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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사마리에 교회가 세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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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일- 사도행전, 환란 속에서도 복음은 확장되다! 
    사마리아에 교회가 설립되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에 박해를 피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흩어지게 됩니다.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습니다. 지금 그럴 형편도 아니고 그럴 처지도 아니었으나 그들에게는 복음의 열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 여러 신앙인들이 사마리아로 피신하게 되었는데 그중에 빌립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제자 빌립이 아니라 7집사 중의 하나인 빌립으로 여깁니다.)
    빌립의 위대한 공헌은 바로 사마리아를 전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마리아는 영원한 숙제였습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숙제가 바로 이 사마리아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도행전 1장 명령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왜 사마리아를 강조하셨을까요? 더 먼 나라도 많았을 것 같은데, 바로 곁의 지방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구원받아야할 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사마리아를 조금 연구하고자 합니다. 사마리아는 구약의 세겜지방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머물렀고(창 12:6)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중에 이르러 장막을 친 곳이며(창 33:18), 여호수아가 에브라임 지파와 단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준 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축복의 산 ‘그리심’과 저주의 산 ‘에발’이 있는 곳입니다. (요즘은 사마리아 지역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자치구가 되었습니다.)
    그 후 사마리아는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이 분열된 후 북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B.C. 722년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면서 앗수르왕 살만에셀이 통혼 정책을 쓰고 병합 정책을 썼습니다. 그때부터 역사의 갈등이 생겨났습니다. 
    [왕하17:24]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그들이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 
    사마리아에 긴 세월 앗수르 민족이 이주해서 서로 섞여 사는 동안 혼혈인들이 많이 생겼고 게다가 앗수르의 우상들도 많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순혈주의를 강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미워하고 손가락질하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가면서 이 대립은 아예 역사적 정서로 굳어져 사마리아 사람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정서가 되었고 그 정서가 대를 물려가며 이어졌습니다. 
    누군가 이 정서를 바꿔야하는데 워낙 대를 물려 이어받은 증오를 바꿀 용기가 없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놀랍게도 우상 숭배의 와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고착된 그 왕따 정서는 좀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와 배경을 아십니다. 
    그 당시 존경받는 지성인이라는 사람도, 제법 배우고 교양있다는 사람도, 믿음이 좋다는 사람도 사마리아를 괴롭히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비웃고 왕따시키고 소외시키고 미워하는 정서에 동참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교정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보셨습니다. 부당하고 억울한 사회적 불평등, 오류된 인식에 도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마리아에 관심을 가지셨는지 성경이 여러번 증언합니다.

    * 사마리아 수가 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여인을 만나 전도하셨습니다.(요4:3- 14) 
    지금도 사마리아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던 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야곱의 우물이라는 표현이 없지만 야곱이 밧단아람, 곧 하란에서 되돌아와 세겜에 이르러 땅을 사고 그곳에 정착했다(창 33:18-20) 세겜에 정착해 살면서 우물을 팠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 누가복음 10장의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에서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을때 사마리아인이 구원해주었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십니다.(눅10:30-37).
    * 문둥병자 10명을 고쳐 주셨을 때 사마리아 사람 하나만 와서 감사했습니다. (눅17:11-19).
    * 예수님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비난하고 비아냥 거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요8: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당시 너도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이 최고의 욕설이고 공격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갈 때에도 직선으로 가지 않고 우회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우회하지 않으시고 늘 의도적으로 그곳으로 지나가셨습니다. 
    때로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박대를 당해도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그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랜 동안 멸시를 당한 사마리아인들에게 '진심으로 이 민족의 죄를 용서하기 바랍니다'라고 말하고 싶으셨던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난을 각오하시면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이 사마리아였습니다.

     

    [눅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9: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9: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  [9: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9: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9:56] 함께 다른 마을으로 가시니라
    주목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권위있는 성경 KJV버전은 55절을  스테파노스 1550년판 헬라어 원전을 따라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Luke9:55] But he turned, and rebuked them, and said, "You do not know what manner of spirit you are of.
    [눅9:55] 주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가 어떤 영을 지녔는지 알지 못하고 있도다. [9:56] 인자가 온 것을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함이 아니라 구원하려 함이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습니다. 
    너희들은 어떤 영에 지금 사로잡혀 있느냐? 어떤 문화적 정서에 생각없이 사로잡혀 있느냐? 분노의 영, 편견의 영-그 집단적 정서, 미움의 맹목적 집단 정서가 내가 가르친 것이었더냐? 
    사마리아를 욕하는 너희의 마음이 바로 사마리아이다! 모든 생명이 소중함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중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나중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다시 부탁 사마리아를 부탁하신 것입니다.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삶의 사마리아와 같은 갈등을 생각합니다.
    한국과 일본,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 전라도와 경상도- 내 삶의 사마리아를 해결하기 위해 긴 세월동안 스스로 세뇌시켜온 미움과 증오의 가치관으로부터 스스로를 놓아주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가 빌립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는 대단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행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행8: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더라 [행8:7]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행8:8]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저는 하나님께 구원받은 기쁨과 함께 유대인들과 하나되었다는 기쁨도 있었다고 믿습니다.
    나아가 빌립은 마술사 시몬도 전도했고 그 후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또 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돌아가는 길에도 사마리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8:25]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파하니라
    복음의 사명이 있습니다. 사랑을 전하고 화해와 화목을 전하고 은혜를 전하고 구원을 전해야하는데도 가기 싫은 곳이 있고 만나기 싫은 사람이 있고 하기 싫은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했고 빌립은 사랑으로! 오직 사랑으로 이 복음을 사마리아에 전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 후 빌립도 떠나고 베드로와 요한도 떠난 후 그들이 세워놓은 사마리아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있다가 사라져버렸을까요? 그토록 무시받는 지역인데 복음이 과연 뿌리를 내렸을까요? 
    그런데 사도행전은 증언합니다. 사마리아교회가! 사마리아 교회가! 놀랍게 부흥했습니다. 
    [행9:31]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교인들은 교회를 지켜냈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아차, 하면 무너지기 쉽고 무너지면 회복되기 어려운 것이 교회인데! 
    목회자로서 한국의 수많은 교회가 한때 부흥햇으나 쇠태하고 분열되고 사라지기도 하고 또는 끊임없이 시끄러운 교회들도 많이 보았고 또 보고 있습니다. 안타깝고 또 깨어있어야겠다 생각합니다. 어떨 때는 이 시대의 교회가 물 그릇을 들고 걷는 것처럼 늘 도전과 위험 속에 있다고 보이기도합니다. 오늘 심방 가며 오며 듣는 얘기, 남편이 교회를 나오지 않는데 교회에 무슨 갈등이 있어 실망하여 교회를 안나가고 오늘까지 그렇게 있다는 얘기, 평생 듣는 얘기였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교회가 늘 평화롭고 따뜻하고 화목하고 아름다워야하는데! 그렇게 꼭 지켜가야하는데! 사람들이 교회에 실망하지 않도록 정말 조심, 평화를 지켜가야하는데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교회에도 위기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분열될 수도 있고 파벌이 생길 수도 있고!
    위기와 갈등 속에서 사마리아 교인들의 수준을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을 끝까지 지켜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마리아 교회의 수준이었고 영적깊이였습니다.
    교회를 화목한 교회로, 사랑이 넘치는 교회로 지켜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애씀과 수고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아마 갈등이 있을 때마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을 지켜내자고 약속하며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교회는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부흥했습니다. 
    우리 우암교회도 그렇게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7월의 첫날을 맞이하며 다시 마음을 다집니다. 
    사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마음이 많이 낙담했습니다. 같은 마음이셨겠지만 백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폭발적 부흥의 계기를 삼고 싶었고 2천 6백명의 재적 인원을 3천명으로 돌파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코로나 위기에 사랑으로 교회를 잘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한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감사합니다. 은혜로 자리를 지키신 분들이 주인공입니다. 백년 우암 역사에 언제 합류했든지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며 모두 하나입니다. 우암교회를 사랑과 평화로 지켜가 세상의 소망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지키고 부흥시켜간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당당하게 역사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00년 동안을 지켜주신 주님과 함께 맥추감사절을 맞이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는 교회로 지켜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함께 기도하십니다! 

    결단 찬송 [208장] 내 주의 나라와

    • 이준원2020.07.01 18:27



      오늘 7월의 첫날을 맞이하며 다시 마음을 다집니다.
      사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마음이 많이 낙담했습니다.
      같은 마음이셨겠지만 백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폭발적 부흥의 계기를 삼고 싶었고
      2천 6백명의 재적 인원을 3천명으로 돌파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코로나 위기에 사랑으로 교회를 잘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한 사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감사합니다. 은혜로 자리를 지키신 분들이 주인공입니다.

      백년 우암 역사에 언제 합류했든지 우리는 모두 주인공이며 모두 하나입니다.
      우암교회를 사랑과 평화로 지켜가 세상의 소망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지키고 부흥시켜간 이야기를 남기고 싶습니다.
      당당하게 역사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100년 동안을 지켜주신 주님과 함께 맥추감사절을 맞이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평안하여 든든하게 서가는 교회로 지켜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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