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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헤렘חֵ֗רֶם의 법칙 - "죽어야 산다!"
    첨부파일 4개
    2019년 4월 3일(수) 
    레위기 마지막 27장 / 서원의 장, 결단의 장

     

    레위기 27장, 마지막 장-은 감상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천적인 신앙의 결심을 요구합니다. 구체적인 열매를 어떻게 맺겠다는 서약을 지금 받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레위기 27장은 서원장입니다. 하나님께 이런 것을 드리겠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장입니다. 거룩한 헌신,헌물의 서원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값이 있다!

     [레27: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레27: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 
    이 부분을 개역 성경은 사람의 값이 아니라 사람 자체라고 번역했는데 히브리 원어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이라고 말합니다. 즉 사람 자체를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값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값만큼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사람의 값이라!
    내 인생의 값은 얼마나 될까요? 혹시 정가가 잘못 계산된 것은 아닐까요? 오랜 직분이나 세월로 따지면 상당히 값이 나갈 것 같은데 실제적으로 재보면 아주 가벼운 것은 아니겠죠? 겉 모양만 그럴듯한 싸구려 제품은 아니겠죠? 
    이것은 아무래도 측정된만큼 헌금도 드려야하니 가난한 사람이 다시 신청하면 제사장은 다시 재측정하고 재평가해야했습니다. 
    [레27:8] 그러나 서원자가 가난하여 네가 정한 값을 감당하지 못하겠으면 그를 제사장 앞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 값을 정하되 그 서원자의 형편대로 값을 정할지니라 
    그런데 문제는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직분자라고해서 가격이 과장되어 지나치게 잘못 측정된 것은 아닌지도 돌이켜보아야겠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사람 그런 능력이 못된다, 믿음이 잘못 측정된 것이다, 과대측정된 것이라고 하신다면, 그래서 재측정! 재평가해야한다고 하시면 마음이 슬플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 인생정가가 높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정가를 다시 매길수록 비싸지기를 원합니다. 

    성별하여 드리는 태도

    레위기 27장은 이어 가축(9-13절), 집(14-15절), 밭(16-25절), 십일조(30-34절)를 성별하여 드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성별(聖別)하여 – To be holy to Yahweh ; 하나님 앞에 거룩히 구별하여! 

    [레27:14]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집을 성별(聖別)하여 여호와께 드리려하면 제사장이 그 우열간에 값을 정할지니 그 값은 제사장이 정한 대로 될 것이며
    정성이 담긴 성별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합니다. 대충 또는 귀찮아서, 또는 인색하게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정성을 다함이 하늘에서 받아주시는 가장 귀한 헌금이 됩니다. 시간도 물질도 마음도 언어도 시선도 능력도 기능도 모든 것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쓸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 
    십일조도 서원입니다!
    [레27:30] 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가 십일조를 드리지 못해 무너진 야곱은 20년이 지나서야 십일조 서약을 지킨 것으로 보입니다! 창세기 28장- 야곱이 베델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십일조의 서약을 드립니다.
    [창28: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창28: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창28: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그런데 아마도 이 서약은 20여년 동안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 같고 그리고 창세기 34장에서 야곱은 집안이 살인자가 되는 무서운 절망을 경험합니다. 외동 딸 디나 사건으로 그리고 시므온과 레위의 살륙사건으로 살인자 가문으로 전락했습니다. 사람을 죽인 집안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절망하고 뉘우치며 하나님과 맺은 서약의 그 장소, 벧엘로 다시 올라갑니다.
    [창35: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아마 이 때야 정신을 차린 야곱은 십일조를 드린 것으로 추측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림이 기쁨이 되고 드림이 축복으로 응답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복을 받을 만큼만 복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받으실만한 예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주님 보시기에 예물을 받으실만하거든 받으시고 복을 주실만하시거든 주십시오.
    평생에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분명한 결단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헤렘(חֵ֗רֶם)법규 – 온전히 바침

    [레27:28]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레27:29] 온전히 바쳐진 (헤렘된)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성경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인 헤렘 규정입니다.
    온전히 바친! 이라는 뜻입니다. 해석하기에 참 어려운 헤렘법칙을 만납니다! 헤렘에는 극단적인 두가지 뜻이 동시에 있어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헤렘(חֵ֗רֶם)-
    온전히 바침; Devotion헌신, Dedication헌신 
    <-> Destruction 진멸, Curse 저주

    한 단어에 극과 극의 반대 뜻과 반대적용이 있어 혼란이 옵니다!

    ☛ 헤렘원칙! 
    여호와께 바쳐진 것은 (내 것이었다해도) 내 마음대로 바꾸었다가는 저주를 받는다!

    아간의 탐욕사건을 기록한 여호수아 7장은 아간이 [수7:21]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에 팔려 숨겼다가 죽은 사건을 기록합니다.
    여호수아 7장에는 헤렘(온전히 바친 것)이라는 단어가 여러번 나타납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5장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말을 하다 둘 다 죽고마는 무서운 사건도 있었습니다. 자기 재산을 숨기고 거짓말함으로서 하나님을 속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레위기 마지막장 27:29절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나요? 
    [레27:29] 온전히 바쳐진 (헤렘)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합니다!
    1) 죄악된 문화와 죄에 물들어 가능성이 없는 사람, 죄를 전파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 제거하라! 
    특히 가나안 정복이 헤렘법칙에 해당한다. 온정주의 때문에 가나안의 무서운 타락이 영적 에이즈가 되어 이스라엘이 결국 죄악에 전염되었습니다. 죄인들은 명령대로 처분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면 될텐데 타협하고 자기 마음대로하다가 결국 이스라엘은 멸망했습니다. 죄에 대한 단호함입니다.

    2) 너의 인생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죽음의 각오로 헌신하라!
    "반드시 죽일지니라!" 진멸되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는 헤렘의 기회를 얻었다면! 죽을 각오로 헌신하라! 즉 실제로 죽이는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도 레위인을 요제라는 제물로 드리라는 말이 나오지만 실제적으로 칼로 죽이라는 뜻이 아니라 동물로 대치해서 드리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민8:13]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 앞에 세워 여호와께 요제(搖祭 Wave offering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드릴지니라

    위 문장만 보면 제물로 레위인을 죽여서 드려야하지만 그 앞부분을 보아야합니다!
    [민8:11]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레위인을 흔들어 바치는 제물로 여호와 앞에 드릴지니 이는 그들에게 여호와께 봉사하게 하기 위함이라 [민8:12] 레위인으로 수송아지들의 머리에 안수하게 하고 네가 그 하나는 속죄제물로, 하나는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려 레위인을 속죄하고 

    즉 동물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지만 성경은 레위인 자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헤렘에서 죄악된 사람으로 죽여야할 사람이 아닌 경우 그는 온전히 하나님께 그 생을 바쳐야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저주받은 헤렘에서 선택받은 헤렘이 되었다!

    헤렘이라는 말에는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뜻과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동이 되지만 깨달음도 있습니다. 아하! 원래 내가 헤렘된 사람이었구나! 저주받은 사람, 반드시 죽여야하는 사람, 그런데 헤렘된 사람, 예수님을 믿고 그 은혜로 헌신하는 사람의 축복을 받았구나! 
    즉 주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은혜대로 살기 원하는 이들은 주님을 위하여 죽을 각오도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사도행전 20장 24절을 읽어봅니다.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바울은 날마다 죽었습니다. 
    혈기가 죽고 자아가 죽고 교만이 죽고 과시가 죽고 은혜로 부활했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가르침을 2019년을 살아가는 오늘!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나의 신앙적 무게감이 될 것이며 인격적 무게감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죽일지니라! 

    레위기는 마지막까지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그 선언을 피해갑니다. 물론 그 은혜를 이용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기다려달라는 마음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더욱 더 주님을 닮아가기를 소원합니다! 

    레위기를 마치면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가까워졌을까를 생각합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갔는지를 생각합니다. 내 사유는 깊어졌는지를 생각합니다. 
    그 믿음의 길을 함께 가는 동안 주님의 위로와 사랑이 더욱 가득하고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레위기 마지막 장은 서원의 장입니다. 사순절 25일째 반을 넘어갔습니다.
    우리도 서원의 찬송을 드리고 싶습니다. 
    (찬송가 143장)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1) 몸 밖에 드릴 것이 없는가? 몸이라는 말! 

    2) 그렇다면 이 몸을 바칠 서원의 각오는 되어있는가? 


    주님의 은혜로 생명의 기회를 얻은 헤렘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떨리는 찬송 한곡 부르겠습니다. 5절이 두렵습니다.
    부를 자신있나요?
    그래도 은혜를 믿고 불러보고 싶습니다! 

    143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 이준원2019.04.03 21:25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저주받은 헤렘에서 선택받은 헤렘이 되었다!

      헤렘이라는 말에는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뜻과
      [하나님께 바쳐진 사람]이라는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동이 되지만 깨달음도 있습니다.
      아하! 원래 내가 헤렘된 사람이었구나! 저주받은 사람, 반드시 죽여야하는 사람,
      그런데 헤렘된 사람, 예수님을 믿고 그 은혜로 헌신하는 사람의 축복을 받았구나!

      즉 주님의 선택의 은혜를 받고 주님의 은혜대로 살기 원하는 이들은
      주님을 위하여 죽을 각오도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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