만을 강조하는 것처럼 되었고 나아가 율법적 행위만 잘 하면 구원에 이르는 것처럼 신앙이 오해되는데 대한 분명한 선언이었습니다. 믿음없는 행함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롬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만일 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봉사하고 헌금하고 섬기고 행한 모든 것 때문에 그 보수, 그 댓가로 당연히 구원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을 통한 감격도 은혜도 없이 구원이라는 것도 내가 이쯤 남보다 더 많이 노력했으니 당연히 주어지는 것 아닙니까? 구원은 내 수고에 대한 당연한 보수 아닙니까?라고 생각한다면 이미 신앙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율법을 다라 엄청나게 많은 '행함'을 남보다 더 많이 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을 믿고 나서도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믿음 하나로 의롭게 여기시는 사랑을 발견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복받았다고 말합니다.
    [롬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롬4: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롬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이것은 사실은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인들을 그렇게 박해하다가 아무 이유도 없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때 순종하여 아무런 공로도 없이 택함을 받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감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모든 논리와 교리에는 바울의 이런 감격의 자기 간증이 깔려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도 그렇다고 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택해주심에 감격해서 더욱 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행함으로' 순종하게 된 것이었다고 확신했습니다. 
    바울의 빌립보서의 유명한 고백이 있습니다.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기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택하신 나의 미래의 가능성!이었습니다. 바울은 평생 이 감격을 잊지 않고 남보다 더 많이 '행'하며 살아갔습니다! 
    사실은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엄청나게 사회에 돈을 환원하고 수억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는 것을 봅니다. 아주 귀한 일이고 소중한 일이지만 냉정히 말하자면 그것은 구원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은 소중한 것, 배워야할 것, 그러나 그것이 믿음이 없는 자기 자선에 불과하다면 믿음과는 아무 상관없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그러기에 구원과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 그것이 믿음이요, 구원의 시작임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런 주장이 초대교회에 많은 토론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말만 가득한 위선을 질책하고 행함을 보이라고 가르치셨고 그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도 그런 의미에서 말만 가득한 신앙인들을 꾸짖는데 바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 아니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약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약2:21]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약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약2:23]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약2:24]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이에 대해 히브리서는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라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히11:11]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가 많아 단산하였으나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알았음이라
     [히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이 믿음과 행함의 토론은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긴 교리적 논쟁이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바울도 야고보도 믿음도 행함도 분명한 분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두분다 믿음으로 순교했고 두분 다 남보다 훨씬 뛰어난 행함을 보였습니다.
    바울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교회 안에서 '행함'으로 자기를 과시하며 은혜를 잃어버리고 교만이나 자기 의에 빠지는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보았기에 철저히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믿음의 순수성을 잃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본래 믿음- 겸손을 회복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때 진실한 행함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행함이 더 진실한 행함이라고 보았습니다. 
    야고보는 또한 믿음이 좋다는 사람들이 말만 가득하고 실천이 없고 행함이 없는 것에서 큰 문제를 발견하고 말과 교리만 앞세우지 말고 작은 것 하나라도 행해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에서 발견한 모순이요 거짓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바울과 야고보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 진실한 믿음만이 진실한 행함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 믿음이 없는 행함은 가짜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처음부터 믿음도 아니었다는 것!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깨달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택함을 받았는데, 내 믿음은 분명한가 하는 점입니다. 내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아니면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습관인가? 내 헌금은 믿음의 헌금인가? 아니면 사람을 의식한 헌금인가? 나의 봉사는 어디에서 나온 마음이요 행함인가? 
    믿음과 행함! 이 논쟁많은 단어들은 결국 '진실성!'이라는 단어 앞에 하나로 묶일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진짜이고 진실하다면!으로 귀결되는 문제입니다!
    그 믿음의 진실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비오는 아침입니다!

     


    • 이준원2020.07.30 09:23


      결과적으로 바울과 야고보는 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 진실한 믿음만이 진실한 행함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
      믿음이 없는 행함은 가짜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처음부터 믿음도 아니었다는 것!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깨달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택함을 받았는데,
      내 믿음은 분명한가 하는 점입니다.
      내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인가? 아니면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습관인가?
      내 헌금은 믿음의 헌금인가? 아니면 사람을 의식한 헌금인가?
      나의 봉사는 어디에서 나온 마음이요 행함인가?
      믿음과 행함! 이 논쟁 많은 단어들은 결국 '진실성!'이라는 단어 앞에 하나로 묶일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이 진짜이고 진실하다면!으로 귀결되는 문제입니다!
      그 믿음의 진실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비오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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