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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유라굴로 속에 희망을 선포하다!
    첨부파일 8개

    2020년 3월 18일 수요예배 / 
    유라굴로 속에 희망을 선포하다 사도행전 27;22-25

    사순절 19일째 날입니다. 사순절이 거의 반이 지나갔습니다. 잘 지내고 계시는 거죠? 잘 견디고 계시는 거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과 감사를 전합니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유행인데, 2m가 사회적 거리인가요? ㅋ 그런데 주님과의 신앙적 영적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기 바랍니다.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간의 사랑의 거리도 전화나 방문이나 문자를 통해서 더욱 가까워지기 바랍니다.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보고 싶으십니까?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참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그동안 더 젊어지시고 아름다워지시고 멋있어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위기 속에서 빛난 사도바울의 열정의 지도력을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27장은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끌려가던 바울이 승객 276명을 구원해낸 놀라운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바울이 신앙 문제로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한 후 바울이 로마에서 재판받기를 신청했고 그리하여 미결수의 신분으로 군인들이 호송하는 가운데 유대 가이사랴 항구에서 출발하는 '아드라뭇데노'라는 이름의 배를 타게 됩니다. 참고로 성경은 바울이 가이사랴 감옥에서 2년 동안 구류당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24:27] 이태(2년)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참고 사도행전 23:33절)
    그리고 2년 후 드디어 로마로 떠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을 비롯한 미결수 등 죄수들을 호송하는 사람은 로마 아구스도부대의 백부장 율리오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사랑하는 제자들 중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동행해서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이 부분부터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아드라뭇데노 배를 탔고 백부장 율리오의 호의로 그 배가 잠깐 시돈항구에 정박하는 사이에 친구들을 만나 대접을 받는 것도 허락받을 만큼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항해를 한 후에 '아드라뭇데노' 선박은 지금 터어키 남부 항구인 루기아의 무라항구에 이르게 됩니다. 아마도 이 선박의 크기로는 로마까지 항해할 수는 없었던 것같습니다. 이 무라 항구에서 이제는 로마로 가는 큰 배로 갈아타야 했는데 그 배가 바로 '알렉산드리아호'였습니다. 승객이 276명이 탈 수 있었고 수많은 하물을 실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상당히 큰 대형배로 여겨집니다. 
    [행27:5]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행27: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행27: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행27: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일단 로마를 향해 출항을 했는데 태풍이 점점 심해져 문제가 되었습니다. 여러날 만에 간신히 그레데 섬의 항구 미항이라는 곳에 간신히 정박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이 미항에서 한 겨울을 나고 풍랑이 잠잠해지는 봄에 로마로 갈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였습니다. 
    성경은 이 시기가 배가 항해하기 위태한 때라고 말합니다. 
    [행27: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행27: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여기서 '금식하는 절기가 지난 때'라고 했는데 금식하는 절기는 유대 절기 중 속죄일을 말합니다. 히브리 달력으로 디스리 (Tishri)월 10일= 양력 9-10월경 이었습니다. 겨울로 접어들어가는 이 때는 태풍이 불어오는 계절이라서 배 항해에 어려움이 있는 계절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더 이상 항해라는 것이 무리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항해를 하는 쪽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행27: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행27:12]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 쪽은 서남을, 한 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그런데 이 부분에서 많은 설교자들이 오해하는 것들이 있어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즉 여기에서 백부장이나 선주나 선장이 바울의 말을 안듣고 자기들 욕심 때문에 억지로 항해하다가 큰 풍랑을 만났다는 견해입니다. 즉 바울의 말을 안듣더니 결국 하나님의 벌을 받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해석들입니다. 물론 결과론적으로 보면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도 로마까지 긴 거리와 긴 시간을 폭풍 속에서 모험을 하면서 항해하자는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그레데 섬의 미항이 좁은 동네라서 276명이나 되는 승객들이 배에 있거나 하선해서 몇 달 동안 겨울을 보내기에는 너무 좁고 불편한 것이 사실이었고 그러니 조금만 더 움직여 뵈닉스라는 좀 큰 항구로 가자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많은 승객들이 미항이 불편하다고 같은 그레데 섬의 좀 큰 항구 뵈닉스 항구로 가자고 말했기에 그곳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었습니다. 즉 백부장이나 선주나 선장도 긴 항해의 위험을 알았기에 경비가 더 들어가더라도 그레데 섬에 그대로 머물러 겨울을 지내려고 했고 나름 돈을 주고 표를 산 승객들의 의견을 존중해서 그 의견을 들으려고 고심했다는 뜻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미항에서 뵈닉스까지 65km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제주도로 비유한다면 모슬포항에 정박했다가 아무래도 제주항으로 움직여 겨울을 보내자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지 저 먼 바다로 나가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했던, 해변을 따라 조심스럽게 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65km의 여정에서 예기치 않은 무서운 폭풍을 만나고 정신없이 배가 아드리아 바다로 풍랑 속으로 떠내려간 것이었습니다! 이 항해를 시작할 때는 남풍이 부드럽게 불어 그것 봐 괜찮다니까 했었는데 곧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 부분을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백부장이나 선주나 선장이 욕심이 가득차서 사도 바울의 말을 듣지 않고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났으니 그들의 책임이요 죄라는 데 너무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선장도 65km정도야 이렇게 큰 배이니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법합니다. 승객들도 빨리 뵈닉스로 가자고 말했을 것입니다. 환불해달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지금 중요한 것은 바울이 누구의 책임이라고 그것을 집요하게 책망하고 있지 않고 사람을 살려내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성경본문의 핵심으로 받아야합니다. 


     

     

    이 배는 아드리아 바다로 표류하며 유라굴로의 광풍과 풍랑 속에서 침몰 직전의 큰 고난을 겪게 됩니다. 광풍이 얼마나 심한지 2주간 동안 사투를 벌였습니다. 모두가 죽게 될 줄 알았습니다. 자포자기로 모든 짐도 버렸음을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도 아마도 포세이돈만큼 대단히 큰 배라서 해도 별도 보이지 않았던 풍랑 속의 두 주간을 아슬아슬하게 버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일어났습니다!

    [행27: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행27: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 손으로 내버리니라 [행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위기 때에 판단력의 고민이 있습니다. 
    사실 바울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고난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주나 선장이나 백부장이나 승객들의 생각은 뵈닉스가 겨울을 보내기에 더 편할 것이라고 보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이 일어나 딱 한마디를 합니다. 
     [행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리고 바울은 더 이상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전력투구하여 이 사람들을 살려내는데 모든 것을 쏟았습니다! 
    사도바울의 지도력을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하여 용기를 갖게하고 소망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아마 선원이나 승객들은 자기들의 판단이 틀릴 줄 그들도 몰랐을 것입니다. 죽을 줄 알았다면 누가 주장했겠습니까? 65km쯤이야 잘하면 갈 수 있을 것이고 큰 바다로 가는 것도 아니고 해변으로 살살 가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미항은 뵈닉스보다 협소하고 작은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다만 그 65km를 잘가느냐 못느냐였습니다. 문제는 예기치 못한 풍랑이었습니다!

    위기를 만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그들의 본성이 다 드러납니다! 
    아마 14일 동안 풍랑을 만난 배 속에서 죽음 앞에 선 사람들의 말과 반응을 드라마로 찍었다면 별 사람들, 별 일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천만 관객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은 여기에서 누구에게 더 이상 책임을 묻고 비판하고 따지지 않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지도력입니다! 

    위기를 만날 때 그 반응에 신앙 인격의 급이 있음을 절실히 느낄 때가 많습니다. 
    삼류는 나 이제 죽는다고 울고 불고 자포자기하고 짐을 다 던져버리고 절망과 탄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은 알 길 없고 오직 내 살 길만 찾아 울부짖는 사람들입니다.
    이류는 이게 누구 책임이라고, 그럴 줄 알았다고 원망하고 끊임없이 누구에겐가 책임을 따지고 묻고 누구가를 향해 소리지르고 삿대질하고 싸워대다가 죽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일류는, 
    일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살려내는 사람입니다!

    이 시대를 생각합니다! 너도 나도 큰일났다, 큰일났다 말하며 카톡방에는 정신없는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전달됩니다. 공포가 전달되고 아우성이 전달되고 거품이 전달됩니다! 카더라, 다더라 소식이 분주합니다. 이 사람은 이 뉴스를, 저 사람은 저 뉴스를 공포에 질려 전달하는 혼란 속에서!
    일 다급하여도 당황치 않고 담대히, 의연히 문제를 해결해 모두를 살려내는 사람! 
    삼류가 아니라 일류가 되기 원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내가 남편에게 당신 탓이라고만 하면 모두가 무너집니다. 당신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나 죽겠다고 하면 무너집니다. 살려내야 합니다. 상대방을 살려내야합니다! 그래서 나도 살아야합니다!

    이 시대에 생각나는 찬송이 있습니다! 
    [420장] 너 성결키 위해 
    [3절] ♫ 너 성결키 위해 주 따라가고 일 다급하여도 당황치 말고 참 즐거울 때나 또 슬플 때나 너 주님만 믿고 늘 따라가라  

    사도바울은 일 다급하여도 당황치 않고 담대히 믿음을 따라 권합니다! 
    [행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행27: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행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행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참으로 당당한 사도바울, 안심하라고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합니다!
    나아가 사도 바울은 먹으라고 권합니다! 우리 어떻게해서든 살아내자고 외칩니다. 함께 살아보자고 격려합니다. 이 바울의 지도력, 정신력, 체력, 영력! 사랑의 힘을 본받고 싶습니다! 
    [행27: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행27: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행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행27: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행27: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신앙인의 사회적 지도력을 생각합니다. 
    지금 바울은 죄수 신분입니다. 선주나 선장이나 백부장이나 선원들, 승객들도 자기 말을 안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욕하거나 그럴 줄 알았다 꾸짖거나 모른 척 하지 않고, 될대로 되라 하지 않고 나만 살겠다 하지 않고! 같이 살아야한다고, 우리 반드시 살아날 것이라고 희망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다니며 격려했습니다!
    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가 배우고 싶은 당당한 지도력입니다! 
    유라굴로의 풍랑 속에서 항해 전문인 선원들마저 배를 버리려고 했고 선박으로 사업을 하는 사업가들, 군사 권력을 가진 군인들 모두가 죽는다고 아우성 칠 때, 심지어는 거룻배를 살짝 내려 자기들만 살아보겠다고 침몰하는 배에서 도망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때, 이 와중에 죄수들을 죽여야한다고 외치는 군사들이 있을 때!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외쳤던 바울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배우고 싶은 신앙인의 리더쉽입니다! 그들도 바울의 기도에 은혜를 받고 마음에 안심이 되어 다시 음식을 먹고 힘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행27: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행27: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믿음으로! 사랑으로!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모든 사람을 안심시키고 희망을 주고 그 고생을 함께 겪고 마침내는 276명을 살려낸 바울! 사도 바울!
    그는 두렵지 않았을까요? 
    왜요? 몸도 약한 그,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이에게는 죽어도 죽지 않는 영생의 소망이 용기가 되고 담대함의 근원이 됩니다. 그것이 배짱의 근원입니다! 죽는 것은 순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영생의 나라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잘 살아야했습니다. 살아내야 했고 뜻깊게 살아야 했습니다. 죽지 말고 살아서 열심히 일해야 했습니다. 더 사랑하고 더 헌신하고 더 충성하기 위해!

    이 사회가 코로나라는 유라굴로 태풍으로 휘청거립니다.
    그런데! 이 때 사도바울의 지도력과 사랑과 위로를 만납니다.
    지난 주에도 조용히 소리없이 마스크를 가져온 분들이 계셨습니다.
    가정 예배를 드리며 자녀가 간절히 기도하는 사진을 보내어 저도 흐뭇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재난 구제 헌금에 최선을 다해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정오 기도회를 진지하게 드리시고 이럴 때 일수록 목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는 분들이 많다하시는 간증과 소식에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따뜻한 뉴스들도 많습니다.
    지금 코로나가 만연한 대구에서 숨죽이고 눈치만 보는 계층들 중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잖아도 사람들의 혐오 시선이 두려운 이주민 노동자들은 혹여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병을 떠나서 엄청난 비난과 손가락질을 당하고 사회적으로 짓밟힐까 두려워한다는 것인데 그들에게 마스크, 소독제를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그분들은 바로 교회 교인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갑시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이 코로나! 우리가 반드시 이길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두려움을 변화시켜 기도가 되게 하시고 전날의 한숨을 변화시켜 기도가 되게 하시는 사랑이 함께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함께 멍에를 지고 모든 사람을 살려내기 원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도구가 되어 이 사회에 웃음과 기쁨과 감동을 회복시켜주는 우리 믿음의 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 한번 바울처럼 힘차게 외쳐보기 원합니다! 사도행전 27:25절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아멘! 아멘! 


    < 함께 찬송> 370. 주안에 있는 나에게
     1.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 만 따라가리   
     2.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3.   내 주는 자비 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4.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 하시네   

    < 통성으로 중보기도 드립니다>
     사순절, 다시 무릎을 꿇는 마음으로 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합니다. 
    1. 코로나가 더 확산되지 않게 하시고 모든 확진자들을 치료해주소서! 
    2. 이 민족과 청주를 지켜주시고 앞장 선 의료진들을 보호하소서!
    3. 사순절 기도, 정오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깊어지게 하소서!
    4. 모든 우암가족들의 믿음과 건강과 생업과 사업을 지켜주소서!
    5. 사순절 사랑의 동전모으기, 재해구제헌금, 사랑의 마스크 운동으로 영광돌리게 하소서!


    • 이준원2020.03.18 18:58


      어려운 시대!
      사도바울의 열정의 지도력을 우리도 본받기 원합니다!

      가정에서 더욱 서로 위로할 때입니다.
      일터에서 더욱 서로 격려할 때입니다.
      교우님들께서는 더욱 서로 많이 기도해주실 때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랑을 통해서
      코로나라는 이 시대의 유라굴로를 잠재워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살아냅시다!

      열심히! 아주 열심히!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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