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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 결국 자신의 책임이었다!
    첨부파일 5개

    2월 12일(화) 마가복음 14:12-21 / 최후의 만찬



    마가복음판 최후의 만찬부분입니다.

    [막14: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막14: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막14: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막14: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막14: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고난주간 목요일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이 땅에서의 마지막 식사 시간을 가집니다. 이 마지막 장소를 제공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예수님의 마지막 순간에 이름없이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귀를 제공한 사람, 향유를 부은 사람, 무덤을 마련해준 사람,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에 이르기까지 제자들이 해야할 일을 대신 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제자였습니다. 물론 그 이름은 나중 다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여기 다락방도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사실은 마가의 다락방이라기보다는 마가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집-다락방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딱 한번 그 이름이 나타나 있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행 12:12)

    그렇다면 이 집은 지금 마가복음을 쓰고 있는 마가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큰 다락방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한국식 다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2층 방이라고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나중 120명이 들어가서 함께 기도하며 성령충만의 사건이 일어난 곳이니 나름대로는 꽤 큰 방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이 곳의 주인인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는 바나바의 누이였고 그래서 마가는 바나나의 조카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슬프고 무서웠던 최후의 죽음의 길, 그 여정에서 예수님을 도와주었던 마음들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도 예수님을 돕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바로 이곳에서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가집니다.
    이 부분은 현장에 함께 있었던 사도요한이 쓴 요한복음 13-17장까지 너무나도 자세히 나타나 있는데 마가복음에는 그렇게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세족식과 최후의 고별사가 14,15,16,17장에 이어지며 길게 나타납니다. 마가복음은 거기에 비해서는 간략합니다. 마지막 식사, 내일 죽는다는 사실, 그래서 너무 당황스럽고 두려운 밤, 그래서 기억들이 흔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가롯유다가 이날 밤 왜 나갔는지도 이 당시에 몰랐다고 했으니 지금 모두 기억을 제대로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가룟 유다- 배신자



    이 장에서 가장 표적이 되는 사람은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택함을 받아 세리출신 마태를 제치고 재정관계의 일을 보았으니 상당히 신뢰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재정을 담당하니 후원금을 관리하고 어려울때 재정을 조달하는 일도 해야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신뢰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가룟 유다(Iscariot Judas)라는 이름의 가룟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 유다의 지명- 여호수아 15:25에는 그리욧이라는 땅이 나타나는데 헤브론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조그마한 마을의 이름을 따서 유다라는 동명 이인이 너무 많으니 분간하기 위해 붙였다는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중 11명은 북쪽 갈릴리 출신인데 유다만은 남쪽 유대지방 출신이었습니다. 요13:2에 보면 그의 아버지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당시 검을 지니고 매국노들을 암살하고 로마의 독재자들을 암살하는 운동을 하던 정치결사 조직인 이스카리옷파의 출신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나아가 이 가룟유다에 대한 많은 동정적 반론들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차피 십자가를 져야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누군가 악역을 맡았어야했고 그 역할을 맡은 것이 가룟유다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미 유다의 마음 속에는 배반이 있었습니다! 당장 마가복음이 증언합니다.
    [막14: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막14: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제자들은 이것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고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막14: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이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은 가룟유다의 정체를 드러내십니다.

    요한복음은 이 부분을 좀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요13: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요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떡 한조각을 주는 자가 배신자라고 말하고 그것을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주니 성경은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사탄을 유다에게 들어가게 하신 것인가요? 그렇다면 유다는 책임이 없는 것인가요?

    그러나 성경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유다가 스스로 사탄에게 자기 생각을 내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유다는 향유를 부은 사건 때문에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께 꾸중을 듣고 마음이 빗나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그 전부터 그는 예수님을 형식적으로 따라다닌 것이었고 그가 믿었던 것은 자기의 생각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은 유다가 그 조각- 예수님의 몸을 받고 나가니 밤이러라고 기록합니다. 상징적입니다. 밤이라는 말을 쓰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밤이라고 썼습니다. 분명히 의도가 있었습니다!


    [요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마가복음을 따르면 아무 것도 모르는 제자들은 지금 예수님께 묻습니다!

    [막14: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막14: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막14: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나는 아니지요? 메티 에고? Μήτι ἐγώ? Is It I?


    나는 아니지요? 제자들이 근심하며 묻습니다.

    나는 아니지요? 메티 에고? Μήτι ἐγώ? Is It I?

    사실 마태복음은 이 부분에서 마가복음과 조금 다릅니다.

    유다가 와서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을 때 예수님께서 직설적으로 네가 말하였다! "You have said it." 라고 대답하십니다.

    [마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다른 제자들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할지라도 이미 예수님은 알고 있었고 유다도 알고 있었으나 그는 거짓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아니지요?"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 모습을 돌이켜봅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죠?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이 저는 아니죠? 주님을 괴롭힌 사람이 저는 아니겠죠? 앞으로 주님을 떠날 사람이 설마 저는 아니겠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아니겠죠?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합니다. 나는 언젠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날 사람인가요? 혹시 나는 가룟 유다처럼 무늬만 제자, 평생 흉내신앙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겠지요?


    미국 한인교회에 가면 다 교인입니다. 한국에서 무슨 종교를 믿었든지 다 교회에 다니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민 생활을 할수가 없으니 믿음이 있건 없건 일단 다 교회로 모입니다. 그러다보면 사업을 크게 하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우대를 받고 정신없이 직분자가 되어갑니다. 문제는 그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분명치않고 거듭남이 분명치않은데도 사회적 위치 때문에 일단 고위직분자로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분열되는 교회가 외국의 한인교회입니다.

    군대에서도 사령관이 기독교인이면 진급 때문에 모든 장교들이 다 교회당으로 몰려듭니다. 그 기독교인 장교가 계급이 높을수록 빨리 교회직분자가 됩니다. 신앙을 가졌던 말았던 외모를 보고 일단 고위직분직을 줍니다.

    그냥 생활을 위해서 나왔던 것 뿐이지 예수님의 말씀에 거듭나지도 변화되지도 않았고 그냥 종교취미생활 정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가룟유다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만찬장을 떠난 유다는 곧바로 대제사장에게로 가서 예수님을 잡을 병력들을 동원하여 그 사이 겟세마네로 간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나서 예수님께 마지막 키스를 하고 예수님을 팔아넘깁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가룟유다가 이렇게 된 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요?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리시는 역할극을 했을 뿐이라고, 그래서 결국 그는 도구로 쓰였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럴수도 있으나 결국 유다가 아니래도 구원의 역사는 일어났을 것입니다.
    [막14: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어치피 인자 예수님은 기록된 대로 예정된 대로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자기의 믿음을 자기가 지켜가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선언하신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거듭나지 못한 것은 가룟 유다의 책임입니다.

    똑같이 방황하고 고민했던 열혈당원 시몬도, 그리고 고위직에 있었던 세리 마태도, 그리고 의심이 많았던 도마도 자기 자신과 싸우며 결국 거듭나고 변화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그들은 자기의 믿음을 세우고 지켜갔습니다.

    유다는 자기 믿음을 지켜야했습니다. 거듭나야했습니다. 변화는 그에게 주어진 거룩한 책임이었으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나를 생각합니다.

    진정 나는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있을 사람인가를 생각합니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제 믿음을 도우소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버리지 마시고 인도하시옵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19.02.12 12:21


      거듭나지 못한 것은 가룟 유다의 책임입니다.


      똑같이 방황하고 고민했던 열혈당원 시몬도, 그리고 고위직에 있었던 세리 마태도,
      그리고 의심이 많았던 도마도 자기 자신과 싸우며 결국 거듭나고 변화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그들은 자기의 믿음을 세우고 지켜갔습니다.


      유다는 자기 믿음을 지켜야했습니다. 거듭나야했습니다.
      변화는 그에게 주어진 거룩한 책임이었으나 그는 실패했습니다.


      자유의지自由意志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나를 생각합니다.


      진정 나는 예수님과 끝까지 함께 있을 사람인가를 생각합니다!


      주님, 저를 도우소서! 제 믿음을 도우소서!


      끝까지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버리지 마시고 인도하시옵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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