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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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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9일(화) 유다서 1:1-10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성경에는 5권의 한장으로 된 성경책이 있는데 유다서가 그 중 하나입니다.
    구약의 오바댜, 그리고 신약의 빌레몬서, 유다서, 요한2서, 요한3서로 총 5권의 한 장으로 된 책이 있습니다. 이 성경을 쓴 유다는 예수님의 동생 유다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들과 여동생들도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고 출산하고 난 후목수 요셉과 결혼생활을 하는 가운데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고 봅니다.
    [마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도...)
    예수님의 형제로서 유다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가 그 형제 야고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처럼 그도 부활과 성령충만의 거룩한 사건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는 A.D.7-80 경에 순교한 것으로 전승되어옵니다. 그래서 유다서도 A.D.7-8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유다는 이 편지의 서문에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유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그런데 1절은 짧지만 대단히 중요한 구절입니다. 
    우리의 신앙적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지금 우리 신앙인들을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요 사랑을 얻은 사람들이요 지키심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유다서 1:1절에 따르면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자 (소명을 받은 자) 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 지금 예수님께서 보호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2절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유1: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긍휼(헤세드)의 축복과 그 나눔이 있기를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강(샬롬-에레네레)의 축복과 그 나눔이 있기를
    우리에게 성령님께서 주시는 사랑(아가페)의 축복과 그 나눔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짧은 이 유다서의 목적은 이단풍조에 대한 경고에 있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부인하는 이단의 교사들에 대한 강력한 경고입니다. 유다는 그들과 힘써 싸우라! 강력하게 그런 풍조에 대항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1:3]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일반으로 받은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생각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이 사람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이단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당시의 대표적인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영지주의(그노시스)는 영적인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종의 신비주의였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단 하나의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고 영적인 지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다보니 두가지 극단적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즉 육신을 죄의 도구라고 생각해서 아주 극단적으로 금욕주의적으로 몸을 학대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몸이란 어차피 동물적인 배설의 도구에 불과하고 영만 구원받으면 되니 몸으로 하는 것들은 어떤 것도 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에비온주의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했고 마르시온은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인정하지 않는 자기 주장들만 난무했던 것이었습니다. 유다서는 이것을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은혜가 변질되어 방탕한 것이 되었다!


    그들은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다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주장만 내세웠습니다. 이미 자신들이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방탕하다'는 말의 원어 ἀσέλγειαν 아셀게이아는 때묻어 버린, 욕심에 가득찬, 인간적인 욕망만 가득해진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도 두려워합니다. 인간적인 욕심! 교회와 신앙을 이용한 자기과시에 불과한 신앙은 변질된 것입니다. 신앙을 자기 드러냄이나 이익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 신앙을 자기 명예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을 때 우리는 이단이 된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 존경을 받는 K, J목사님들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교회는 하나님만 주인되시는 교회가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드러나지 않는 교회, 사람이 설쳐대지 않는 교회! 특정한 사람들이 좌지우지하지 않는 교회! 갑질하거나 거들먹거리는 사람이 없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더니 많은 교인들이 공감하고 따라주어 크게 부흥하게 되었다는 간증을 의미 깊게 새겨야할 것입니다. 모두의 똑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나아가 한국교회의 맘몬주의, 교권주의의 타락도 이것의 변질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깊이 새겨볼 일입니다. 자기 자랑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신앙과 교회를 이용한다면 바로 유다서의 이단이 되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깨어있기 원합니다!


    <하나님 진노의 무서움- 지금 참아주시는 듯 하지만 그러나 반드시 멸망시키신다!> 
    5절 이하는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에 대한 경고입니다.
    [유1:5] 너희가 본래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유1: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자기 처소들을 떠난 천사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에는 이사야 14장, 24장 등에 암시적으로 나와있습니다. 흔히 루시퍼로 알려진 사탄의 대장은 원래 음악으로 하나님만을 찬양하는 일을 담당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천사였는데 나중 자기자신이 영광받고 인정받기 원하면서 자기의 처소를 떠나고 자기의 위치를 떠나 타락하여 결국은 버림받고 형벌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에녹서라는 위경에 나와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에게는 무서운 형벌이 예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도 결국 불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그것을 강력히 경고합니다.
    [유1: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그들과 같은 행동으로 음란하며 다른 육체를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유1: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비방하는도다
    꿈꾸는 사람들- 그들은 혼자 계시를 다 받았다는 사람들입니다. 나혼자 계시를 보았다, 들었다, 비밀을 나 혼자 알고 있다는 것이 이단의 문제가 됩니다. 이미 거룩한 계시와 구원의 원리는 성경책에 다 공개되어 있습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의 특징은 나 혼자 계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혼자 받는 계시는 없습니다! 실천이 없는 것 뿐이라고 하겠습니다.
    유다서는 모세의 승천기 등으로 알려진 위경에 나타난 얘기를 인용합니다. 유다서가 정경 66권이 아닌 위경들을 인용한 것은 당시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들을 통해서 각성을 주려했던 의도로 보입니다.  
    [유1: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비방하는 판결을 내리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1: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도다 또 그들은 이성 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여기에 나온 모세의 시체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자체에는 없습니다. 신명기 34장에는 모세의 장례 이야기가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 그 묘를 아무도 모르게 하셨습니다. 그 묘가 있었다면 아마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숭배하고 참배하는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 뿐만 아니라 유대교도 이슬람도 모세를 위대한 선지자로 보고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사랑하셨지만 그가 우상이 되기를 원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조금 주목할 것은 신명기 34장의 원문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친히 장례해주셨다고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신34:6]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히브리 원어->주께서 그를 벧프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하셨으니  וַיִּקְבֹּ֨ר = He(God) buried him ) 오늘까지 그의 묘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더라.

    문제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한 내용입니다.
    지금 [‘모세의 숭천기’]라는 위경은 사라졌다고 해서 읽기가 어려운 데 19세기에 라틴어로 쓰인 모세의 승천기 단편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 모세의 승천기, 또는 유언기를 당시에 읽은 초대교회의 교부 오리겐 등이 말한 바에 따르면 이 부분은 모세의 승천기-유언기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즉 모세가 죽자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를 치우려 할 때 사단이 나타나 모세가 애굽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라는 이유로(출 2:12) 모세의 시체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고 이때 미가엘이 사단을 처단하지 않고 꾸짖어 쫓아내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가엘은 강력한 권세를 가진 천사장이었기에 사단 쯤은 즉각 처벌해도 되는 데 혹여라도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기 주장대로 하게되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천사장도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두렵게 여기는데 지금 유다가 지적하는 이단들은 이미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기 주장과 자기 의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과 은혜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 지금 본문이 강조하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렵습니다!
    오늘 혹 우리들도 나도 모르게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욱 낮아지고 더욱 겸손해져서,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내 믿음의 생애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나라는 사람의 과시와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더욱 진실할 것!
    내가 누구이며 어떤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인지 잊지 말 것!

    [유1: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다시 마음에 새기는 교훈입니다!

     

     

    • 이준원2019.07.09 06:59


      지금 유다가 지적하는 이단들은 이미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자기 주장과 자기 의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과 은혜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렵습니다!

      오늘 혹 우리들도 나도 모르게 이런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더욱 낮아지고 더욱 겸손해져서,

      주님보다 앞서지 않는 내 믿음의 생애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나라는 사람의 과시와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오직 예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더욱 진실할 것!

      내가 누구이며 어떤 은혜를 받고 사는 사람인지 잊지 말 것!

      [유1:1]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오! 주님! 내 평생을 은혜로 인도하소서! 아멘! 아멘!



      다시 마음에 새기는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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