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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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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구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여년 침묵기간 사이에 나타난, 200여년 정도의 전승을 가진 종교 권력층이었습니다. 

    내세를 믿지 않는 이들이 과연 종교인일까요? 그런데 그들은 모세 오경을 신뢰하지만 신앙지침보다는 생활 지침으로 삼고 '신앙'이 아닌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로마권력과 결탁한 종교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영생을 믿는 바리새인들과 전혀 달랐고 사상적 차이 때문에 서로 적대시하는 관계였습니다. 다만 예수님을 견제하는데만은 신기하게 힘을 모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시험하여 묻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는 부활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들이 물었던 것은 계대결혼으로 7형제와 결혼한 여자가 만일 부활이 있다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조금 비아냥이 섞인 질문이었습니다. 


    [눅20: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 중 어떤 이들이 와서 [눅20:28]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만일 어떤 사람의 형이 아내를 두고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눅20:29] 그런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자식이 없이 죽고 [눅20:30] 그 둘째와 셋째가 그를 취하고 [눅20:31] 일곱이 다 그와 같이 자식이 없이 죽고 [눅20:32] 그 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눅20:33] 일곱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그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계대결혼의 풍습은 유대의 풍습입니다. (신명기 25:5-10)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대를 이어가는 풍속입니다. 어찌보면 좀 이상하고 혹 음란한 풍속인가 여길수 있지만 인권보호의 개념이 있었습니다. 일단 대가 끊긴 형의 대를 이어주는 것이요 또 부양해줄 남편이 없는 여인을 보호해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의무였습니다. 혹 거기에서 자녀가 생겨도 형의 자녀가 되는 것이요 아내가 된 형수에게도 재산을 나누어주어야 했기에 동생들이 그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신발을 벗기고 모욕을 주는 등 일종의 인권법이었다고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7형제가 모두 자녀가 없이 일찍 죽었다면 그 아내는 천국에서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눅20:34]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눅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눅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천국에서의 삶은 어떤 것인지 우리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는 새로운 질서와 관계와 몸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래서 이 땅에서의 개념으로 천국을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늘 궁금한 천국, 누가 가본 사람이 없기에 갔다가 도로 와서 말해주는 사람이 없기에 궁금한 천국입니다. 물론 천국을 보았다는 간증은 많지만 늘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도 확언하신 바와 같이 천국은 분명히 있고 영원한 삶이 이 땅의 삶에 이어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라는 자아, 나 의식 I-consciousness 은 죽음이라는 과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이어짐을 가르치십니다.  

    사실 이 부분은 경험한 분들이 많지 않기에 추상언어, 비유언어, 그림언어로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 애벌레에게 나중 네가 고치 속에 들어가 죽으면 나비가 된다고 가르쳐주어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날개가 무엇인지, 애벌레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는 고치 속에 들어가서 죽는 것이 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죽음, 가장 큰 선물로 번역된 책에서 엄마의 뱃속에 있는 남매 쌍동이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오빠는 우리의 생은 10개월 뿐이고 그 뒤는 끝이라고 말합니다. 여동생은 10개월 후면 새로운 세상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오빠는 그런 것은 상상일 뿐이라고 일축합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의식, 나 자의식은 그것을 둘러 싼 육신이 유실되고 영원합니다. 형태는 달라질 것입니다. 영화체을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물이 수증기가 되고 얼음이 되고 다시 또 형태를 변화시키지만 그러나 본질은 같은 것과 같습니다. 


    죽음이라는 것도 과정일 뿐입니다.

    믿는 자는 영원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이 낡은 육신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것이 좀 슬프고 아플 뿐입니다. 정든 모든 것과의 이별은 슬픈 것이기 때문이지만 그러나 벗어야 새로운 옷을 입습니다. 

    혈血과 육肉, 우리 몸의 피를 가진 이 몸덩이 대로는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갈 수 없기에 이 혈과 육을 벗는 과정이 죽음입니다.

    [고전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나라에 누구나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 세상에서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만 그런 은혜를 얻게 됩니다.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


    [눅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이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합당히 여김을 받지 못한 자들은 결국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눅20:36]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예수님은 나아가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고 강조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은 곧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눅20:3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눅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눅20:39]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말씀 잘 하셨나이다 하니 [눅20:40]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육신으로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그들의 이름을 말하면서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지금 살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눅20:38]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우리도 그렇게 영원히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여기에서 죽어 있지 말고 살아있어야합니다.

    믿음도 살아있어야하고 사랑도 살아있어야하고 희망도 꿈도 열정도 주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도 살아있어야합니다.

    삶이 혹여라도 죽음이 두려워 발버둥 친 흔적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삶은 소망과 사랑이 이끌어간 흔적이 되어야합니다! 

    합당하게 살아야합니다.

    합당하게 산 사람만이 영원한 새 생명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천국은 

    오늘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내 삶이 그 합당함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도 믿음도 웃음도 진실도 소망도 살아 움직이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 이준원2017.03.30 14:35


      그 영원한 나라가
      바로 우리를 위하여
      예비되어 있음이
      큰 위로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감사하며 살 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웃으며 살겠습니다!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