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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삭개오의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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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삭개오의 회심



    [눅19: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나가시더라 [눅19: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눅19: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눅19: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삭개오라는 이름은 '순결하다'(pure)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순결하게 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본문은 그를 '세리장이요'라는 말 다음에 즉시 '또한 부자라!'- 부자라고 붙여 그 앞에 세리장이라는 말과 연결을 시켰습니다. 암시적입니다. 즉 삭개오가 세리 노릇을 하면서 돈을 많이 착복해서 부자가 되었을 가능성을 지금 말하고 있습니다. 

    세리도 공무원이니 받는 월급으로만 족하면 될텐데 예나 지금이나 세리들은 그렇게 편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창기와 같이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실 세리가 창기와 같이 취급을 받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시의 세리는 로마제국의 세무공무원 시험에 붙은 고급 인력이요 고급 공무원이었습니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세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세무지식이 뛰어나고 어학 지식이 뛰어나고 두뇌가 뛰어나지 않으면 세무 공무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사실은 일반인들은 막상 세리 앞에서는 쩔쩔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뒤에서만 욕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 같은 민족을 탄압하고 세금을 강제로 징수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매국노의 전형이 되었습니다. 동족을 팔아먹고 로마에 충성하는 매국노였고 로마 권력의 앞잡이였습니다.

    삭개오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삭개오가 키가 작았다고 되어있습니다. 흔히 장애인 정도의 난장이라고까지 표현하는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자면 혹시 어렸을때나 성장과정 때에 마음에 맺힌 것이 있었을 지 모릅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천대를 당해서 오직 내가 성공하고 출세해야만 이것을 복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모질게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를 악물고 출세를 결심하고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 허전하고 텅빈 마음이 있었던 것을 성경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보고 싶어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

    더 이상 이렇게만은 살 수 없다!

    그의 내면의 소리가 그를 구원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에 밖으로 뛰쳐나와 보고 싶어했습니다.

    키가 작아서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이 니무는 지금도 삭개오의 나무라는 이름으로 여리고에 있습니다.

    명색이 권위 넘치는 세리장인데요, 세리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지금 염치불구하고 체면불구하고 예수님이 보고 싶어서 나무에 올랐습니다.

    평소 그를 싫어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을 뚫고 예수님을 보고 싶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학자 중에서는 이런 추측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던 세리 마태가 어쩌면 한때 함께 세무고시를 공부하고 세리로 활동한 동료였을 수 있는 삭개오에게 미리 예수님 애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도 이 곳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있으니 그를 전도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예수님께서는 삭개오를 보시고 부르십니다!

    삭개오야, 내려오라!!

    그리고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삭개오는 즐거웠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삭개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인정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눅19: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눅19: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삭개오가 있고 삭개오처럼 오해받고 미움받는 모습이 있고 그러나 삭개오의 순정이 또한 있다는 것을!

    모든 영혼은 좀 더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수군수군의 죄!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예수님께서 세리의 집에 들어간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눅19: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수군거림도 죄가 됩니다.

    [롬1: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로마서는 말하기를 그것이 상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합당치 못한 일이요, 사형에 처할 만한 죄라고 말씀합니다.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수군수군하는 것이 죄가 됩니다!

    큰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롬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고후12: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삭개오의 결단

    삭개오는 집에 예수님을 모셔놓고 결단의 고백을 드립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이며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갑절이나 갚겠다는 것입니다!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구약 율법에 따르면 이웃을 속였을 경우 오분의 일을 더하면 되었습니다.

    [민5:7]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

    그런데 5배나 네배로 갚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도둑질한 경우였습니다.

    [출22:1]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지금 삭개오는 자신을 도둑질 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갚기를 결단했습니다. 지금 삭개오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뿐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는 이웃과의 관계회복이 있을 때 진정한 회개가 된다.


    지금 삭개오가 자신을 비웃고 바라보고 있는 이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오직 예수님과의 관계만 맺었다면 예수님도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뿐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회복을 의미합니다. 그 결단에는 물질이든지 마음이든지 사과와 베품이라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삭개오는 그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웃과의 관계회복! 참된 회개는 나 혼자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회개했다고 하면서 이웃과 여전히 불편하다면 그것은 완전한 회개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무 기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언하십니다.

    삭개오도 오늘! 즉시! 지금! 그 결단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결단!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원합니다!


    [눅19: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눅19: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이준원2017.03.24 12:53


      내가 혼자 회개하고
      여전히 사람들과 불편하다면
      예수님께 크게 부담을 드리는 것이 됩니다.
      회개한 사람이
      여전히 불편한 사람이 많으면
      예수님도 그 회개를 부담스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의 은혜 앞에서 내가 치유받았기에
      모든 인간관계가
      아름답게 회복되고 변화되는 것에 있습니다.

      삭개오는 이 작지만 큰 깨달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