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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위대한 전도자 디 엘 무디(Dwight Lyman Mo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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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전도자 디 엘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 62세)

     

    드와이트 레이만 무디(Dwight Lyman Moody)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노드필드(Northfield)에서 가난한 석공인 아버지 에드윈(Edwin Moody)와 어머니 벧시(Betsy Holton)사이의 아홉 자녀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이 가문은 오래 전 영국에서 청교도 신앙을 가지고 미국으로 온 가문이었으나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무디가 네 살 때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 슬하에서 성장하면서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돈을 벌어야하는 청소년기를 보내게 됩니다. 학력의 결핍이 평생 그의 괴로움이 되었으나 믿음으로 극복해냈습니다. 
    17살 때는 외삼촌이 경영하는 보스톤의 구두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으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교회를 다녔지만 열정이 없었을 때 그가 만난 사람이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이었습니다.

     무디를 만난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의 깊은 영적 대화와 열정
    1855년 4월 21일, 무디가 보스턴에 있는 교회에 나간 지 1년이 지난 때 그의 교사-목장 리더였던 에드워드 킴볼(Edward Kimball)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무디의 영혼을 걱정하던 그는 직접 구둣방으로 찾아와 깊은 영혼의 대화를 나누게됩니다.
    그날의 대화가 무디의 마음의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학력에 대한 열등감, 가난에 대한 보상심리, 신분상승 욕구 등의 깊은 마음 속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심이었으나 사랑이 없이 예수님이 죽으셨겠느냐는 말씀에 깊은 감격과 도전을 받게 됩니다. 
    킴볼의 열정과 사랑이 무디를 믿음의 인물을 만들어내었고 무디는 그날의 대화와 영적체험을 평생 잊지 못하고 그날을 생일로 정했습니다. 그는 구원의 감격으로 너무 기쁜 나머지 어머니께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기뻐해 주세요. 1837년 2월 5일은 제가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생일이지요? 18년이 지난 오늘 4월 21일은 성령으로 제 영혼이 거듭난 생일입니다. 세상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구두방 점원이 신앙의 큰 인물이 될 줄 킴볼도 몰랐을 것입니다. 깊은 영혼사랑의 대화가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후 무디는 시카고로 옮겨 역시 구둣방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는데 이제는 경험이 쌓여 꽤많은 보수를 받게 되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복음을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 어린이 학교 선생으로 자원했는데 학생이 없어 반을 맡을 수 없자 전도를 시작하며 부랑아들부터 모아 반을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몇 년만에 13명의 부랑아들이 나중 1000여명으로 발전할만큼  엄청난 양적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무디가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같은 동료 주일하교 선생 한분이 당시 불치병이었던 폐병으로 고향에 내려가기 전 그가 가르치는 학생 가정을 찾아가 전도하여 그 가정 전체를 구원하는 것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섬겨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그때부터 장사보다는 전도에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따로 신학을 공부하지는 않았으나 교회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개인적으로 열심히 신학을 연구하고 성경을 누구보다 깊이 연구한 것이 평생의 신학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인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마음에 일생의 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전도 및 일생 몇 백 만명을 전도하게 된 그 결심의 첫 출발이었습니다. 

    “하루에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들지 않겠다!” 

    무디의 개인전도의 열정은 수많은 간증이 뒤따랐습니다. 나중 미국 대통령이 된 윌슨은 우연히 들린 이발소에서 이발사를 열심으로 전도하던 무디의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무디의 열정적인 전도에 극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떠난 사람이 나중 다시 무디에게 찾아와 예수님을 믿겠다고 한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개인전도를 넘어 대중전도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1860년 무디는 엠마 샬로테 레벨(Emma Charlotte Revell)과 결혼하여 화목한 가정생활을 하면서 주일학교에 더욱 열심 할 수 있었고 부인은 이러한 남편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감싸주었습니다.
    남북전쟁에 종군하여 군인들의 위로자가 되고 복음을 전하다! 
    그 후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나자, 링컨의 노예 폐지론을 지지하며 전쟁터로 달려간 무디는 군인 교회에서 1,500여 차례 집회를 가졌고, 매번 집회를 연병장에서 가져야 될 정도로 그의 집회에는 많은 군인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후 무디는 1863년 시카고 빈민가에 교회를 설립했는데 그는 학력이 부족했으나 오직 열정으로 교회를 세우고 오직 복음 만을 전했는데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학력의 열등감을 복음의 열정으로 극복하고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 사로 잡힌 생애가 주는 진실성이 주는 감동이었습니다!

     

     

    자기 영성 개발을 위해 그는 평생 최선을 다하여 배웠다!
    1867년 무디는 영국을 최초로 방문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은 무디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기 위해 기도의 사람, 고아의 아버지 죠지 뮬러(G.Muller,1805-1898), 찰스 스펄전(C. H. Spurgeon 1834~1892), 헨리 발리(Henry Varley,1835-1912) 목사 등에게 감화를 받았다. 특히 당시 위대한 설교가인 찰스 스펄전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까지도 그의 설교를 연구할만큼 스펄전은 위대한 설교가였기에 무디도 크게 도전과 영향을 받고 자신도 끊임없이 개발하며 그 열정을 소유하기를 원했습니다. 
    기도의 사람 죠지 뮬러는 이렇게 무디에게 말했습니다.
    "무디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디를 통해서 무엇을 하셨는가가 중요하다" 
    무디의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헨리 발리 목사(Henry Varley,1835-1912)는 이렇게 말합니다.
    " 재주가 뛰어나고, 남다른 대단한 능력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지만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하지 못하기에 큰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부족해도 하나님께 완전히, 전적으로 헌신한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1868년, 무디 목사의 교회에 부흥강사로 초청된 헨리 무어하우스 목사(Henry Moorhouse, 1840-1880는 교회에서 6일 동안 오직 요한복음 3장 16절 한 구절로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신 그 은혜만을 제대로 전할수만 있다면 나는 세상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라는 말씀에 무디는 깊은 도전을 받게 됩니다.

    ☛ 시카고의 대 화재로 인한 상실과 두 번째 성령체험
    그에게도 큰 시험이 다가왔는데 바로 1871년 시카고에 화재가 나서 그가 목회하던 교회당이 불탔던 사건이었습니다. 마음에 크게 고통을 느끼며 뜨겁게 기도하던 그는 이때 위로해주시고 다시 용기를 주시는 성령님의 감화를 얻어 온전히 극복하게 되었고 그는 그 경험을 두 번째 성령체험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를 거듭나게 하신 후, 16년만에 성령께서 다시 임재하셔서 나를 충만하게 하셨다. 그 후로는 성령께서는 절대로 나를 떠나지 않으셨다." 

    무디가 특별히 대중집회에 강점을 가진 것은 생키(Ira David Sankey:1840-1908)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지금의 부흥회 찬양집회의 원조였습니다. 그는 작곡도 잘했고 뛰어난 찬양사역자였습니다. 
    무디와 생키! 말씀과 찬양의 놀라운 역사!

     


    아이라 생키 Sankey, Ira,David 가 작곡한 찬송가는 일생 천여편인데 한국 찬송가에 8곡이 있습니다.
    ♫ 214 나 주의 도움 받고자 ♫ 290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 297 양 아흔 아홉마리는 ♫ 353 십자가 군병되어서 ♫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 419 주 날개 밑 내가 평안히 쉬네 ♫ 487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 ♫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한국 찬송가를 찾아보면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1893년-에 무디라는 이름이 작곡자로 나타나는데 이 분은 무디의 며느리 메이 무디(May Whittle Moody, 1870~1963)로서 작사한 다니엘 W. 휘틀(Daniel Webster Whittle, 1840~1901)목사님의 딸이었습니다. 

    무디가 세 번째 영국집회를 가진 1873년부터 1875년까지의 3년간 285차의 집회에 연인원은 259만 명이었다. 이 부흥역사는 런던 뿐이 아니라 세계적 놀라움이 되었습니다.
    조선 선교를 향한 격려 
    평양신학교를 세운 마포삼열 박사- 무디에게 영향받고 조선선교를 격려받다!
    초창기 한국 선교에 큰 공헌을 한 마포 삼열박사는 자신이 한국에 선교하러 오게 된 계기가 바로 무디의 집회에 참석했던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1886년 여름에 25일 동안 251명의 학생들은 헤르몬 산 (Mount Hermon)에서 모임을 갖고 유명한 부흥사인 무디와 함께 이야기하며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모임에서 그들 중에 21명이 해외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했다."
    그리고 무디는 조선으로 파송되는 선교사들을 진심으로 격려했고 마포 삼열목사님은 그 힘으로 선교했다고 고백할만큼 무디에게는 전 세계를 향한 복음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는 1899년 12월 22일 세상에서의 생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기 전 무디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날 무디가 죽었다는 것을 신문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말을 하나도 믿지 마십시오. 그 순간 나는 지금보다 더욱 더 생생한 모습으로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우리의 마음 속에, 그리고 하나님의 품에서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고 마음에 도전을 받습니다!
    재능보다 중요한 전적 헌신! 
    하루에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지 못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
    그 거룩한 열정,
    우리도 품고 전도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10.17 08:41



      “하루에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들지 않겠다!”
      “하루에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들지 않겠다!”
      “하루에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잠들지 않겠다!”

      무디의 열정에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해야할텐데!
      조금이라도 흉내라도 내어보아야겠습니다!

      샬롬!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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