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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 팔복묵상 八福黙想> 8) 심애온의 긍마화의 !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의 복
    첨부파일 4개


     

    8번째 복! 마지막 복!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의 복 마태 5:10-12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의 8복의 마지막 복입니다. 그동안의 복을 한번 복습해볼까요?

    심애온의 긍마화의!

    심애온의 긍마화의!

    심애온의 긍마화의!

    ^^ 무슨 뜻인지 이해하셨어요?


    이미 우리는 8복 중 4번째 복- 의(義)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의롭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8번째 복도 또다시 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8번째 마지막 의(義)는 박해에 초점을 맞추고 그 박해를 견디는 자에게 주시는 천국의 약속, 위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주시는 축복은 첫 축복-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축복과 같습니다.


    ▶ 4번째 복-> [마5:6]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8번째 마지막 복 ->[마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가끔 산상수훈의 8복을 9복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11절에 복이라는 말이 또다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11절과 12절도 같은 맥락이라서 8복으로 요약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즉 8번째 복은 의를 위해 살다가 박해를 받는 이들이 받을 영원한 축복과 위로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미 무서운 박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부터 무서운 박해를 받으셨고 또 믿는 이들이 받을 박해에 대해 경고하신 바가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시대에도 무서운 박해가 이슬람권 등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7복에서 화평을 묵상했습니다만 8복에서는 박해를 묵상합니다. 화평하게 살고싶지만 진리에 대한 무서운 도전이 오게 되면 우리도 결단을 내려 목숨을 걸어야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너무 쉽게 믿고 너무 쉽게 믿음을 버리는 이 시대, 박해를 받을만한 믿음이 오히려 희귀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의(義)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특히 정말 내가 목숨을 걸어지켜야할 의(義)는 무엇입니까? 여기에서의 의(義)는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절과 11절을 연결해서 읽으면 의(義)는 곧 예수님을 믿는 일임을 알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내 힘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 5:10] 의(義)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10절과 11절의 위하여인하여는 같은 헬라어 ἕνεκεν 에네켄 For을 씁니다. 즉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다가 박해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꿔말하면 예수님을 바로 믿는 것이 곧 의로워지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즉 8복에서 의롭게 살다가 박해를 받는다는 것의 의(義)는 세상의 윤리,도덕적인 차원을 넘어선 의를 뜻합니다. 세상의 도덕적인 의(義)란, 상대방이 볼 때 자기 혼자 의(義)라고 착각하는 불의(不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세상 도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더 거룩한 의를 위해 살기 위해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박해를 받아도 목숨을 걸어 지켜야할 의(義)는 바로 예수님을 바로 믿는 일입니다!
    의(義)라는 한문을 이렇게 푸는 분들도 있습니다.
    의 (義 ) = 어린 양 (羊 ) 아래에 + 나 아 (我 )가 겸손히 들어가 순종하는 것


    그런데 우리의 영원한 고민은 목숨을 걸어서 예수님을 바로 믿음으로 지켜야할 의(義)가 무엇인지 때로 혼동되는 것에 있습니다. 모든 교리에 가변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창기에 박해를 가장 많이 받은 것이 바로 제사문제 때문이었습니다.


    ▶ 카톨릭의 경우 한국포교 초기에 처참하게 박해받았던 것은 바로 이 제사거부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카톨릭에서 제사를 허용하기 때문에 카톨릭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양화진의 모든 순교지는 그래서 모순의 역사입니다. 카톨릭은 지금  음식을 진설하고 제사지내고 절하는 것을 허용하는 180도의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1939년의 교황 비오 12세(Pius PP. XII 1876~1958 재위 1939~1958)의 선언에 근거한 것입니다. 동양 아시아에서의 너무도 심한 박해와 문화갈등 속에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으로 취임하던 해 ‘중국 의례에 관한 훈령'을 통해 "이들 나라에서의 제사 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관용적인 조치를 내렸습니다. 1958년 한국 주교단은 ‘한국교회 공동 지도서'에서 죽은 이의 사진이나 이름만 적힌 위패 앞에서 절을 하고 향을 피우고 음식을 진설하는 행위를 허용하였습니다.

    사실 제사에 대한 기독교인의 고민도 있습니다.

    설에도 절하는데 죽은 이들에게 너무 슬퍼서 절하면 안됩니까? 묻기도 합니다.


    오래 전 같이 믿지 않는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조문을 간 어느 목사님께서 장례식장에서 다른 모든 분들이 조문을 하는데 엎드려 절한 후 상주들과도 맞절을 합니다. 그래서 분위가 상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데 이 친구목사님이 영정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절을 하려는가하고 약간 놀랐는데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서 소개합니다! ^^


    이런 예화를 말하는 이유는 우리가 절대 교리라고 믿는 것을 따르는 것이 곧 주님께서 원하시는 절대 의(義)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실 이 시대에 이 무서운 박해는 사라졌습니다. 교리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중요한 의(義)는 변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의로운 것이 아니기에 믿음의 의(義)로 삽니다!


    내가 과연 의롭게 살 수 있습니까? 내가 의롭게 사는 것은 내가 연약하기에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의지하며 사는 것, 그리고 그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 말씀대로 산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있다면 내 의義는 진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한가지 박해를 받는다고 생각할 때 좀 더 점검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의가 세상사람보다 부족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진정 세상 사람보다 뛰어난 의를 실천하며 박해를 받을 때 그 박해는 소중한 상급이 될 것입니다.
    박해가 없기는 하지만 박해를 과장해서도 안됩니다.


    자신의 문제가 있어도 박해로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어떤 사람이 남의 집 황소를 훔치다가 두드려맞고 누웠습니다. 거뎌 줄이 하나 있길래 끌고 왔더니 황소가 한 마리 따라오더군요, 목사님께서 위문을 가니 말합니다. 주님도 고난을 받으셨잖아요^^ 그래서 종종 세상이 우리를 향해하는 말이 있습니다. "너나 잘하세요"


    [벧전 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
    [에스겔 7:9] 내가 너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 하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희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때리는 이임을 네가 알리라

     

    그러나 정말 진실하게 예수님을 믿으며 살다가 또 의롭게 살다가 받는 박해라면 우리에게 영원한 위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이 땅에서 의롭게 살려다가 힘들어하는 영혼의 순례자에게 주시는 영원한 주님의 위로입니다!
    의(義)가 무엇인가는 정말 깊은 고민이 아닐수 없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그것이 내게 해롭더라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아닌지 생각해보면 분별이 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제자의 삶을 사는 자가 예수님 때문에 아무런 박해도 받지 않고, 손해도 보지 않고, 어려움도 없고, 오로지 만사형통하고, 신나고, 잘나고, 다 잘되기만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제대로 믿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받는 박해, 손해, 아픔 등이 없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게으름의 증거요 타협의 현실일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딤후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사도바울은 자신의 고난의 흔적을 당당히 고백한 바 있습니다.


    흔적(痕迹) 성흔(聖痕) 스티그마 Stigma 스티그마타(스티그마의 복수형) στίγματα

    [갈6:17]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예수님의 흔적이 있으십니까?

    박해받으시고 손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힘든 가운데에서도 드리시고 행복하셨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나날 동안 힘들어도 헌신하시면서 느끼신 보람이 있으셨습니까?

    혹시,

    나는 오히려 신앙을 빌미로 내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은 아닌지요!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은 아닌지요!

    그것이 두렵습니다!

    박해는 안받아도, 못받아도, 박해받을만한 신앙조차 못되어도!

    적어도 신앙이, 교회가 내 사익의 추구장소가 아니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의 참된 일꾼은 주님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오히려 기뻐하고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는 사람입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골 1:25]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면서 당하는 모든 어려움이 있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영혼 깊은 위로가 늘 영원히 충만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샬롬입니다!


    <  찬송  주 예수 다스리시는>





    • 이준원2017.05.11 16:26


      8복 묵상을 이번 수요일로 마칩니다.
      다음 주 부터는
      교우님들 중에서 2-3주간
      이 8복에 대한 묵상을 발표해주실 것입니다.

      평생 8복을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기억하면 선명하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굳이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체화된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봅니다.^^

      심애온의 긍마화의 ^^

      마지막 의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박해라고 받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고 있는지 생각하며
      박해는 안받아도, 못받아도, 박해받을만한 신앙조차 못되어도!

      내 신앙의 진실성을 돌이켜봅니다!

      주님의 축복이
      8복의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고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
      살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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