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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 망신과 상한 감정! 그 마음을 어떻게 처리했을까?
    첨부파일 3개
    2019년 4월 4일(목) 불편했던 사건

     

     

     


    사도바울은 지금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를 회상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지켜려고하다보니 터져나온 사건이었습니다!
    [갈2: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를 대면하여 책망하였노라 [갈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갈2:13] 남은 유대인들도 그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그들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설명하자면 지금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던 지도자 베드로가 안디옥 교회로 심방와서 잘 식사대접을 받는 장면입니다. 당시에 베드로는 교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안디옥 교인들이 최선을 다하여 음식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그 식탁에 유대인들은 금기로 생각했던 돼지고기 등이 올라왔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돼지 불고기에 돼지 삼겹살에 장어구이까지 아주 다양하고 정성스럽게 준비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들이 헬라인들에게는 아주 좋은 음식이었을지 모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평생 금기식품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문제는 사도 바울도 사도 베드로도 어렸을 때부터 이런 음식들을 금기로 여기며 살아왔던 사람들이라는데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지 않은 식물들을 보여주시면서 레위기에 따르면 금기 식품들을 먹으라고 하시니 베드로가 고백합니다. 나는 단 한번도 그런것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그러자 하나님께서 내가 정하게 한 것을 네가 부정하다고 말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베드로에게는 그런 음식에 대한 거부반응이 정서와 체질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어 이 음식을 먹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이 아무 것도 모르고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음식이라서 마음을 굳게하여 이 음식을 먹고 있는데 마침 그때 예루살렘 교회의 야고보( 주님의 동생 야고보로서 당시 대단한 권위가 있었습니다~)가 보낸 사람들이 방문한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들이 와서 이 음식판을 보면 분명히 시험들 것 같아서 베드로는 슬그머니 일어납니다. 그리고 같이 식사하던 유대인들도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고 거기에 바나바까지! 사도 바울과 이방선교를 같이 다녀왔던 바나가까지 슬그머니 같이 일어나 이 시험들기 쉬운 자리를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분노가 여기에서 폭발하여 베드로를 심히 꾸짖은 것이었습니다!

    [갈2:14]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그런데 베드로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사실은 바울도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들에게는 헬라인들처럼 행동했고 그 이유를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바 있습니다. 즉 바울도 똑 같았던 것입니다. 사실은! 
    [고전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저는 이 장면을 늘 묵상할 때마다 이것은 교리 논쟁이 아니라 감정충돌의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고 늘 생각합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를 생각하고 망신스러운 기분, 불쾌한 기분, 상한 자존심과 기분 나쁜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에 더 마음을 모아 생각하곤합니다. 그 이유는 신앙생활에 있어 교리적 차이는 서로 신뢰만 되면 의외로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감정균열과 충돌은 교리적 충돌보다 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식으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개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당시에는 상대도 안되었던 바울이라는 사람에게!
    그런데 베드로는 이 감정을 극복해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극복한 것을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베드로의 마음이 넓었습니다. 품격이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것을 이겨내는 힘도 있었고 성령께 맡기는 능력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훗날에도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믿어주었습니다. 함께 믿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바울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믿고 기분나쁜 것은 다 털어버렸습니다!
    [벧후3: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 리더다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지금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자리를 뜨지 않고 당당하게 앉아서 식사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온 교인들에게 율법적 음식규례가 구원과는 관계없고 오직 예수님을 바로 믿음으로서 구원받는다는 것을 몸소 본인이 음식을 먹으면서 전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도 지금 그렇게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돕지 않았다고 하는 아쉬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을 따라 살 때 신앙은 행복이 아니라 경쟁이었고 누가 더 율법을 잘지키는가 늘 감시하고 있었고 그래서 마음은 편할 날이 없고 늘 긴장이 되어있었습니다. 경쟁적으로 서로 잘믿는척 했지만 서로를 늘 감사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무엇보다 내면의 거짓과 위선에 대한 심적 고통은 말할 수가 없을 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만났던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고 전하는데, 지금 도와주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했던 것이었습니다. 
    [갈2: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바울은 말합니다.
    [갈2: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이 17절을 현대어 성경이 잘 이해되로록 번역했습니다->
    [갈2:17] 그러나 만일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던 일이 ( 나중에 가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져 우리가 할례를 받고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망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바울은 오직 예수!를 다시 외칩니다!
    율법적 형식과 위선, 거짓으로는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갈2: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그리고 바울의 위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이 구절을 우리가 암송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아멘!

    [갈2:21]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을 찬양합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04.04 11:11



      저는 이 장면을 늘 묵상할 때마다 이것은 교리 논쟁이 아니라 감정충돌의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고 늘 생각합니다. 상한 감정의 치유를 생각하고 망신스러운 기분, 불쾌한 기분, 상한 자존심과 기분 나쁜 그 순간을 어떻게 극복했을까에 더 마음을 모아 생각하곤합니다. 그 이유는 신앙생활에 있어 교리적 차이는 서로 신뢰만 되면 의외로 쉽게 극복할 수 있지만 감정균열과 충돌은 교리적 충돌보다 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했을까요?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식으로 거칠게 표현하자면 개망신을 당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당시에는 상대도 안되었던 바울이라는 사람에게!
      그런데 베드로는 이 감정을 극복해내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극복한 것을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베드로도 바울도! 베드로의 마음이 넓었습니다. 품격이 있었습니다! 기분 나쁜 것을 이겨내는 힘도 있었고 성령께 맡기는 능력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훗날에도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믿어주었습니다. 함께 믿어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바울을 소중한 사람이라고 믿고 기분나쁜 것은 다 털어버렸습니다!
      [벧후3: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베드로! 리더다웠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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