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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죄, 구원, 새로운 삶!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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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21일(화) 로마서 1:18-25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

     

    로마서 묵상을 시작합니다. 다른 성경도 그렇지만 로마서에는 한 구절을 붙들고 몇 년씩, 또는 몇 십년씩 깊이 깊이 묵상해야할 말씀들이 많습니다. 
    4복음서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생애를 기록한 것이라면 로마서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교리에 대한 최초의 논리적, 신학적 서술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쓸 이 때까지는 로마를 가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로마교회는 베드로가 세웠다는 설, 아굴라-브리스길라 부부가 세웠다는 설, 백부장 고넬료가 세웠다는 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로마에 교회가 이미 세워져 있었고 바울은 그 교회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교회에 그동안의 깊은 신학적, 신앙적 성찰이 담긴 기독교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고린도’에서 고린도 교회가 교회로 사용하고 있던 고린도 교회의 ‘식주’-“가이오의 집”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롬 16:23). 가이오라는 이름은 고린도전서 1장 14절에서도 등장하는데, 그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서 그리스보와 함께 직접 세례를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로마교회에 전달한 사람은 고린도에서 가까운 곳에 개척된 겐그레아의 여자 집사 뵈뵈로 여겨집니다. 겐그레아 교회는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10km떨어진 곳 항구도시에 세워진 교회인데 아마도 그 교회는 뵈뵈가 여집사 (일꾼- 디아코노스-디컨 Deacon)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롬 16:1-2)
    로마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뉴욕이나 런던같은 도시였습니다.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로마는 전 세계에 도로망을 설치하는 작업을 했고 경제력과 군사력에 있어서 또 문화에 있어서 세계의 중심도시였습니다.
    그곳으로 많은 유대인들과 또 기독교인들이 나 미국 L.A.에 이민간 한국인들이 많은 것처럼 이민을 해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로마서의 마지막 장인 로마서 16장에는 서로 이미 얼굴을 알고 있는 수많은 아는 이름들에 대한 안부가 나타나 있습니다.

    로마서는 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구원받은 자의 새로운 삶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죄론- 구원론- 성화론!
    인간의 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구원받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죄론(롬 1:18-3:20), 구원론(롬 3:21-11:36), 기독교 윤리-성화론(롬 12:1-15:13)
    즉 이 세가지 주제를 깊이 사유하고 있는 것이 로마서이고 이 주제는 곧 오늘의 신학의 기본이 되었습니다. 죄론과 구원론과 성화론! 이것이 신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은 이 로마서를 기독교의 신학적 기초로 생각하여 로마서를 그토록 예찬합니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로마서는 모든 신학자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책입니다.
    먼저 로마서는 죄에 대해서 철저히 경고합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경고합니다. 죄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서는 구원도 은혜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신학대학 졸업 논문을 쓸 때 존경하는 박봉랑 박사님- 하버드 출신이셨고 인격적으로 너무나도 훌륭하셨습니다. 그 박박사님께 인간론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상담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인간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평생 숙제와 질문이 인간은 무엇인가였습니다. 그런데 '인간론'을 쓰려면 '죄론'을 쓰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인간론'이란 결국 '죄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의 깨달음이 참으로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학에는 '인간론'이 따로 없는 것이로구나! '인간론'은 결국 '죄론'인 것이로구나!

    바울은 구원을 이야기하면서 죄를 먼저 말합니다.
    인간 모두의 죄, 원죄와 자범죄를 말합니다!
    특별히 세상 문명을 자랑하던 로마가 더 타락하기는 했겠지만 이것은 전 인류에 주는 경고이기도 하고 모든 인간에게 주는 경고이며 내게 주는 정확한 실상의 선언입니다! 너는 죄인이다!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 깨달음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 죄에 대한 고발이 1-3장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로마서 1:18-1:32절까지는 “이방인의 죄”, 로마서 2:1-3:8절까지는 “유대인의 죄”, 로마서 3:9절에서는 “우리의 죄”(구원받은 자들-그리스도인들-의 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3:10-18절은 최종적인 “죄의 판결문”이라고 할 수 있고, 로마서 3장 19-20절에서는 “율법의 기능과 한계”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죄의 속박을 이기는 것은 결국 은혜였고 믿음이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1:17절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유명한 구절입니다. 
    하박국서 2:4절을 인용한 구절인데, 믿음! 믿음! 그 믿음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묵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과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앞으로 깊이 계속 묵상할 것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구절은 그래서 외어 놓을만한 구절입니다. 종교개혁이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당에 95개조의 질문을 붙인 날을 기념하여 1517년을 기점으로 삼는데, 그렇게 외우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로마서 1:17절입니다. 

    [롬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부분은 직접계시를 받지 못했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자연 속에, 양심 속에) 보임이라" 즉 하나님께서는 직접 계시–예언자들이나 율법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나 사도들을 통한 계시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미 자연과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의 양심, 윤리, 도덕은 이미 우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그래서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꿈으로 계시로, 예언자를 통해서 이미 계시하셨고 또 양심을 통해서도 이미 계시하셨습니다.
    사실 늘 받는 질문 중의 하나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 등은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었고 복음도 전파되지 못했는데 천국에 갔나요, 지옥에 갔나요하는 질문들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어떤 선행에도 불구하고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은 하나님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공의를 따라 판단하십니다. 억울하지 않게, 그리고 부당하지 않게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것이니 하나님께 맡겨드리면 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고 지옥에 가는 것을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달려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우리 하나님의 결정을 믿으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복음을 알고 구원을 선포받은 이들은 알고 있는 만큼의 엄중한 책임이 있음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야말로 핑계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부분은 로마서에서 여러번 언급이 되는데 미리 로마서 2:4절을 읽어보고 묵상했으면 좋겠습니다. 깊은 내용입니다!
    [롬2: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롬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바울은 죄를 이야기 합니다. 구원이란! 그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입니다. 용서받고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것이기에 죄의 엄중성을 말합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 (διαλογισμός  디알로기스모스- 생각, 판단)이 허망하여지며 (ματαιόω 마타이오오 Vain) 미련한 마음( καρδία 카르디아 heart) 이 어두워졌나니 ( σκοτίζω 스코티조 darken) [롬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롬1: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롬1:21] 하나님을 알되-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살아 계신다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그 믿음대로 살아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특히 감사를 주목합니다. 감사하지 못하니 늘 표정이 일그러져 있고 눈과 입이 처져 있습니다. 감사하면 눈이 빛나고 입도 쳐지지 않고 불면증도 이겨내고 고독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감사합시다!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다! 
    인생의 무서운 도전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도전입니다. 
    생각은 왜 늘 허망해지는 것일까요?
    마음은 왜 늘 어두워지는 것일까요?
    우울증과 고독과 공황장애와 시선 불안증은 왜 평생 따라다니는 것일까요?  
    그것이 원죄의 증거입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원죄의 DNA도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 치유받기 원합니다.
    은혜로 내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목적을 점검하여 생의 뜻이 분명해지고 방향이 분명하기만 해도 많은 부분,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허망한 생각,
    어두운 마음을 주님! 치유하소서! 아멘! 아멘!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면 인간들은 대체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마음을 둘 곳을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적인 타락에 집착하게 됩니다. 동성애가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인간은 본능적으로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하고 손으로 만지고 싶어합니다. 그래야 만족을 얻고 안심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눈으로 보는 신앙을 막으시고 영으로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깊이 숨어져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통해 우리를 만나시고 영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보이고 만져지는 물질 세계를 직접 창조하셨고 또 그 속에서 역사하시지만 그러나 내 속의 깊은 영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수많은 우상들을 만들어냈습니다.
    게다가 성적 타락이 심한 가운데 동성애가 있었습니다.
    사실은 동성애는 창세기부터 나타난 대표적인 죄악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발달된 도시일 수록 그런 일탈의 자극적 동성애 문화가 범람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의 문화에도 이 타락한 문화가 많음을 듣고 안 바울이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든 죄는 원죄로부터 나온 것! 그 본성!
    바울의 죄에 대한 지적을 생각하며 내 내면을 생각합니다. 생각이 허망해지지 않기를, 마음이 어두워지지 않기를! 오 주님! 우리를 이끄시고 도우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20.07.21 11:06


      생각이 허망해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다!

      인생의 무서운 도전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도전입니다.
      생각은 왜 늘 허망해지는 것일까요?
      마음은 왜 늘 어두워지는 것일까요?
      우울증과 고독과 공황장애와 시선 불안증은 왜 평생 따라다니는 것일까요?
      그것이 원죄의 증거입니다. 인간의 영혼에는 원죄의 DNA도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 치유받기 원합니다.
      은혜로 내 인생을 새롭게 해석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삶의 목적을 점검하여 생의 뜻이 분명해지고
      방향이 분명하기만 해도 많은 부분,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허망한 생각,
      어두운 마음을 주님!
      치유하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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