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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초막절! 기억, 감사, 함께 나누는 사랑!
    첨부파일 2개
    10월 18일 (금) 레위기 23:33-44 초막절, 추수감사절

     

    초막절에 대한 규례입니다.
    [레23: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23: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레23:35]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레23:36]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레23: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회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레23: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레23: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레23:40]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레23:41]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레23:42]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레23:43]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23:44] 모세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

    성경에는 여러 절기가 나타나지만 그중의 3대 절기는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질절,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수장절)이었습니다.  
    [출23:14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출23:17]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오늘 본문은 초막절에 관한 규례입니다. 이미 초막절에 관한 규례는 출애굽기 23장, 레위기 16장, 오늘 본문, 그리고 신명기 16장 등에 여러 번 되풀이해서 나옵니다. 반복해서 가르쳐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초막절(草幕節) 히브리어-숙콧 סֻכּ֑וֹת tabernacle은 일주일 동안 지키는 추수감사절기인데 지금도 현지 이스라엘에서 전 국민이 전국적으로 드리는 성대한 전국적 절기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주 여호와께 보이라고 했는데 인생과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와 내 모든 생의 모습을 보이는 것,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이 초막절과 모든 절기의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치유받고 용서받고 격려받고 용기를 얻고 새 꿈을 다시 꿉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 존재 의미를 재인식하고 재충전하고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이 절기를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광야 40년을 초막(장막)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모든 것이 어려웠지만 그러나 결국 가나안으로 인도하셔서 추수하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절기였습니다. 수장절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모든 열매들을 충분히 거두어 추수하고 저장할 수 있도록 해주신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기억의 신비! 기억은 힘이 있다. 기억할 때 따뜻해지고 새 힘을 얻게 된다!
    신앙에 있어서 기억은 가장 큰 힘이요 신비입니다! 기억은 힘이 있습니다! 기억할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것이 에너지가 되어 오늘을 힘차게 살게 합니다. 은혜받은 기억은 오늘 다시 나를 새롭게 하고 축복하는 힘이 됩니다! 과거의 기억을 통하여 그 은혜를 오늘 현재화 시켜나가며 미래를 새롭게 설계하고 실천해 나갑니다! 무엇보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나를 살려나갑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원합니다! 감사를 꼭 붙잡아야 삽니다. 

    그것 외에 따로 드려야한다! 구별된 제물!
    초막절은 소득을 바치는 날입니다. 인생에서 얻은 소득의 부분을 정성으로 바치는 날입니다. 
    신명기는 빈 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신16: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레위기 본문 38절은 이미 드린 것으로 다 되었다고 하지 말고 새 마음으로 새롭게 준비하여 드리라고 가르칩니다. 예물을 드리되 다시 구별해서 작정하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레23: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무엇보다 온 마음과 정성을 사랑하는 주님께 드릴 수 있기 원합니다. 감사로 드릴 때에 더욱 많은 감사조건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초막절은 종말의 날 
    초막절은 구약에서 종말의 날을 상징했습니다. 한 해의 마지막 추수였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 농부는 모든 것을 거두어 추수하게 되고 곡식은 곡간에 넣고 불필요한 죽정이는 태워 버립니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이 한결같이 초막절 날짜를 예수님 재림의 날로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영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막절을 생각함은 종말을 생각하는 것의 영적 교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종말을 잘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오늘 종말을 잘 준비하여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기름을 잘 준비했던 지혜롭고 슬기로운 처녀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초막절이 축제가 되려면 마음 평안과 관계평안이 있어야한다!
    초막절은 축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축제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축제로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정결해야하고 관계가 평안해야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해야하고 인간들과의 관계가 평안해야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곳을 놀러가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에 평안이 있을 때 서로 함께 나누는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들이 다 같을 수가 없기에 존중과 배려와 경청의 깊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사실 평생 부부도 선거 때가 되면 누구를 찍을까 의견이 같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만족하지는 못해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기 위한 깊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작은 다툼이 큰 불씨가 되는 것은 그 의견에 내 자존심을 걸고 감정을 걸어 이기느냐 지느냐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들어가면 논리가 사라집니다. 유명한 기독교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든 인간에게는 나름대로의 사연과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 때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마음만 열면 상대방의 진실한 의도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기느냐 지느냐가 결코 아닙니다. 감정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상대방을 '믿고'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 진심을 믿을 때 모든 감정은 풀리고 납득이 되어 진실하고 발전적인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 때 삶이 축제가 될 것입니다. 이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주일간의 절기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37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절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초막절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절기요, 또 예수님께서 주실 생수의 영적 은혜를 사모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명절 마지막 날 곧 큰 날, 이 초막절 명절의 마지막 날 크게 외치셨습니다!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날마다 예수님을 만나는 초막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명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영혼에서 생수가 터져나오기를 원합니다.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내 마음을 다 아시고 매만져 주시고, 이해해주시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했던 것은 인정해주시고, 시행착오는 괜찮다해주시고, 걱정은 함께 붙잡아주시는 예수님의 그 은혜가 우리 감사의 이유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내게로 오라고 하십니다! 불평 많은 인생은 축제로 만들어주시고 노래하고 춤추게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초막절은 모든 사람이 함께! 나누어야 하는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 축제입니다.
    [신16:14]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0월 27일에는 전도축제가 있습니다.
    전도 초청하여 구원의 은혜를 함께 나누어 평생을 축제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 원합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10.18 10:51

      초막절이 축제가 되려면 마음 평안과 관계평안이 있어야합니다!


      초막절은 축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축제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축제로 살기 위해서는 마음이 정결해야하고 관계가 평안해야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해야하고 인간들과의 관계가 평안해야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아무리 좋은 곳을 놀러가도 보이지 않고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릅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에 평안이 있을 때 서로 함께 나누는 축제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들이 다 같을 수가 없기에
      존중과 배려와 경청의 깊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사실 평생 부부도 선거 때가 되면 누구를 찍을까 의견이 같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만족하지는 못해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기 위한 깊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작은 다툼이 큰 불씨가 되는 것은 그 의견에 내 자존심을 걸고 감정을 걸어
      이기느냐 지느냐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들어가면 논리가 사라집니다.
      유명한 기독교 문학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모든 인간에게는 나름대로의 사연과 이유가 있고 그것을 알 때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마음만 열면 상대방의 진실한 의도를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이기느냐 지느냐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고착되면 발전이 아득해집니다.
      감정이나 선입관을 버리고 상대방을 '믿고'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그 진심을 믿을 때
      모든 감정은 풀리고 납득이 되어 진실하고 발전적인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 때 삶이 축제가 될 것입니다.

      이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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