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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 사로잡힌 사람 친첸도르프
    첨부파일 12개
    친첸도르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 1700-1760)

       

     

    백작이라는 특별한 호칭으로 많이 알려진 친첸도르프는 경건주의(敬虔主義, 독일어: Pietismus 피에티스무스, 영어: Pietism 파이어티즘)을 지켜낸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형식화, 제도화 되어가는 교회나 세속화된 신학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영적 만남의 깊은 경험을 신앙의 가장 우선순위로 삼았던 경건주의의 영적 지도자 친첸도르프는 1700년, 독일 작센 드레스덴에서 오스트리아 귀족가문출신의 작센 주 행정관의 아들로 출생하였습니다. 
    아버지가 6주 만에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재혼하여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는데 할머니의 신앙이 워낙 돈독하여 신앙적으로 큰 영향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귀족 집안이었기에 어려움을 겪지 않으며 성장한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의식이 어렸을 때부터 투철했습니다. 이미 어린 시절 결심하고 고백한 것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구주여, 저는 당신께 속하고 당신은 저에게 속하기 원합니다!”
    어린 시절 일기장입니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열망밖에 없다. 예수님, 오직 그분 뿐이다"
    친구들과 나눈 반지에 이렇게 헬라어로 기록해 서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리. 오직 주님을 위해!’
    친첸도르프는 비텐베르크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하였습니다. 1721년, 드레스덴으로 돌아와 작센 법원 고위직으로 근무하던 중 1722년, 로이스의 에르드무테 도로테아와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는 소명의식에 대한 갈망이 늘 남아있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조모로부터 베르텔스도르프의 영지를 유산으로 받은 친첸도르프는 깊은 영적 고민 끝에 관직을 청산하고 영지의 소작인 문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난민집단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할레대학에서 신학을 하게 되고 그러던 중 종교 박해를 피해서 온 모라비안(Moravian=보헤미아 형제단(Unitas Fratrum)) 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라비안 교도들은 숫자는 작았지만 그 진실한 영성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던 신앙공동체였습니다. 15세기, 체코의 보헤미아 지역과 모라비아 지방에서 체코의 종교 개혁자 후스에 감동 감화를 받아 공동체 모임을 시작한 이들은 당국의 박해가 시작되자 독일 작센으로 옮겨 헤른후트에서  정착촌을 이루며 성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회와 구별되고 또 변질되어가는 교회와 구별되어 오직 순수한 믿음의 길만을 걷기로 작정했고 또 오직 세계선교에만 열정을 쏟기 원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체코의 보헤미아- 모라비아 지역입니다.


     

     

    이 모라비안들이 독일로 망명을 와서 거주한 곳이 작센 지방이었고 이들은 이 곳을 헤른후트(Herrnhut: 주님의 보호)라고 불렀습니다. 
    이 모라비안들의 믿음은 미국으로 가는 배 속에서 이 모라비안 교도들의 뜨거운 기도에 복음 전도자 존 웨슬리가 감동했던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웨슬리처럼 모라비안들도 미국으로 선교를 가는 중이었는데 풍랑을 만나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웨슬리는 이 모라비안들의 믿음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훗날 모라비안 교인들의 영적 지도자인 친첸도르프를 만나게 되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다만 존 웨슬리와 친첸도르프가 다른 것이 있다면 웨슬리는 이 영성을 교회라는 조직 속에서 활성화하고 싶었던 것이고 그래서 기존 교회의 중요성과 부흥을 강조했던 것이고 친첸도르프는 이 영성이 기존 교회라는 틀 속에서는 깊어지기 어렵다고 보아 수도원적 경건으로 소수정예로 나아갔던 것이었습니다! 그 차이점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모라비안들이 자기들만의 폐쇄적 영성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계선교에 모든 것을 걸어 자비량으로 수많은 열악한 나라들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작센 헤른후트 친첸도르프의 교회에는 24시간 동안 몇백년 동안 기도를 쉬지 않았다는 기도탑이 있어 많은 분들을 감동하게 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전 세계를 위하여 기도드리는 몇백년의 기도탑

     

    친첸도르프는 1734년 정통파 루터교회 목사로 취임하게 되었고 모라비아 교회의 보헤미안 형제단 감독에 임명이 되었습니다.  
    친첸도르프는 베테라비아의 헤른하크, 마리엔보른지역에 모라비아 교회의 정착촌을 결성하고 화란과 발트해 연안국에도 모라비아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후에 잉글랜드에 모라비아 교회를 개척하였으며 이곳에서 감리교 목사인 존 웨슬리를 만났습니다. 1741~1743년, 아메리카의 뉴욕과 펜실베니아에 모라비아 교회를 세우고, 특히 펜실베니아에는 베슬리엄 정착촌을 결성하고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선교의 열정으로 가득한 친첸도르프는 이렇게 늘 강조했습니다! 
    “선교는 결국 간단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진 모든 이는 이미 선교사이며 그리스도 없는 모든 마음이 바로 선교지(宣敎地)입니다” 
    “ Missions, after all,is simply this; Every heart with Christ is a Missionary, every heart without Christ is a mission field!” 

    친첸도르프의 일생에는 많은 영적 경험이 있었는데 그중 도메니코 페티의 그림을 보고 감격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아직 젊은 날 친첸도르프가 독일을 여행하던 중 뒤셀도르프에서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2 1589-1623)가 그린  Ecce Homo('에케 호모'- 이 사람을 보라!)라는 그림을 보게 됩니다.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i, 1589-1623) Ecce Homo 에케 호모! 
    이 사람을 보라! 

     

    특히 그림의 밑에 쓰인 구절이 친첸도르프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Ego pro te haec passus sum (에고 프로 테 해크 파수스 숨)
    Tu vero quid fecisti pro me (투 베로 퀴드 풰키스티 프로 메)


     

    "I have suffered these things But what have you done for me"
    "This have I suffered for you; now what will you do for me?" 
    "나는 너를 위해 목숨을 버렸건만,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느냐?" 
    이 그림과 관계해서 또 다른 감동적 일화가 있습니다.
    영국 시인 프랜시스 리들리 해버걸( Francis Ridley Havergal, 1836-1879)인데 현재 우리 찬송에 꽤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고 남겨 놓으신 분입니다.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292장 주없이 살수 없네, 
    311장 내 너를 위하여,  
    329장 주 날 불러 이르소서, 
    331장 영광을 받으실 만유의 주여, 
    459장 누가 주를 따라 섬기려는가, 
    487장 어두운 후에 빛이 오며 
    그런데 리들리 해버걸도 똑같이 이 그림을 보고 은혜를 받아 내 너를 위하여 311장을 작사했던 것입니다. 
    친첸도르프는 백작이라는 귀족 출신이었지만 그리 유복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생애를 살았습니다. 아들 크리스티안 레나투스가 25세에 폐병으로 사망하였으며, 1756년에는 아내인 에르드무테도 사망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친첸도르프는 60세의 나이에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그의 고백입니다. 
    “나는 구원자에게 갑니다. 만약 그분께서 내가 이곳에 더 오래 남길 원하시지 않는다면 이곳에 나를 붙잡는 어떤 것도 없으니 그분께 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의 집- 기념관 입구 양편에는 그가 평생 사랑했던 이런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스가랴 9: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1760년 그는 6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으며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습니다. 
    “여기에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잠들어 있노라. …


    “여기 쇠하지 아니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잠들어 있노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나태하지 않은 봉사로 인하여 평범한 형제들을 18세기의 새로운 교회가 되게 하였다. …그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항상 남아 있게 하도록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결단 찬송> 
    311장 내 너를 위하여 

    • 이준원2019.11.21 19:02

      “사랑하는 구주여, 저는 당신께 속하고 당신은 저에게 속하기 원합니다!”

      "나에게는 단 한 가지 열망밖에 없다. 예수님, 오직 그분 뿐이다"

      ‘누구도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리. 오직 주님을 위해!’

      이 순수한 신앙의 열망을 굳게 지켜낸 친첸도르프!

      그의 거룩한 생애를 본받기 원하오니 주님! 도우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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