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그리고 내 것!
    첨부파일 4개


     

     

    누가복음 본문은 지금 예수님의 마지막 한주간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최후의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가르침에 당황한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계교를 꾸밉니다. 말을 책잡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아주 예민한 문제를 묻습니다. 즉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만일 옳다고하면 로마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으로 실망할 것입니다. 만일 옳지 않다고 하면 로마법에 의해 즉시 제재를 받게될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의인인 체 하며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눅20: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눅20: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눅20: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눅20: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그들에게 돌려주십니다.

    [눅20: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눅20: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눅20: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눅20: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본 뜻은 무엇일까요?

    일단 그 질문 자체를 그들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데나리온에 있는 형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묻고 가이사의 것이라고 하니 가이사의 것이라고 믿으면! 그것을 가이사에게 바치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으면! 하나님께 바치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한 대답입니다. 단순히 그들의 간계를 벗어나기 위한 재치있는 대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질문을 되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이 데나리온이, 이 국가가, 세금이라는 것이, 나라는 존재가,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이사에게,

    그러나 가이사도, 로마국가도,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가진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고 믿으면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뜻을 세상 법보다 먼저 따르는 것! 이런 무언의 가르침을 주고계신다고 하겠습니다.


    이 예수님의 대답을 그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누가복음 23장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했다고 고발합니다. 금한 적은 없기에 거짓 고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것을 예수님의 진심이라고 보았을 수도 있습니다.

    [눅23:2]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사실 예수님의 현실 인식은 유대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같은 환경 속에서 사셨기 때문에 얼마나 로마의 탄압이 심한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로마에 의해 임명된 분봉왕 헤롯을 여우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눅13:32]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이방인 집권자들- 로마정권의 횡포가 얼마나 심한지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믿는 이들을 핍박할지도 예고하셨습니다.

    [눅21:12]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나아가 이방인- 로마 집권자들이 얼마나 권력을 남용하는지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자기들을 스스로 은인이라고까지 칭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라는 뜻이 예수님의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눅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눅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눅22:27]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즉 예수님은 로마의 탄압이 얼마나 심한지 정권과 결탁한 세력들이 횡포가 얼마나 심한지 이미 알고 계시고 그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도! 알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세 등에 대해서는 그것이 굳이 낼 필요가 없음을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세금을 성실히 내시는 모습도 보여주십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의, 신앙인으로서의 성실한 의무와 책무도 인정하셨다는 뜻입니다.

    [마17: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마17: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정치권력에 대한 예수님의 현실 인식은, 일반 백성들과 같았습니다. 다르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대 속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로마는 강권적인 지배 집권층이었습니다. 헤롯왕 등 로마의 앞잡이를 하는 사람들은 교활한 여우같았습니다. 울분과 슬픔은 다 똑같았습니다. 방법이 달랐을 뿐이고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시야로 장기적인 비전과 변화를 계획하느냐의 차이점이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는 어떤 관계에 있는 것입니까?

    흔히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한다고 말하는데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말은 사실은 맞지 않습니다.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도 이미 정치라는 현실 속에서 평생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는 정치 권력자들의 활동이나 그들이 누리는 관직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든 형태의 생활 질서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회생활은 한다는 것은 이미 정치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의 영향을 받고 경제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이지 않아도 현실문제에 대해 발언하지 않을 수 없고 의견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발언과 행동의 방향에는 깊은 숙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 의도는 "너희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집권세력이 바뀌어도 이 시대의 문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하는 뜻으로 보아야합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계속 로마제국에 대한 저항을 하고 있지만 이미 이스라엘은 오래 전부터 수많은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바벨론이 멸망하면 벗어날까 했지만 바사-페르샤가 다시 이스라엘을 지배했고 페르샤가 멸망하면 벗어날까 했지만 다시 그리이스가 이스라엘을 지배했고 잠시 마카비 시대에 독립을 얻는듯 했으나 또다시 로마가 지배했습니다.

    그러니 결국은 외부 강대세력의 문제도 있었지만 이스라엘 자신의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지적한 것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지 않으면!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어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살아계심을 믿는 택하신 민족이라면 다른 나라와 구별되어 살아야함을 깨달아야했습니다. 또한 같은 민족끼리 뭉치지 않으면 망할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도 얻어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로마가 멸망해도 여전히 이스라엘은 그 누군가의 노예로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불의함을 바로 잡는 것 또한 중요하며 그것을 이끌어가는 정치 권력을 바로잡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 시대와 역사 문제의 해결은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속성이 바뀌는 것, 자기 이익만을 취하기 위한 세상의 모든 전쟁의 속성을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변화하는 것이 진정한 세상 변화의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해봅니다.  


    정치를 생각합니다.

    현실을 생각합니다.

    저는 종종 고민합니다. 이 땅의 정치가 늘 여당과 야당으로, 진영논리로 구분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입니다. 노론, 소론, 남인, 동인의 붕당정치의 전통인지 늘 파당에 휩쓸려 논리가 사라지고 편당만 남은 정치사회 구조에 대한 의문입니다. 지나친 정치과열도 문제라고 여깁니다. 

    대통령이 바뀌면 나라가 바뀝니까? 그렇게 대통령직에 대해 온 국민이 집착하는 자체가 아직 후진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저는 많습니다. 대통령은 이제 단기간의 기능직일 뿐입니다. 갈수록 그렇게 될 것입니다. 시스템이 이끌어가야합니다. 여기에 국민들의 정치의식도 문제입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음을 이제는 알 정도가 되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종종 생각합니다. 어떤 사안이 이슈가 될 때 야당과 여당을 떠나서- 보수와 진보 등 경향성은 없을 수가 없지만  나는 누구편이니까하는 무조건적 찬성과 반대가 아닌 의견제시의 다양성이 자유롭게 보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당에서도 반대, 또는 반대라는 말이 거슬리면 같은 편의 눈치를 보지 않고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풍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당 쪽에서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눈치보지 않고 찬성, 또는 찬성이라는 말이 거슬리면 다양하게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풍토가 진실로 아쉽습니다.


    "이 나라에는 찬성하는 애국자도 있고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다!"

    오바마의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정도의 인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에는 어떤 사안에 대해 찬성하는 애국자도 있고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을 수 있다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판단의 배경에 애국적인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

    편가름의 비극 속에서 어느 줄을 서야 하느냐를 눈치보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너는 내 편이냐 아니냐의 찬성 반대로 편을 가르고 손들어 거수하여 서로 적을 만들어가는 시대의 불편함은 사라지고 창조적, 건설적 의견을 제시하고 또 그 의견이 합리적이면 상대방이 야당이건 여당이건 받아들이고 함께 의논하는 풍토!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제목입니다.


    아직 이 시대를 생각하면 무거운 마음이 많습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시기를!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이 뜨거운 기도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먼저 정의롭게 살고 모든 갈등의 조정과 완충자의 역할을 감당해서 평화를 만드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 이준원2017.03.29 11:34


      주님께서
      지금 여러 혼란기에 있는
      이 나라를 평강으로 이끄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이 나라를 긍휼히 여기셔서
      다시 힘을 회복하고
      정치가 안정되고 경제가 부흥하며
      복음화의 사랑의 빛이 널리 전파되게 하소서!!

      아멘!

    새글 1 / 824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104 나오미의 해피 엔딩 [1
    2017.05.09
    103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1
    2017.05.07
    102 우리 기업을 무를 자 [1
    2017.05.04
    101 노총각 보아스 과부 룻의 만남 [1
    2017.05.04
    100 화평케하는 자 εἰρηνοποιοί (에이레노포.. [1
    2017.05.03
    99 이삭을 줍는 룻 [1
    2017.05.03
    98 룻기-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알다! [1
    2017.05.02
    97 비상(飛上)하라 우암교회! [1
    2017.05.01
    96 경제정의! 경제민주화! [1
    2017.04.28
    95 하나님께서 대화하고 싶어 하신다!! [1
    2017.04.27
    94 시간의 한계속 에 있다! 앗수르도 바벨론도! [1
    2017.04.26
    93 그날이 오늘이 되기를! [1
    2017.04.25
    92 성령이 스승되셔서! [1
    2017.04.23
    91 예언자 미가의 눈물 [1
    2017.04.21
    90 본 회퍼 "나는 누구인가" 옥중 .. [1
    2017.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