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이젠 긴 옷을 벗어버리고
    첨부파일 3개




    예수님은 지금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어야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그 생각과 사고방식의 허점을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시편에서 분명 친히 메시야를 주라고 불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눅20:41]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눅20:42]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눅20:43] 내가 네 원수를 네 발의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눅20:44]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


    물론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직접적인 혈연은 없다 해도 가문으로 볼 때 육신의 아버지 요셉을 따르기 때문에 다윗의 후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며 강조하는데는 그들의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구원자로 오실 메시야는 다윗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로마권력에 대항하여 이길만한 권세를 지닐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다윗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 당시 막강했던 국력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성경이 여러번 수없이 예고한 것은 오실 메시야는 평화를 주는 왕이며 고난받는 종이었지 다윗과 같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로마에 대항하는 그런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지금 이중적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메시야는 이래야한다는 자기 사고의 틀을 세우고 그것에 지금 메시야관을 맞추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혈통집착과 배타의식, 선민의식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성경이 이미 증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마음으로 만든 메시야 상을 따라 로마를 이길만한 막강한 권력을 기대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깨뜨리는 도전을 주신 것입니다. 곧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

    그 십자가의 참 뜻, 구원의 은혜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메시야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기대하는 그 권세와 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성경을 알면서도 사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것이 모든 신앙인들의 문제일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편협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방식의 문제, 그리고 오늘 내 사고의 틀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까지 내가 내려온 모든 판단의 근거는 성경적인 것입니까 아니면 인간적인 것입니까? 실제로는 성경적인 것보다는 인간적인 이해관계의 판단이 내 사고방식의 바탕이 되어있음을 발견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기도합니다.

    주님, 성경을 따라 내 사고와 인식구조와 판단근거도 재편되고 정리 정돈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서기관 등 종교권력자들의 종교권력 과시형태를 지적하십니다.


    [눅20:45] 모든 백성이 들을 때에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눅20:46]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눅20:47]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왜 긴 옷을 입고 다니기를 좋아했을까요?

    그리고 나도 교회생활의 긴 옷을 입고 남들의 시선을 지금 의식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높은 자리, 윗 자리...

    외식外飾으로 길게 기도하는 것,

    하나님께 드리는 것 같지만 결국은 사람들이 들으라고 하는 기도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

    우리는 세월이 갈수록 더욱 겸손해질 수는 없는 것인가요.

    교회 안에서도 우월의식이 있습니다. 명예욕, 과시욕은 사회보다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디모데전서의 경고가 있습니다.

    경건을, 당신의 믿음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지 마십니다.

    당신의 믿음을 이용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교회의 직위를 이용해 실리를 챙기려한다면 당신은 부패한 것입니다!

    [딤전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딤전6: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만일 진리를 잃어버렸다면 다시 새로워져야할 것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강한 경고가 바로 부패한 신앙에서 거룩한 신앙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구역 전체의 호소였고 긴긴 세월의 문제였고 인류의 문제이고 역사의 문제이며 오늘날 교회의 문제이고 바로 내 문제이기도 합니다!

    올해 종교개혁 500년!!

    내면의 혁명이 필요함을 다시 새깁니다,

    종교권력에 심리적으로 집착하지 않아야할 것을 생각합니다.

    신앙을 이용한 실리욕심으로 해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구도자로서 순례자로서

    서기관의 긴 옷을 벗어버리고

    순수한 영혼으로 서는 참된 경건의 훈련!


    다시 마음에 새기는 3월의 마지막날입니다!




    • 이준원2017.03.31 12:08


      3월의 마지막 날, 아침에는 봄비가 촉촉히 내렸습니다!
      3월 한달,
      믿음으로 살아오신 섬김을 축복하고 치하합니다.

      부활의 달 4월!
      주님의 크신 축복과 은혜가
      사랑하는 우암의
      온 가족들께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샬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