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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 데이빗 리빙스턴(Livingstone David, 1813~1873,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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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 데이빗 리빙스턴(Livingstone David, 1813~1873, 60세, 영국) 


    아프리카는 모든 기독교 선교사들에게 마지막 땅끝입니다. 누구든지 말합니다. 마지막 갈 곳이 아프리카 선교라고! 우리도 내년에 아프리카 선교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사진을 찍으면 대륙 중에서 가장 어두운 대륙이 아프리카입니다. 그만큼 최후의 미개지가 아프리카인데 물론 지금은 놀랍게 발전되어 아프리카의 대도시는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직도 어두운 대륙입니다. 
    아래 어두운 대륙이 아프리카입니다!

     

     

     

    그 아프리카를 평생 사랑하고 선교한 분이 데이빗 리빙스턴이었습니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평생 아프리카를 종단하고 횡단하면서 지도를 만들어간 개척자로서 상징적인 분이었습니다.
    그에게 거룩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내가 먼저 이 일을 해보겠고 그리고 그 후에 누군가 또 아프리카를 오게 되는 이들에게 길을 만들겠다는 거룩한 결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도구의식이었습니다! 그이 생애를 동영상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cObWVEiMec


    < 생애 요약- 인용> 
    당시 돈을 벌기 위해 아프리카를 간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노예 무역이나, 황금을 찾기 위하여 아프리카에 진출한 유럽인들은 주로 북아프리카와 북서아프리카의 강을 따라 탐험했습니다. 스코틀랜드 가정에서 자라난 리빙스턴은 21세 때 중국으로 보내질 선교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1839년에 아편 전쟁으로 중국행이 물거품 되었습니다. 
    마침 아프리카남부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모펫(Robert Moffat, 1795-1883) 목사를 만났는데, 그는 중국 대신 아프리카 선교를 권하였습니다. 모펫 목사는 남아프리카 선교회(South African Missions, SAM)의 창시자이자 장차 리빙스턴의 장인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모펫 목사의 권유로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도착한(1841) 리빙스턴은 40일 동안 1,100㎞를 걸어서 모펫 목사가 활동하던 쿠루만(Kuruman)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7달을 머물면서 토박이말과 풍습을 익혔습니다. 호기심으로 백인들이 가 본적이 없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사자의 공격을 받은 일도 있었습니다. 
    1845년 리빙스턴은 자기를 아프리카로 끌어준 모펫 목사의 딸 메리(Mary)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나서 토박이말도 잘 하고 지리도 밝기 때문에 리빙스턴에게는 든든한 동조자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더 북쪽인 콜로벵(Kolobeng)이란 작은 마을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틈 날 때마다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그리고 토인들에게 농사짓는 법도 알려 주었습니다. 
    몇 년 후 리빙스턴은 주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더 내륙인 칼라하리(Kalahari) 사막을 건너가 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1849년 6월 가마솥 같은 더위, 휘몰아치는 바람, 부시맨의 공격 등을 이겨 내고 60일 걸려서 칼라하리 사막을 통과하고 은가미(Ngami) 호수에 도달하였습니다. 거기에는 푸른 들판에 무리지은 영양, 맑은 호수 물, 많은 과일 등 남쪽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집이 있는 콜로벵으로 돌아 온 리빙스턴은 이번에는 부인과 세 아이들을 데리고 은가미 호수 북쪽인 마콜롤로(Makololo)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동행한 가족들의 잦은 병 치례로 그들을 영국으로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콜로벵의 집을 비운 사이 토인들을 잡아 팔던 네덜란드계 보어(Boer)인들이 마을을 습격하였습니다. 리빙스턴으로서는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가족을 보낸 리빙스턴은 다른 길을 이용하여 마콜롤로에 도착하였습니다. 
    1853년 리빙스턴은 잠베지(Zambezi, 3,500㎞) 강을 탐험하려고 토인 몇 사람만 데리고 떠났는데, 7개월이 지나서 대서양의 루안다(Luanda)에 도착하였습니다. 잠베지 강이 대서양까지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동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어느 날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을 듣고 토인들에게 물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악마가 사는 곳”이라고 하며 그곳에 못 가게 말렸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카누를 타고 그곳에 다다랐는데 어마어마한 폭포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폭포를 영국 여왕 이름을 따서 빅토리아 폭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계속 나아가서 1856년 잠베지 강이 인도양으로 흘러드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16년 만에 남아프리카 동서를 가로지른 쾌거를 이룬 것입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가서 국민적인 영웅 대접을 받고 『남아프리카 전도 여행(Missionary Travels and Researches in South Africa)』이라는 책을 발간하였습니다.
    1858년 아프리카인 10명, 유럽인 6명(동생 찰스 포함)을 데리고 세 번째 아프리카 탐험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탐험 대원 서로 간에 왠지 손발이 맞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메리)가 말라리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상심해 있을 시기에 영국 정부는 잠베지 강 일대를 더 이상 탐험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리빙스턴을 본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1864년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잠베지 강과 그 지류(Zambesi and its Tributaries)』라는 탐험기를 썼습니다.
    한편 영국 왕립지리학회는 리빙스턴이 백나일 강의 수원을 밝혀 주기를 열망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왕립 지리학회는 아프리카를 가장 잘 아는 리빙스턴이 백나일 강의 수원을 명확히 밝혀 주기를 당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탐험에 나섰는데 1866년에 잔지바르(Zanzibar)에서 니아사(Nyasa) 호수를 발견하고, 탕가니카(Tanganyika) 호수, 므웨루(Mweru) 호수, 방궤울루(Bangweulu) 호수를 지나 빅토리아 호수에 다다랐으나, 식량이 떨어져서 탐험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1870년 리빙스턴은 다시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말라리아로 거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한편 리빙스턴을 찾아 헤매던 뉴욕 헤럴드 신문사의 스탠리(Stanley)가 찾아 왔습니다. 힘을 되찾은 리빙스턴은 다시 나일 강의 수원을 찾기 위하여 탐험을 시작했지만 그는 너무나 늙고 지쳐있었습니다.
    28세에 아프리카에 온 이후 33년 동안 아프리카 중남부를 돌아다닌 리빙스턴은 1873년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1874년 그의 유해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고 그의 마지막 탐험여행기인 『중앙아프리카에서의 리빙스턴의 최후 일지(The Last Journals of David Livingstone in Central Africa)』가 출판되었습니다.

    리빙스턴 박사와 헨리 스탠리(Henry Stanley, 1841-1904)


     


     

    1869년 뉴욕 헤럴드 신문사는 아프리카에서 몇 년 동안 소식이 두절되고 행방불명된 선교사 데이비드 리빙스턴 (D. Livingstone, 1813-1873)을 찾기 위한 ‘리빙스턴 구하기’ 작전을 시작합니다. 
    과연 리빙스턴은 살아있을까? ‘만일 죽었다면 그 해골이라도 찾아오라’는 이 작전에 투입된 뉴욕 헤럴드의 전문 기자 헨리 스탠리(Henry Stanley, 1841-1904)는 탐사대를 조직하고 곳곳을 샅샅이 방문하는 무려 3년간의 탐사 끝에 드디어 1871년 11월 10일 탕가니카 호수 부근에서 한 노인을 만납니다. 
    스탠리는 순간 그가 리빙스턴임을 확신하고 다가가 묻습니다!! 그들이 극적으로 만나 나눈 첫 한마디는 서구인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뜨겁게 달군 유명한 말이 됩니다. 이 문장! 너무나 유명한 문장이 되었습니다! 
    Dr. Livingstone, I presume?” 리빙스턴 박사님이시죠? 맞죠? 
    어떻게 연락두절을 견뎠느냐는 말에 리빙스턴이 고백한 말이 유명합니다. 이 한구절!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리고 또 한구절이 있습니다.
    [요14: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러나, 리빙스턴은 헨리 스탠리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지는 않았습니다. 1873년 5월 1일, 리빙스턴은 침대 옆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숨진 채 발견되었고, 아프리카인들은 그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의 심장을 꺼내 므푼두 나무 밑에 묻었습니다. 그를 찾아냈던 기자 스탠리는 그 후 리빙스턴의 뜻을 계승하는 선교의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리빙스턴의 마음에는 개척자의 거룩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또 내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할 때 길을 만들어 놓고 여기까지 내가 왔으니 또 바톤을 이어받으라는 각오가 있었습니다. 미래의 길을 만들고 열어간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당신들이 이제는 더욱 전진하기 바랍니다라는 개척자의 열정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이런 도전이 늘 필요합니다. 
    신앙이 새로운 꿈과 열정을 잃어버리고 고인물처럼 변질되면 늘 시험 들 일밖에 없습니다. 
    평생 건강한 내 신앙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불타는 영혼구원의 사명을 지켜가고 일하는 것이 가장!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인물 같아서 사람들만 보이고 지루해지고 권태가 생기기 쉽습니다. 
    우리의 신앙에는 늘 건강한 도전과 자극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가장 내 신앙을 잘 지키는 일이 됩니다. 삶을 잘 사용하는 일이 됩니다.
    평생 계획이 있어야합니다. 10년 계획, 20년 계획이 있어야합니다. 
    평생 몇 명을 전도하겠습니까?
    평생 얼마를 헌금하겠습니다도 좋습니다.
    이것만은 해보고 싶습니다. 
    평생 선교사와 결연해서 끝까지 한번 도와보겠다도 좋습니다.
    모든 선교의 꿈이 있다면 이것을 이루어내기 원합니다!

    저도 기도합니다. 우암교회의 부흥입니다!
    2019년 10월 현재
    우암교회 웹교적프로그램에 따르면 우암교회의 총 교인수는 재적 2419명입니다.

    우암교회 교인 숫자 2,419명!
    이렇게 분석됩니다.
    * 등록 교인 1,738명
    (목사 7명,사모 준목 8명,전도사 3명, 장로(원로,은퇴) 13명, 권사 404명, 집사378명,성도 447명, 교육부서 478명(영유아 41, 유치부18, 꿈꾸는 에수마을 80, 청소년 67, 청년부 214, 중국인 58)
    * 장기결석 283명, 
    * 1회 방문등록 교인 398명
    그리하여 총계가 2419명입니다. 
    가장 고민되는 것이 일회 방문으로 그친 분들입니다. 새생명 축제 등에서 등록을 하긴 했는데 등록하고 계속 나오지 않은 이들에 대한 바나바 사역입니다. 그것이 실로 얼마나 중요한 지 모릅니다. 그들을 온전히 정착시켜야 비로서 2500명 교회, 나아가 3천명 교인이 될 것입니다.

    연말까지 잘 정리하려고 하며 그 영혼들을 꼭 정착시키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총력집중 마음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재적 3천명을 목표로 전진하기 원합니다.
    그것이 가장 건강한 사명입니다. 
    리빙스턴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인생을 잘 사용했습니다. 그는 잃어버렸던 대륙 아프리카를 찾아가서 그들을 하나님께서 잊지 않으셨다고 말해준 복음의 영웅이었습니다.

    나같은 죄인 살리신 Amazing Grace 라는 찬양 아십니까? 
    그 가사 중에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그 영어 가사도 기억하십니까?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was blind but now I see!
    리빙스턴의 마음으로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해내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10월 27일 전도 대축제를 위해 간절히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 결단 찬송- 339장 >
    오 신실하신 주- 리빙스턴이 가장 많이 불렀다는 찬송입니다. 


    • 이준원2019.10.09 17:57

      2019년 10월 현재
      우암교회 웹교적프로그램에 따르면 우암교회의 총 교인수는 재적 2419명입니다.
      2419명!
      이렇게 분석됩니다.

      * 교인1738명(목사 7명,사모 준목 8명,전도사 3명, 장로(원로,은퇴) 13명, 권사 404명, 집사378명,성도 447명, 교육부서 478명(영유아 41, 유치부18, 꿈꾸는 에수마을 80, 청소년 67, 청년부 214, 중국인 58)
      그리고 여기에- 장기결석 283명, 1회 방문교인 398명입니다.

      가장 고민되는 것이 일회 방문- 새생명 축제 등-하고 계속 나오지 않은 이들에 대한 바나바 사역입니다.
      그들을 온전히 정착시켜야 비로서 2500명 교회, 나아가 3천명 교인이 될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리빙스턴의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교회가 더욱 부흥발전되게 하시고

      3천명이 넘는 재적과 2천명이 넘는 출석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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