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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만우晩雨 송창근宋昌根 목사님의 영성
    첨부파일 12개
           한신대학의 창립자 만우 송창근(宋昌根 1898년 10월 5일~1951년)

              
     
    오늘 만나고자하는 분은 본 교단의 직영 신학교로 출발한 한신대학교의 창립자이신 만우 송창근목사님이십니다. 한신대학의 정신적 지주라면 흔히 장공 김재준목사님을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장공과 함께 힘을 모아 이 대학을 세우신 송창근목사님의 수고가 컸습니다. 
    이 분의 생애를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터이므로 중요한 사건들만 설명하고자합니다.

    ▶ 함경북도 경흥군 출생, 부친은 송시택, 모친 신봉암의 장남으로 출생– 신앙가정 
    ▶ 형제 5남매로서, 남동생 두 명(창혁, 창세)과 여동생 두 명 
    ▶ 부친이 세운 경흥 북일학교 진학
    ▶ 13세 때 가출, 북간도 기독교계 사립학교인 명동촌 명동소학교를 졸업, 명동중학교로 진학
    ▶ 1913년 결혼- 상대는 6살이 많은 김재권 


    ▶ 1914년 북간도 광성중학교에 진학,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가 된 이동휘 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음
       “기독교에 이 민족의 희망이 있다! 너는 본국으로 돌아가서 목사가 되어라!”

    ▶ 고향으로 돌아와 19세에 교회의 영수가 되고 1916년 서울로 유학, 피어선 성경학원을 다님
    ▶ YMCA 활동에 적극 참여-이상재선생에게 큰 영향을 받음 
    ▶ 1919년 3월, 피어선 성경학원을 졸업, 남대문교회의 조사(전도사)로 시무 (함태영조사 후임) 
    ▶ 1919년 강우규열사 사건으로 검거되고 1920년 독립운동 창가 배부사건으로 6개월 징역
    ▶ 고향으로 내려와 김재준을 처음으로 만나고 민족 계몽 운동 강연을 계속함 


    ▶ 1922 일본으로 유학, 동경 동양대학 입학, 1923년 청산학원 신학부 입학, 1926년 졸업  
    ▶ 1922년 중간 귀국하여 순회 민족 계몽 및 전도활동 
    ▶ 192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교 입학 (영어회화 자습서, 미국 이름- 프란시스 송)
    ▶ 1927년 프린스턴 신학교 수학 (한경직 목사, 김재준목사-1928년 도착)
    ▶ 1928년 펜실베니아 웨스턴 신학교 수학 / 1929년 신학사 학위 취득
    ▶ 1930년 콜로라도 덴버대학 수학 1931년 신학박사 학위 받고 귀국하여 평양산정현 교회 담임
    ▶ 1932년 목사시취 후 목사 안수


    ▶ 1936년 산정현 교회 사임 후 (후임 주기철목사) 부산에서 성빈(聖貧)학사 개설 빈민구제 운동

     

    ▶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도산 안창호독립운동 관련) 수감 (1938년 석방)


    ▶ 1938년 일제에 의해 평양신학교 폐교, 조선 장로교 신사참배 결의-1938년 9월 제27차 총회

    ▶ 1939년 조선인의 신학교 설립 계획을 세우다.
      노석 김대현 장로(1876~1940)의 '금필헌(金必獻)' 당시 50만원(미화 30만달러)을 기부 

    ▶ 1940년 4월 19일 조선신학원(강습소)개원, 53명의 학생을 선발, 개원(한신 개교 기념일)
       제1대 학원장 김대현 장로, 제2대 학원장 윤인구 목사, 1943 제3대 학원장으로 김재준 목사
       (강습소를 교회를 빌려 옮겨다니며 강의-승동교회, 정동 일본인 교회, 덕수교회 건물 임대)

    ▶ 1940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신학교 참여가 금지되어 김천 황금정교회의 담임목사로 부임
       공덕귀, 조선출, 정대위 전도사를 초빙 동역 

     

    ▶ 1945년 광복후 서울로 올라와 성남교회를 세움 ( 한경직-영락교회, 김재준-경동교회)
    ▶ 성남교회의 발전( 나운영장로, 유경손장로)과 동자동 조선신학교 시절 
    ▶ 1946년 조선신학원의 제 4대 원장으로 시무 (이장식 박사, 강원용 박사 등 제자 양육) 

    ▶ 1947년 ‘조선신학교’ 대학과정(학사,석사,박사의 수여) 문교부 인가, 제1대 교장 송창근박사
      경삼관(도서관)-초대 이사장(1948년–1953년)을 지내신 경삼 진정률 장로의 호, 거제도 진정률 장로께서 헌납한 거제도땅 50만평을 바탕으로 재단을 설립하여 정규대학 인가를 받음.
     (1951년 [한국신학대학]으로 개명, 1980년 [한신대학]으로 확장 발전 

     

    ▶ 1947년 성경 해석에 대한 신신학 논쟁으로 총회 갈등, 김재준목사 등에 대한 공격
      ( 결국 1953년 대구에서 열린 38회 총회에서 장로교는 예장과 기장으로 분리됨) 
    ▶ 1948년에는 “’반민특위’로 인한 친일 시비로 고통을 겪음 
    ▶ 1949년- 조선신학교를 돕기 위해 방미 및 신학교 지원 순회 모금 강연 중 병으로 쓰러짐 


    ▶ 1950년 3월 14일 귀국, 신학교 강연, ‘소와 무덤’
    “여러분, 우리가 소가 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생토록 열심히 일하고 죽어서도 고기요 가죽이요 뼈요 할 것 없이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소야말로 우리의 숭엄한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죽거든 내 뼈를 우리 조선신학교에 들어가는 문턱에 묻어서 우리 학교 직원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내 뼈를 밟고 넘나들게 해주게!"



    ▶ 1950년 8월 납북

    [송창근목사의 호 만우(晩雨)] 
    "야고보서 5장 7절에 있는 ‘늦은 비’의 뜻으로 ‘만우’라고 했다”
    “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송창근목사의 호 ‘시온성(時蘊城)’
    ‘시 시(時)’ ‘쌓을 온(蘊)’ ‘성 성(城)’ -> ‘시간을 쌓아 성을 이룬다!’

    [송창근목사의 평생의 비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이 민족을 위하여 인재를 발굴하여 기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도 평생 개발되겠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품위에 대하여 정당한 이해를 가진 때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반석’의 칭호를 주시고 다시 그 ‘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를 건축하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교회 건설의 기초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에 대한 정당한 이해를 가진 ‘인격’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옛사람도 ‘백년지계(百年之計)는 재어수인(在於樹人)’이라고 했으니 인물 기르는 것이 건설의 기초원리임을 알 것입니다.”

    송창근목사의 자기 연단- 평생의 고민  
    ‘자기건축(自己建築)’  “자기 자신을 어떻게 설계하여 운용할 것인가?”

    송창근목사의 좌우명
     ‘벽도 문이라고 믿고 밀고 나가면 문이 된다.’ ‘문이 없으면 벽을 밀어 문을 만들라’

    송창근목사님이 가장 좋아한 찬송 
    379장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신앙의 거룩한 감격을 평생 잃지 말라! 송창근의 삶과 사상을 일관한 것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향하여 항상 자신의 전부를 열어 놓고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상의 외면은 다양하면서도 그 내용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에서 하나로 일관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감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감격’은 그의 삶의 근본 토대였습니다. 그래서 찬송가를 불러도 열정적으로 힘 있게 불렀다고 합니다. 이장식 교수님의 회고록에 ‘찬송가를 부르는 송창근목사님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나는 성바울 교회에서와 신학교 예배실에서 송창근 박사님의 찬송 부르시는 모습을 눈 여겨 보았다. 그는 찬송가 책을 한 손에 높게 드시고 힘차게 그리고 큰 목소리로 부르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여러 면으로 감동적인 인상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머에 능했고, 인정다웠고, 창의적이었고, 용감했고, 민족애에 불타는 애국자’(김재준), 
    ‘총명 위에 다독하고 다정한 위에 결벽한 사람’(김인서), 
    ‘경건, 학문, 선교의 신학교육 이념을 정립하신 이’(김정준), ‘

    그리고 송창근박사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고!

    • 이준원2019.08.22 19:54


      [송창근목사의 호 만우(晩雨)]
      "야고보서 5장 7절에 있는 ‘늦은 비’의 뜻으로 ‘만우’라고 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여 씨를 뿌리고 또 뿌렸던 영적 농부!
      늦은 비를 기다렸던 그 수고를 기억하며
      오늘 우리도 최선을 다하여 오늘 내가 뿌려야 할 소망의 씨를 뿌리는 사명
      온전히 감당하기 원합니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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