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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어색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다!
    첨부파일 3개
    4월 9일(화) 갈라디아서 4:12-20 /  
    서로 어색해진 관계에 대한 바울의 무거운 마음 



    사도바울은 지금 마음이 괴롭습니다!
    갈라디아 지역의 교인들과 관계가 불편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때는 그렇게 좋았는데 바울은 지금 마음이 심히 괴롭습니다. 그들을 이해해보려고도 노력하고 내가 무엇을 실수했는가를 생각도해보는데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라 진리의 문제였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최선을 다해 지금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갈4: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이 문장을 내가 당신들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 같이 당신들도 나를 이해해주기 바란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대한 좋은 기억을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당신들 내게 참 잘해주었습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무척 친했었지요! 사도 바울은 지금 좋은 기억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약점- 아마도 거의 장애자에 가까웠던 시력-까지도 이해해주었고 오히려 안타깝게여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갈4:13]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갈4:14]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그런데 그 마음이 변했습니다. 
    [갈4: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복!- 교역자를 기쁜 마음으로 섬길 수 있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행복한 신앙생활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그 행복이 어디 갔습니까?"
    사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교역자와의 관계만 평안해도 그것이 신앙의 힘이 되고 내게는 복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음이 평안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생 그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들이 그렇게 다정다감했는데 왜! 바울은 고통스럽습니다!
    [갈4: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아무리 생각해도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감정문제라면 풀 수가 있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복음진리의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설령 그것을 지적하는 방법이 아주 아팠다해도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쩔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했다고 지금 섭섭해한다면 신앙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여기에 이간질하는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론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더 정성을 쏟는다는 것이 결국은 자기 사람, 자기 편 만들자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남다른 정성을 쏟아 섬기는 것도 결국 내 사람 만들어 이간질시키려고 하는 것 뿐이라고 보는 것은 그것이 복음의 진리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갈4:17]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사도바울은 그 의도가 선한 것이었다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고 보고있는 것입니다. 
    [갈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현대어 성경은 이 부분을 이렇게 해석해놓았습니다.
    "그들이 선한 동기와 진실한 마음으로 여러분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왜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더구나 내가 여러분과 같이 있을 때뿐 아니라 없을 때도 한결같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더욱 훌륭한 일이겠지요."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미 그리스도의 형상을 잃어버렸다고 봅니다. 다시 시작해야하고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율법적인 생각이 가득하게 되었고 인간적인 생각만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사도바울은 이것을 '해산하는' 수고로 비유합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양육하는 것을 어머니가 아기를 출산하는 고통에 비유하며 다시 중생의 체험을 해야하며 중생한 자가 가야 할 성화의 양육을 다시 시작할 수 밖에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갈4:20]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20절은 좀 해석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개역성경은 음성을 변하려함은 으로 번역했는데 개정성경은 언성을 높이려함은으로 번역했습니다. 언성을 높인다는 것은 화를 낸다는 뜻인데 원문은 이와 반대로 좀 조용히, 차분하게 대화를 해보고싶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Gal.4:20] how I wish I could be with you now and change my tone, because I am perplexed about you! 
    * 새번역 성경 [갈4:20] 이제라도 내가 여러분을 만나 어조를 바꾸어서 이야기를 나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일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당황(아포루마이)하고 있습니다.
    다음 구절과 관계해 생각해볼 때 사도바울은 다시 복음의 원론을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서 차분한 마음으로 왜 이렇게 바울이 강하게 말하는지 설명한다는 점에서 하나 하나 설명하며 납득하도록 풀어간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평생의 관계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서로 서운하여 관계가 점점 서먹하게 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무거운 마음과 고민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평생의 관계유지가 숙제입니다! 믿음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해야 나빠지지 않고 잘 갈 수 있을까요!
    사랑과 미움과 점점 멀어짐! 그 수많은 생의 사연들을 우리가 경험했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관계와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 실망과 서운함의 문제들...
    바울은 지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설득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의 유명한 말을 기억합니다.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비본질적인 것에는 관용을, 모든 것에는 사랑을! 
    저도 평생 마음에 새기는 구절이 있습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닌 한 모든 것은 다 양보한다! 절대 자존심 세우지 않는다!
    지금 사도바울의 마음은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감정이 상하는 것으로 드러나기에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지켜져야합니다. 엄격한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과 관계가 상하지 않는 것도 지혜입니다.
    이것을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노력합니다.
    혹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모든 불편한 관계?! 
    원인과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우리도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을 붙잡고 용서와 인간이해로 최선을 다해보기 원합니다!
    이 때 끝까지 붙잡아야할 것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 거룩한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샬롬!
    샬롬입니다!




      

    • 이준원2019.04.09 14:00


      저도 평생 마음에 새기는 구절이 있습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닌 한 모든 것은 다 양보한다! 절대 자존심 세우지 않는다!

      지금 사도바울의 마음은 복음에 대한 열정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감정이 상하는 것으로 드러나기에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는 반드시 지켜져야합니다. 엄격한 원칙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사람의 감정과 관계가 상하지 않는 것도 지혜입니다.
      이것을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노력합니다.

      혹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르는 모든 불편한 관계?!
      원인과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우리도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사랑을 붙잡고 용서와 인간이해로 최선을 다해보기 원합니다!
      이 때 끝까지 붙잡아야할 것은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그 거룩한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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