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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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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2월 1일 마가복음 11:1-10 주가 쓰시겠다 하라

    종려주일, 고난주간, 세상에서 가장 길었던 한 주간




     [막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막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하매 [막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막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막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막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막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마가복음 11장부터 무거운 수난의 길을 함께 걷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하며, 그 고난의 뜻을 생각하며! 그 고난주간에 주신 가르침과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함께 걷습니다.

    마가복음 11장, 예수님께서 종려주일,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그리고 이 주간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을 당한 고난주간이 되었습니다. 입성한지 불과 며칠 후에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이미 미리 알고 계시는 예수님, 구원의 거룩한 사명을 지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고난주간은 언제든지 불편합니다. 불편한 진실입니다. 피하고 싶은 진실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있어야 구원이 있습니다. 고난을 알아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나를 알게 되고- 내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되고 은혜를 알게되고 어떻게 살아야할 것을 알게됩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막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막11:2]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막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입성하시기 위해 나귀를 타시고자합니다.

    스가랴서 9:9절에 나온 예언입니다. 왕으로서 입성하시지만 세상의 왕이 아니요 영적인 왕이시기에 백마를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셨습니다.

    [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마태복음도 스가랴서의 예언을 인용합니다.
    [마21:5]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아직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나귀는 온순합니다.

    그런데 나귀도 점점 사람을 태우면서 고집이 생기기도하고 오기가 발동하기도 해서 나귀를 다루기가 어려워집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점점 좋아시는 것이 아니라 고집이 생기고 분노조절이 안되고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미움과 상처를 자랑하기 시작하면 고집센 당나귀가 되고 맙니다.

    순수한 나귀만이 예수님을 태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나귀를 이름모를 사람에게서 빌려왔습니다. 돌려줄 것을 조건으로 빌려왔습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 [막11:3] 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 하고 물으면 "주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마가복음의 이 부분을 NIV성경은 즉시 주님께서 돌려보내주시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The Lord needs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shortly.'"

    일반적으로는 그 주인이 즉시 보내준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주가 쓰시겠다하라는 단순한 명령, 또는 부탁이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아니고는 그 주인에게 달려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알고 있었을까요?알고 있었던 무명의 제자, 또는 신도라고 추측합니다. 알고 있었다할지라도 자기 재산을 내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나귀의 주인은 누구인가?!

    헬라어 원문을 보면 여기에서의 '주主'=주인은 그것- 아우투-의 주인이었습니다. 즉 그 나귀의 주인은 그 나귀를 기르고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 나귀의 주인이 필요하니 가져간다는 뜻입니다.

    Ὁ Κύριος αὐτοῦ χρείαν


    문장을 그대로 번역한다면 '그것의 주인이 그것을 필요로한다'는 뜻입니다.

    즉 나귀의 주인이 그것을 필요로한다입니다!

    `The Lord has need of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immediately.'"(RSV)

    'The Lord needs it and will send it back here shortly.'"(NIV)

    'The Lord has need of it,' and immediately he will send it here." (KJV)
    여기에서 청지기 정신을 기억합니다!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내가 가지고 기르고 유지하고 있는 재능도, 실력도, 미모도, 건강도, 경험도, 재산도, 시간도, 지위도, 학벌도, 가문까지도!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내 것을 내가 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은 것일까요? 그 나귀의 관리자! 주인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참된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그것을 즉시 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음날부터는 걸어서 예루살렘을 출입하셨습니다!


     주가 쓰시겠다 하라!

    '주가 쓰시겠다하라'는 참존 화장품 소망교회 김광석장로님의 간증책의 제목이기도합니다.

    그는 소망교회 담임목사이었던 곽선희 목사님이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100만불의 장학금을 부탁하는 일로 고심할 때 결단하고 10억원이 넘는 돈을 풀러신학교에 기부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에 울려퍼졌던 그 성경구절이 바로 주가 쓰시겠다하라! 였습니다. 그동안 수먾은 사업의 부채로 시달리던 김장로님은 그후 오히려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주가 쓰시겠다고 하실 때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사라지기 원합니다. 주님의 손에 쥐어진 몽당연필이라도 되어서 아름다운 그림을 마지막까지 그려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נָּ֑א ( 나=지금 now)   호쉬아나= 호산나  הוֹשִׁ֘יעָ֥ה ( 호쉬아 save)     


    [시편118:25] 여호와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호쉬아 나!)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호산나는 구약성경 시편 118편 25절의 두단어를 연결시킨 기도요 외침입니다!

    여호와여 호쉬아나!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 시편 118편 25절에 나온 그 고백이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깊은 호소와 탄식과 갈망을 담은 구호가 되었습니다! 대한독립 만세처럼 백성들의 구호가 되었습니다.


    호산나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원합니다!

    경제적 문제로부터

    인관관계 갈등으로 부터

    마음과 감정의 지옥으로부터

    오 주님 호산나!

    지금! 제발 지금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 호산나의 간절한 외침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응답되었습니다!

    그 절규에 응답하실 주님의 사랑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의 것을 주님께서 사용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호산나를 외치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아멘!


    • 이준원2019.02.01 11:27



      "주깨서 쓰시겠다 하라!"
      이 말씀을 독특하게 적용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즉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있는 분께 갑자기 이 구절을 읽어드리고 싶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쓰시기 원합니다.
      그렇게 살겠사오니 풀어주시옵소서!
      그렇게 사용되기를 원하오니 이 병마로부터 풀어주시옵소서!
      그렇게 치유된 간증고백입니다!

      감동의 간증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시기 원합니다!
      그전에 풀어주시옵소서!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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