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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안한 너의 사고방식을 꾸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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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므나의 비유 Parable of 10 minas


    열 므나의 비유입니다.

    열 므나의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많이 같으면서도 조금 다른 것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주시기 전 예고를 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게 될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제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알아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중에라도 깨닫도록 이 말씀을 전하십니다.


    [눅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눅19: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눅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눅19:14]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즉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면 반대하는 수많은 이들의 모함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것과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과 승천하실 것, 그리고 다시 재림하실 것을 지금 예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간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세월이 지난 후 왕권을 가지고 세상을 심판하시러 다시 올 것에 대한 예고이십니다.

    그리고 이 열 므나 비유의 결론에도 다시 그 왕위를 받은 귀인이 와서 분명히 심판할 것을 다시 한번 선언하십니다

    [눅19:27]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눅19: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앞서서 가시더라


    오늘 비유는 바로 그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하느냐에 대한 가르침이십니다.

    그 기간 동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기간에 우리에게 주어진 므나를 어떻게 다뤄야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먼저 이 므나의 비유가 달란트 비유와 다른 것은 므나의 비유에서는 10사람에게 차등없이 골고루 한 므나씩 나누어준 것입니다.

    달란트는 '재능대로' 구분해서 지급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달란트 비유를 오해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누구는 날 때부터 많은 달란트를 부여해주셨고 나는 달란트도 없고 환경도 금수저도 아닌 흙수저라는 운명론적 불만이 생겨날 수 있는, 오해받기 쉬운 달란트 비유와 달리 므나의 비유는 공평합니다.

    사실은 다섯 달란트까지는 아니래도 한 달란트도 금 34kg이니 20억이 넘는 액수입니다. 그 정도 받아서 그 정도의 재능을 하나님을 위하여 쓰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많이 받았다고 시기할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20억원 정도의 달란트라도 제대로 쓰고 있는지 확인할 일입니다.

    어쨌든 왕위를 얻으러 간 주인은 열 므나를 열 사람에게, 즉 한 므나씩 골고루 나누어주고 다시 돌아와 회계합니다.

    므나는 달란트의 1/60정도 입니다. 금이 아니라 은입니다. ( 성경은 금보다 은을 늘 먼저 말합니다. '은과 금 나없어도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니'-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한 므나가 100데나리온 정도라고 하니 작은 돈도 아닙니다.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면 넉넉히 10만원이라고 가정해볼 때 천만원 가까운 돈입니다. 향유가 300데나리온인데 제자들이 비싼 것이라고 놀란 것을 볼 때 한 므나-100데나리온 천만원도 그리 작은 돈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달란트와 므나를 어떻게 비유할까요?


    달란트가 재능이라면 므나는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된 사명입니다.


    재능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명은 똑 같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똑같은 것과 같습니다. 므나는 시간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시간과 세월이 똑같이 부여된 것처럼 사명도 똑같이 부여되었습니다.

    누가 더 많은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고 누가 더 많은 세월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시간은 똑같이 분배됩니다. 사명도 누구에게나 환경을 따라 똑같이 분배되었습니다.

    달란트가 재능이라면 므나는 사명입니다!

    그리고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내게 주신 사명을 이룩하고 많이 남겨야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므나 비유가 달란트 비유와 다른 특징일 것입니다.




    므나 비유에서 달란트 비유처럼 한 사람은 열므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눅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눅19:16]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눅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인상적인 것은 이 종이 이 므나를 '자기 것'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주인의 므나'( 개역성경), '당신의 므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재능도 물질도 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히 주인의 것입니다. 재능도 물질도 시간도 생명도 내 인생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잠시 맡겨준 것입니다.

    주인이 칭찬합니다.

    열므나 남긴 것을 주인이 가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종에게 둘려줄 뿐만 아니라 열고을의 권세까지 더 붙여주었습니다. 종이 주인의 뜻대로 보람있는 생애를 산 것 자체가 주인에게 기쁨이었습니다. 그리고 종도 보람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열고을 권세를 주십니다. 그는 주인이 같이 일할 사람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두번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역시 다섯고을의 권세를 상급으로 받습니다. 주인의 권세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눅19:18]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눅19:19]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조금 깊이 해석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남겼습니다 vs 만들어냈습니다

    즉 10므나 남긴 종과 5므나 남긴 종의 태도에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열므나를 남긴 종은 '남겼다'고 표현하는데 다섯므나를 남긴 종은 '만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즉 열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절대 겸손이 엿보이고 다섯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자기과시- 내가 만들었다는 공로의식이 엿보인다는 분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인도 두번째 종에게는 '잘하였다 착한 종'이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두번째 종에게도 똑같이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는데 이 열므나 비유의 두번째 종에게는 이 부분은 생략되어있습니다. 첫번째 종에게 준 열고을 '권세를'준다는 말도 두번째 종에게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해석이 인상적이라서 원문을 찾아보니 열므나를 받은 종이 말한 '남겼다'는 표현과 다섯므나를 만들어낸 종이 말하는 '만들었다'고하는 표현은 서로 달랐습니다. 영어 성경은 오히려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개역-개정 성경이 이 부분을 정확하게 서로 분리해서 표현한 것이 맞다고 봅니다.

    열 므나를 남긴 종; προσηργάσατο- 남겼나이다

    다섯 므나를 남긴 종; ἐποίησεν- 만들었나이다

    물론 큰 차이는 없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들어낸 것도 큰 일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같지는 않게 표현한 누가복음의 섬세한 기록을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도 내가 만들었다는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종도 대단한 일을 했기에 상급을 받았습니다.


    세번째 종은 핑계가 많습니다.

    그런데 세번째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냥 '또 한사람'이 왔다고 되어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머지 7명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눅19: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눅19: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눅19: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눅19:23]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눅19:24]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눅19:25]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눅19:26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 종은 달란트 비유의 세번째 종처럼 참 말도 많습니다. 탈도 많습니다.

    자기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사고방식을 이야기하고 판단방식을 이야기합니다.

    자기 주장과 논리를 펼쳐냅니다.

    그런데 그 많은 주장의 내용의 결론은 '안했다!'는 얘기였습니다!

    '아무 것도 안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인은 분노합니다.

    그리고 그를 심판합니다.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눅19: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지금 주인은- 예수님은 이 종의 사고방식을 심판하시고 꾸짖으십니다.

    그의 판단방식을 꾸짖으십니다. 종의 인생관을 꾸짖으십니다.

    네 말로, 네 주장으로, 네 사고방식으로 너를 심판한다!

    똑같은 세월이 주어지고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리고 주인이 똑같이 믿고 똑같은 사명을 주었는데 무슨 사고방식인지 무슨 판단인지 무슨 생각과 마음이었는지 그는 '안했습니다!'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나머지 7명 중에는 어쩌면 므나를 남겨보려다가 파산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곤경에 처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핑계한 것처럼 뭔가 하다가 원금까지 잃어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나머지 일곱명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달란트 비유와 다른 것은 이 아무 것도 안한 종에게도 심판을 내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악하고 게으른 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깁니다.

    [마25: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그런데 한므나를 남기지 않은 종은 다시 돌려주기만 했지 밖으로 쫓겨났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주님의 긍휼일 수도 있지만 더 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는 무가치한 인생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더욱 슬픈 일입니다.


    정말 주인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므나를 귀하게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생을 소중하게, 믿음의 생애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생의 과정이었습니다. 삶의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노력했느냐를 지금 주인은 보고 싶은 것입니다. 얼마나 애를 썼느냐를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뜻밖에,

    교회생활 속에서 '할 수 있었는데', 화가 나서, 기분이 나빠서, 할 맘이 안생겨서, 그 사람 보기 싫어서 일부러 안했습니다가 의외로 많습니다. 병든 생각이요 가치관입니다. 주님의 일은 주신 사명은, 그 사람 보기 싫고 아니꼬워서 일부러 안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은 일부러 안할 일이 아닙니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기를 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므나를 품에 숨기고 나누지 않는 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이 한 일이었습니다.

    므나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만 했지 나누지 않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만 많은 종과 같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이라는 므나를 주셨고 그 복음이라는 므나를 많이 남기라는사명을 주셨습니다. 환경을 핑계할 것이 아닙니다. 할 수 있었는데 ~~때문에 일부러 안했다는 어리석은 소리를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안하겠다는 쪽으로만 생각하는 생각의 낭비를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죄입니다.

    생각을 낭비하는 것이 죄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므나를 생각합니다.

    세월과 생애 속에 똑같이 부여된 시간들,

    예수님을 믿는 이들에게 똑같이 주어진 그 사명들,

    오늘도

    그 복음을 전하여 많은 열매를 남기는

    착하고 충성된 오늘 하루가 되기 원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아갑니다!






    • 이준원2017.03.24 12:54


      일부러 안했습니다!
      옛날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대사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의외로 우리의 생애에도
      이 못난 말,
      일부러 안했다는 말이 얼마나 많은 가를 생각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만 살수 있기를,
      그런 환경, 관계, 마음,
      믿음을 허락하소서!

      아멘!
      아멘!

    • 이혜신2017.03.24 16:02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김재준 목사님 장공 수필집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올려집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팔아 ‘판매왕’이 되려고 밤낮없이 노심초사勞心焦思하는데
      최고의 상품인, 복음~ “예수”를 판매하는 일은 그렇게도 못하느냐는......

      목사 안수 받은지 30년 가까이 되는데 오늘에사,
      아니 이 칼럼을 읽고서야 비로소
      달란트와 므나에 대해, 그리고 그 깊고 오묘한 말씀을 깨달을 수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저 목련꽃이 올해 핀 꽃인지요? 참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 이준원2017.03.25 19:34


        아이구, 또 방문해주셔서 댓글 달아주시니 감사드리옵니다!
        멀리 계시지만 늘 우암교회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그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저도 므나의 사명을 다시 마음에 새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실 이 사진은 작년 사진이지만
        목련꽃이 아마도 내일쯤이면 활짝 이런 모습으로
        피어날 것 같습니다.

        일단 피면 눈부시게 피는 목련꽃을 보면서
        우리
        신앙도 저렇게 목련꽃처럼 늘 화사하게
        만개했으면!
        하는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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