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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 팔복묵상 八福黙想> 5)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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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팔복묵상 八福黙想> 5)

    의義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를 외치는 자입니다. 정의를! 공의를!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하는 자입니다. 의로워져야한다고 절실하게 부르짖는 사람입니다.

    의(義)는 사회적, 공동체적 개념입니다. 관계적 개념입니다. 무인도에서 혼자 의로운 것이 아니라 집단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내가 지켜가는 삶의 태도와 자세의 문제입니다.


    의롭게 살기가 쉽지 않는 시대입니다. 손해를 보기도 하고 핍박을 당하기도하고 소외를 당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전과 큰 시야를 가지지 못한채 늘 개인적인 감상에만 빠져 나만 힘들다 어렵다 괴롭다고 이기적인 삶에만 집중하고 살면 이 사회는 점점 어두워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리고 목마른 심정으로 외치는! 정녕 이 사회가 정의로워져야한다!는 마음은 실로 거룩한 충동이요 품격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애쓰고 노력하는 이들은 반드시 배부르게 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역사는 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의 수고를 통해 발전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의(義)를 추구하는 것, 정의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성숙하고 책임있는 신앙인의 우선 순위입니다. 개인적 소원보다 더 앞서는 공동체적 넓은 시야의 책임입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먼저 구할 것이 하나님의 나라요, 그의 의임을 강조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되어야한다는 뜻입니다!
    [마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義)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이 의(義)의 문제는 평생의 고민입니다.

    쉽다구요?

    배가 뒤집혀 물에 빠졌는데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누구를 건지겠습니까? 어느 것이 정의입니까? 어느 입장에서 볼 때 누가 옳은 것이고 누가 그른 것입니까?

    촛불이 정의입니까? 태극기가 정의입니까?

    의리(義理)있다고 말합니다. 의로운 이치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고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조폭이나 깡패들의 의리라면 그들만의 의로운 이치일 뿐입니다. 악한 의리도 많습니다.



    옳은 것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상하게 들릴 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절대 정의는 없습니다. 절대적으로 한편만 옳은 것은 없습니다! 옳다는 것은 상대적 개념입니다.

    이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와 판단이 있을 뿐입니다.


    노회와 총회에서 생겨나는 분쟁을 목격한 어느 교회 중진 분이 저에게 묻습니다. 그분은 그런데 물들지 않은 분이라서 강직합니다. 말씀하기를 "총회나 노회에서 논쟁이 많고 토론이 많다니 정말 답답합니다. 옳은 대로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옳은 대로만 하면 될텐데, 정말 답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불행하게도 옳은 것이 없습니다. 옳은 것이 없으니 그른 것도 없습니다. 다 본인들이 옳다고 판단을 내리고 상대방이 그르다고 판단하고 하는 일들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무엇이 의(義)입니까? 누가 의로운 사람입니까?

    지금 마태복음 5장 6절의 의는 헬라어로 디카이오쉬네입니다.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공의(justice)’ 혹은 ‘정의(righteousness)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자기판단이 의롭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사실 세상적 정의(正義)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 개념입니다. 고대철학으로부터 이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붙들고 토론해왔습니다. 서로 정의롭다고 말하며 부딪힐 때 결정하는 세상적 정의(正義)의 정의(定意)는 다수(多數)입니다. 다수(多數)의 판단과 견해입니다. 다수결이 정의라면 다수결을 만들기 위해 여론조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의라는 판정을 받기 위해 설득하고 여론을 조성하게 됩니다.  

    다수결多數決이 정의이다!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끌었던 강의와 책이 있었습니다. 하버드대학 정치철학 교수인 마이클 샌델 (Michael J. Sandel)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 What's the right thing to do?)라는 책입니다. 1980년부터 하버드 대에서 진행한 '정의'(Justice)의 수업 내용의 대단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결론이 특별히 있겠습니까? 토론의 과정이 있습니다. 그 정의에 대한 정의는 플라톤때부터 이루어진 것, 즉 요약하자면 각성한 사람들, 깨어있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판단의 공통분모가 정의이다!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수의 지혜와 판단을 모은 공통분모가 정의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마이클 샌델 교수도 놀랄만큼 이 책과 강연이 한국에서만 그렇게 유난히 많이 알려지고 팔렸다는데 있습니다. 샌델교수 본인도 놀랄만큼 많이 팔렸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우리 한국의 혼란스러웠던 역사와 관계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편이 정의인지! 너는 누구편인지, 보수인지 진보인지, 남쪽인지 북쪽인지... 그것이 우리 역사의 불행한 정의 논쟁이었습니다!  이 민족의 혼란한 정치 역사 속에서 누구나 그 어느 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정의라고 믿는 편에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어느 편이라도 서야했습니다. 어느 편에 선다는 것은 곧 적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불편해도 그렇게 살아야했습니다. 그러면서 원수가 생기고 긴 세월 풀리지 않는 한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정의가 무엇인지, 정의가 누구 편인지, 정의로운 편은 과연 누구인지 판단을 해야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상황윤리적 결단의 문제가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누가 의로워져야한다는 것인가? 이 시대인가? 나인가?

    그런데 정의로워야한다는 것! 당연한 외침이지만 이것을 외치는 내 자신은 또 정의롭기는 한 것입니까? 누가 의로워져야한다는 것입니까? 이 시대입니까? 내 자신입니까? 이 6절의 말씀은 이 사회에 외치는 소리입니까? 아니면 내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입니까? 지금 6절의 이 구절을 대 사회 참여 정의 선언으로 보아야할 지 또는 내 양심의 의로움에 대한 내면의 각성의 외침이라고 보아야할지 해석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 구절을 10절과 연결시켜 본다면 이것은 이 사회 속에서 정의를 외치는 편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마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그러나 대 사회 정의 선언을 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할 것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지기 원하여 목이 마른 선한 갈망입니다. 주린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선 자답게 내 영혼의 의를 찾고 그 의를 이루기 위하여 애쓰는 것입니다!!

    [마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어쩌면 이 시대의 문제는 불의가 가득찬 정치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의로운 사람만 가득찬 것이 더 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불의한 사람은 하나도 없고 의로운 사람만 너무 많아서 문제일 수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내가 너보다 더 의롭다는데 모든 체면을 겁니다! 죄인이 한명도 없습니다! 

    제 친구 목사님 한분이 설교하시기를 ^^

    "죄 좀 짓고 오세요~~ 다 의인만 오셔서 내가 옳고 너는 나쁘다고 주장하시니, 우리 교회에도 죄를 좀 짓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은혜도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하셨다는^^ ㅠ



    "[하나님의 뜻]이 정의(正義)의 신앙적 정의(定意)이다!"

    "정의(正義)의 신앙적 정의(定意)"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문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나만 알고 또 내가 그대로 이루고 있기에 내 판단이 정의라고 생각하는데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착각을 수없이 통열하게 지적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의라고 착각하는 바리새인의 의(義), 자기 의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義)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리새인들의 의도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적어도 할 것은 하고 안할 것은 안하는 정도의 의로움은 있었습니다. 그 정도도 안되니까 이 사회가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할 것을 하고 안할 것을 안하는 정도의 바리새인의 의도 찾기가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런데! 그 바리새인의 의는 하나님의 의와는 달랐습니다. 자기 의였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는 정도의 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의였습니다.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義)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제사를 잘 드렸고 율법을 잘 지켰으나 긍휼이 없었습니다. 분명히 의로운 것 같긴 한데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함, 긍휼이 느껴지지 않는 자기과시의 의로움이었습니다.


    의로운데 영혼을 사랑하는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는!!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긍휼이 없는 의로움은 반드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자기를 과시하며 남을 멸시하게 되어있습니다.
    [눅18:9]또 자기를 의(義)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그리고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의가 아니라 세리의 의가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로움임을 강조하십니다.
    [눅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바리새인들의 의는 결국 하나님의 의(義)가 아닌 자기 의(義)였습니다.
    [롬10: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10:3] 하나님의 의(義)를 모르고 자기 의(義)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義)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새번역 성경 롬10: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의(義)는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의(義)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의(義)는 사랑을 의미한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사랑은 비논리적입니다. 그러나 그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랑이 바로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義)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진정 하나님의 의(義)를 내 삶에서 구현하며 살기 원한다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 앞에 참된 사랑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하나님의 진정한 의(義)가 시작될 것입니다.

    한문 풀이 중에 인상적인 것이 있습니다. 의(義)라는 단어를 풀어본 것입니다.


    의(義)

    의 (義)- 어린 양(羊) 밑에 나(我)

    제물고 십자가에 달리신 어린 양 예수님의 은혜 아래 내 자아가 자리해야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고백으로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오래된 연조를 자랑할 필요가 없습니다. 몇백년을 교회를 다녀도 "내가 죄인입니다!"를 고백해보지 못했다면 그는 예수님을 믿어본 적이 없는 것입니다. 믿는 것으로 스스로 착각하고 살아온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이 불의한 자가 의롭다 인정받았으니 더욱 겸손하게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의(義)를 붙잡고 모든 이웃을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의 정의는 바로 세워질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의(義)는 자기 의나 바리새인의 의가 아니라 은혜가운데 있는 참된 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합니다.
    의(義)[디카이오쉬네]는 헬라철학에서 말하는 정의, 공의, 도덕적 윤리개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 절대적 용서와 사랑의 은혜로 죄인된 내가 구원받았음을 인정하며 고백하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아래 있을 때에만 나는 의롭게되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정말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있는지 깊이, 깊이 물을 일입니다.

    나는 정말 내가 예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아야할 죄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상황윤리](situation ethics, 狀況倫理)를 쓴  죠셉 플레쳐(Joseph Fletcher 1905-1991)는 우리의 삶의 모든 판단 속에서 규명이 어려운 회색灰色 영역(The Gray Area)이 있음을 인정합니다. 지금은 최선이었는데 훗날 생각해보니 잘못된 판단이었을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숱한 판단의 오류를 범하고 살아가는 일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판단에 정말 영혼을 사랑하는 아가페Agape의 사랑이 있었는가가 결국 말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판단은 훗날 생각하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 정말 아가페Agape사랑이 있었는지, 그것이 결국 우리의 의를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복잡한 신학, 철학토론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의를 찾아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옳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옳은 것! 의로움을 찾아서, 선택해서 결정해서 가는 평생의 구도적 고민이 있을 뿐입니다! 

    정의는 사랑이 바탕할 때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참으로 비논리적입니다. 사랑이 없이는 해석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저는 종종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의(義)를 생각합니다. 아직 몰랐을 때 약혼녀가 남의? 아기를 뱃속에 담았으니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얼마나 분노하고 화가 났겠습니까? 그런데도 요셉은 덮어주었습니다. 성경은 요셉의 그런 태도를 의로웠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의로운 것입니까? 바보스러운 것입니까? 그런데 의롭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마1: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요셉의 의로움은 덮어주는 의로움이었습니다.

    요셉의 의로움에는 영혼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요셉의 의로움에는 마리아를 보호해주는, 영혼에 대한 긍휼이 느껴집니다. 그런 의를 우리도 추구합니다.




    주리고 목마름! 갈망으로


    ‘주리고 목마르다’는 말은 ‘그랬으면 참 좋겠다’는 갈망을 말합니다. 간절한 마음과 기도와 실천을 의미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국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원합니다'에 주리고 목마름이 있습니다!

    실천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의로운 정치, 경제, 나라, 교회, 가정이 되기 위해서 제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렵고 모르는 의 하지 말고 아는 의부터 실천해보면 좋겠습니다!
    기초(基礎)의무(義務)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의무(義務)-> 바를 '의'(義) 힘쓸 ‘무’(務)


    우리가 정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면,

    아는 의부터 실천하면 살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며 무시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고 용서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며 이해해주는 일,

    거짓은 멀리하고 진실을 붙잡고 살아가는 일...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부터 실천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알고 있는 의를 실천하는 것도

    그것도 쉽지 않기에,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언젠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는 스스로 만족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의에 배부를 것이며 정신적으로 흡족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사회적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가득하기를! 갈망하고 소원합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의 의를 품고 그 긍휼의 의를 실천하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아멘!

    아멘!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시는 주님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하소서 주의 길로 인도하사 자유케 하소서 새 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성령으로 채우사 주 보게 하소서 주의 임재 속에 은혜 알게 하소서 주 뜻대로 살아가리 세상 끝날 까지 나를 비추시고 새 날 열어 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내 잔을 채워 주소서


     


    • 이준원2017.03.24 12:51


      진정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것은
      요셉이 마리아에게 보여준 의,

      감싸줌과 불쌍히 여김과
      배려하는 사랑의 의일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義를 구하는 우리의 생애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봄날에 샬롬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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