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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칼빈의 생애 " 내 심장을 나의 주님께!"
    첨부파일 6개
    장 칼뱅 Jean Calvin (1509-1564) 내 심장을 드리나이다!

    요즘 수요 인물강의를 진행 중입니다. 외국분들이 많이 등장해서 조금 낯설고 생경하고 어렵게 생각될 수 있지만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진지하게 교회사를 배운다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배워야할 분들입니다.
    이번에 저는 이 분들의 사상적인 면보다 인간적인 면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인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요 그들을 부르신 주님 우리를 똑같이 부르셨고 그들을 사용하신 주님께서 지금 우리를 이곳에서 사용하고 계심을 확인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 강의의 목표도 있습니다.
    1. 복음을 전 인격으로 진지하게 살아내었던 신앙 위인들의 진실한 섬김의 삶을 본받자! 
    2. 영성 전통을 배우면서 100주년을 맞이하는 우암교회의 내면적 영적 품격을 만들어가자!

    존 칼빈(장 칼뱅 Jean Calvin 1509-1564; 54세) 

         

     ☛ 프랑스 피카르디 출생; 스위스 제네바 사망; 결혼 / 목사 / 칼빈주의 신학이론 주창자 
     ☛ 마틴 루터 등이 시작한 종교 개혁을 완성한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장로교의 창시자, 
     ☛ 원죄론, 삼위일체론, 특히 이중 예정론을 주장함  
     ☛ 59권의 저서; 특히 《기독교 강요》(1536)는 기독교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놓은 책  
     ☛ 직업(職業)소명론(召命論)에 근거, 자본주의(資本主義 Capitalism)의 신학적 기초를 놓음 

    칼빈은 1509년 프랑스에서 법률가였던 아버지 제랄 코반(Gerard Cauvin)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본래 이름은 장 코반(Jean Cauvin)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신도였지만 당시 성당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당활동을 하면서 그 부패상을 너무도 많이 목격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큰 아들도 사제로 바쳤고 둘째 아들인 칼빈도 성직자 예비 장학금을 받아 사제가 될 예정이었지만 당시 카톨릭의 부패에 고민했고 결국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유로 나중 파문당하게 됩니다. 사제였던 큰 아들도 결국 나중 파문당하게 됩니다. 칼빈의 개종- 종교개혁에는 이런 아버지와 가족들의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칼빈은 1523년(14살)에 파리로 유학했고 파리의 몽테귀 컬리지에서 수학했으며 인문학자이자 종교개혁에 많은 영향을 준 에라스무스와 라블레 등에게 배우게됩니다. 에라스무스에게 사고하는 법과 글을 쓰는 법과 인문학적 시야를 배우게 됩니다. 에라스무스는 신학에도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칼빈은 나중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오를레앙 대학교로 옮겼고 거기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때 배운 학문들은 평생 그가 글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되기 위한 준비로 공부했던 성경연구의 깊이와 법률적 분석 지식까지 곁들여 칼빈 신학은 이때 토대를 갖춘 것으로 보입니다.
    칼빈에게 특별한 종교개혁적 인생 사건이 따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앙생활 속에서 교회생활 속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며  스스로 묻고 고민하는 가운데 개혁의 사상이 싹텄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루터와 츠빙글리를 비롯한 많은 개혁자들의 개혁적 주장이 널리 알려지고 있는 때였습니다. 칼빈은 그런 의미에서 자생적으로 프로테스탄터 Protestanter-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루터와 칼빈은 일생 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서로를 들어 알고 있었고 서로 글 등을 통해 존경하는 사이였고 존중하며 인정하는 사이였지만 막상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루터는 독일, 칼빈은 프랑스로 국적도 달랐고 나이도 20여년 가까이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마음으로 신뢰하는 관계였습니다.

    파리 대학교 니콜라 콥 학장 취임식 선언문
    루터에게 비텐베르크 교회당에 95개 조항을 붙였던 1517년 10월 31일과 같은 사건이 있었다면 칼빈에게는 1533년 11월 1일 파리 대학교학장 니콜라 콥의 취임 연설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미 종교개혁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던 니콜라 콥 학장은 당시 카톨릭의 높은 직위를 가진 이들이 모이는 이 취임연설에서 종교개혁 선언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같은 종교개혁 정신을 가진, 평소 신뢰하던 칼빈에게 종교 개혁적 취임사를 쓰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바로 칼빈이 작성했는데 그것이 프랑스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카톨릭의 영향 아래있던 프랑스 국왕은 이들이 루터의 영향을 받았다고 믿고 대대적인 박해를 시작하여 니콜라 콥은 피신하게 되었고 칼빈도 무서운 박해를 피하여 다니게 됩니다. 그 사이 그는 수많은 종교개혁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때부터 분명한 종교개혁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칼빈에게 가장 영향을 크게 주고 평생 동행한 동반자가 있다면 바로  기욤 파렐(Guillaume Farel, 1489~1565)이었습니다. 기욤 파렐은 칼빈처럼 프랑스 사람이었습니다. 파렐은 당시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의 루터 M.Luther처럼 영향력을 가지고 선구적 종교 개혁 활동을 하던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년)에게 영향을 받고 함께 스위스에서 종교개혁을 이루어 낸 사람이었습니다. 
    파렐은 칼빈을 알게 되고 뛰어난 그릇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끊임 없이 칼빈을 격려하고 목회하게 했고 칼빈의 결혼식 주례를 했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는 칼빈보다 20세나 연상이었지만 칼빈을 인정하고 존경했고 평생 그와 함께 종교개혁의 길을 가기 원했습니다.
    그 기욤 파렐의 권유에 따라 칼빈도 스위스로 옮기게 되고 바젤 등을 거쳐 본격적인 목회를 하게 됩니다. 제네바는 그가 평생을 목회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제도 아니었고 따로 목사 안수를 어디에서 받을 곳도 없었지만 칼빈은 스위스 제네바 의회의 인정에 따라, 그리고 먼저 목사로 활동한 기욤 파렐을 따라 설교를 하고 목회를 하는 지금의 개신교적 의미의 최초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출판된 책에는 「제네바의 하나님의 교회 목회자 신학박사 요한 칼빈 목사」라고 기록된 책이 있습니다. (한국 칼빈박물관 소장)
    그리고 그는 평생을 보낸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기독교의 신학적 고전으로 널리 알려지 위대한 책을 쓰게 됩니다.
    1536 《기독교 강요》(基督敎綱要, Institutio Christianae Religionis) 1560
    이 책은 기독교 역사에 가장 중요한 책이 되었고 모든 신학교에서는 이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가장 먼저 읽는 책이 되었습니다.

    파렐은 칼빈과 함께 제네바에서 개혁운동을 하다가 제네바 시의회와 개혁방향에 대한 의견이 부딪혀서 칼빈과 함께 추방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또 시간이 지나자 다시 제네바 시의회는 파렐을 초청했습니다. 그때 파렐은 다시 칼빈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칼빈은 그의 초청을 처음에는 거부했습니다. 당시 갓 결혼한 상태였고 제네바에서 추방당한 기억 때문에 갈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파렐이 다시 보낸 간곡한 초청편지에 그가 응답한 편지는 가슴을 울리는 거룩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고 고백한 라틴어 고백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
    “Cor meum tibi offero Domine, prompte et sincere!”
    ”주님께 나의 심장을 드리나이다. 바로, 그리고 신실하게!“
    — 칼뱅, 파렐에게 보낸 1540년 10월 24일자 편지


    칼빈은 한때는 추방당하기도 했지만 다시 제네바로 와서 평생을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1541년부터는 제네바의 지도자급이 되었습니다. 당시 개혁신앙의 도시로 완전히 변모한 제네바는 칼빈을 존경했고 그는 본의 아니게 제네바의 정치적 지도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네바 시의회가 결정하는 모든 일을 칼빈이 최종 인가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의 뜻과 달리, 제네바 시의회원들의 결정이 칼빈의 결정으로 오해되기도 했습니다.

       
    제네바의 칼빈 교회당



    이 당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생 칼빈을 따라다니는 수많은 공격들이 있습니다. 특히 당시 처형을 당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칼빈의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3명 교수형, 10명 참수형, 35명 화형되었는데 그것을 칼빈이 했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비난하는 주요 내용입니다. 특히 삼위일체론을 거부했던 세르베테스를 화형시킨 것은 오점으로 남는 일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카톨릭을 반대하던 칼빈이 결국 카톨릭처럼 신학적 반대자들을 사형하는 큰 오류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파렐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칼빈은 세르베테스의 화형을 중지하려고 제네바시의회에 의견을 제시했으나 제네바 시의회원들의 강경한 태도로 화형을 집행하게 된 역사적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어떤 의미건 칼빈이 사형제도를 인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종교적 문제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부도적하고 극악한 범죄에는 분명한 응징이 있어야하며 사형제도도 그런 의미에서 허락할 수 있다는 것이 칼빈의 입장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네바에서 목회하면서 칼빈은 현대 장로교의 제도를 공식화했습니다. 즉 지금의 목사, 시무장로, 집사제도 등을 제정했습니다. 카톨릭의 교황이나 사제 중심적인 교회 치리 형태를 벗어나 목사 외에 장로 집사 교사 등의 평신도들을 교회의 리더십으로 세운 대의적 교회정치 형태는 이후의 민주주의 사상에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구체적인 사회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당시 제네바 산업을 발전시키고자 시계산업, 모직산업을 장려했습니다. 또한 사회복지예산을 제네바 시 의회에 요구했고 돈많은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것을 죄라고 설교했습니다. 또한 극빈자들을 위한  병원을 많이 지어 제네바 시민들의 건강권을 배려했습니다. 모든 직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귀천을 따지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잘살고 그 재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쓰자는 것이 그의 물질관, 직업관이었습니다.
    <결혼>
    1540년 칼빈은 31세에 프랑스 출신의 2자녀가 딸린 동갑 과부 이델레트 드 뷔르와 결혼했습니다. 이 가정은 과부의 남편이 생존했을 때 신앙적 지도를 한 가정이었고 아이들도 유아세례를 주었는데 흑사병으로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칼빈은 여러 결혼 시도가 무산되던 과정에서 이 과부가 된 이델레트와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둘 다 병약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칼빈 자신의 자녀들은 사산, 유산 등으로 결국 없었고 이델레트의 두 자녀들을 잘 길러냈습니다. 9년간의 결혼 생활 후  아내는 1549년에 칼빈의 손을 붙잡고 신앙고백을 한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15년을 독신으로 더 산 칼빈도 나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칼빈의 예정론>
    칼빈의 주요사상 중 역시 가장 큰 논쟁점은 <칼빈의 이중 예정론>일 것입니다. 즉 칼빈의 이중 예정론은 구원받을 사람과 멸망받을 사람은 이미 예정된 것이라는 이론이었습니다. 칼빈이 주장했기에 권위를 지니고 있는 이 이중 예정론은 그러나 성경을 연구한 많은 신학자들에 의해 질문을 받고 있는 신학이론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 웨슬레는 예정이라는 것을 당연히 인정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독재적, 숙명적 예정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자기 의지를 통한 변화와 결단을 인정하신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예정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함께 인간의 의지적 노력을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심을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칼빈의 이중 예정론보다는 요한 웨슬레의 성화론을 더 지지한다고 보입니다. 저도 이점에서는 요한 웨슬레에 가깝습니다. 칼빈의 신학적 입장도 소중하지만 성경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의 근거가 있습니다!
    칼빈은 또한 루터처럼 음악적 소양은 없었지만 시편을 풀어낸 가사를 찬송가 가사로 많이 작사하고 그것을 예배시간에 찬송으로 부르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는 학자였지만 목회와 설교에도 최선을 다한 목사였습니다.
    칼빈은 몸이 병약한 가운데서도 평생 강의와 설교를 했고 성경 각 권의 주석을 집필하였고,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를 계속 재편집했습니다. 20여 편에 달하는 신학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수많은 신학적 단상이 담긴 서신을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했습니다. 칼빈의 저작 전집은 총 59권에 달합니다.

    칼빈의 많은 어록 중 기억할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 나는 원래 수줍어하고,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항상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했다... 모든 피정과 그 장소가 나에게는 학교와 같았다. 나의 이러한 무명의, 조용한 생활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곳곳을 돌아다니게 만드시어 나의 타고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흔히 말하듯이, 빛 속에서 나시게 하고, 이러한 목적까지 나를 이르게 하셨다."
    "그대들을 늘 기억하기를... 우리가 어디를 가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따르리라" 
    "우리 지혜는 두가지 부분에 집약되는데,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코람 데오(Coram Deo) 
    특히 코람 데오(Coram Deo) 오직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in the presence of God) 는 칼빈이 평생 붙잡았던 고백이었습니다. 
    칼빈의 생애가 그랬습니다!

     

    1564년 5월 27일, 칼빈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가 주치의에게 말한 병명은 수없이 많습니다. 위궤양증, 관절염, 천식, 폐병, 장출혈, 치질에 신장결석까지, 가히 모든 질병을 다 지니고 살았습니다. 특히 스트레스성 신경질환으로 끊임없는 두통에 시달려야했는데, 한밤중이면 심한 두통으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질병을 ‘부르심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는 안식의 메시지’로 이해했습니다. 병 하나에 일희 일비하는 것, 병이 생겨 죽는다 몸부림치거나 병 하나 나았다고 그것 때문에 펄쩍 기뻐뛰며 하나님 살아계시다고 말하고 그러다가 병이 또 심해졌다고 절망하는 것은 진정한 신앙적 태도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병이란 자신의 약함을 알게 하시고 순종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방법이라고 믿었습니다.

    1564년 5월 27일자 제네바 의회의 기록에는 "오늘 저녁 8시, 책임감이 강한 칼뱅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감각과 정신이 온전한 채로 하나님께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칼빈의 생의 모든 목표는 단 한가지, 신앙고백서의 첫 문장처럼 "인생의 목적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의 방향과 목표를 다시 생각합니다!

    • 이준원2019.06.27 12:09


      칼빈의 많은 어록 중 기억할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 나는 원래 수줍어하고, 남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항상 조용하게 지내기를 원했다... 모든 피정과 그 장소가 나에게는 학교와 같았다. 나의 이러한 무명의, 조용한 생활을 원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곳곳을 돌아다니게 만드시어 나의 타고난 성격에도 불구하고, 흔히 말하듯이, 빛 속에서 나시게 하고, 이러한 목적까지 나를 이르게 하셨다."

      "그대들을 늘 기억하기를... 우리가 어디를 가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를 따르리라"

      "우리 지혜는 두가지 부분에 집약되는데,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다"

      오늘 우리도,
      코람데오로 이 길을 걷기 원합니다.

      다시 다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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