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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갈릴리의 겨자꽃들

     

    예수님께서는 지금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여정에 있습니다.

    무서운 길,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꾸준히 병자를 고치시고 말씀을 전하십니다.

    먼저 제자들에게는 수난을 당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자들은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했다는데 있습니다.


    [눅18:31]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눅18:32]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겠으며 [눅18:33] 그들은 채찍질하고 그를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눅18:34]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취었으므로 그들이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


    그 말씀이 감취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들어도 안들립니다. 보아도 안보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마음이 없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무슨 의미인지 파악을 못합니다.

    어쩌면, 평생 그렇게 설교를 듣고 그렇게 보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선입견 때문에, 편견 때문에, 두려워서 또는 내 안의 심리학이 일부러 귀를 막은 형태일 수 있습니다. 특히 내 양심에 아픈 것은 외면하거나 내 헌신을 요구하는 부분은 더욱 외면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를,

    모든 주님의 뜻을 눈으로 직시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시면서 한 맹인을 치유하시는 기적입니다.

    [눅18: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눅18: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눅18: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눅18: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마가복음에서는 이 맹인을 바디매오라고 이름했습니다.

    '바'라는 말이 붙는 단어는 누구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디매오'라는 이름이 '청결치 않은' 이라는 뜻을 가졌다는 해석도 있는데 헬라어, 아람어, 히브리어 등의 여러 단어가 겹친 것으로서 '고귀한'이라는 뜻에 가장 가까운 것 같습니다. 만일 '디매오'가 '청결치 않은' 이라는 뜻이라면 어쩌면 아버지도 맹인 거지였을지 모릅니다. 슬픈 생애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또 '고귀한'이라는 뜻이라면 '고귀하다'는 이름과는 전혀 걸맞지 않게 살아온 힘든 생애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맹인이 모든 기도 중에서 가장 핵심 기도인 예수 기도를 지금 바치고 있습니다.


    [눅18: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 기도 Jesus Prayer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Jesus, have mercy on me


    이 기도는 영성기도 중 가장 짧지만 전통적으로 가장 유명한 기도입니다. 맹인이 아니래도 대통령이라도 왕이라도 목사님이라도 장로님이라도 그 어떤 이들이라도 결국은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구원의 문 앞에서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맹인은 그렇게 외쳤습니다.



    앞서 믿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방해가 되기도한다!


    [눅18:39] 앞서 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님을 만나야하는데 사람들만 보다가 예수님을 못보기도 합니다. 사람 구경만 하고 사람들의 큰 소리만 듣느라 예수님의 음성을 못듣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막아서서 예수님을 못만나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뜻밖에 먼저 믿은 목사님,장로님,권사님,집사님이 예수님을 가리워 정작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들만 만나다가 와서는 안됩니다.

    맹인은 큰 소리로 예수님께서 듣기를 원해 큰 소리로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소리르 뚫고 사람들의 주장을 뚫고 예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혹시, 앞서 믿은 나, 먼저 믿은 내가 예수님을 막고 서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아니, 나도 사람만 보고 믿으며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내가 내 자신이 직접 주를 만나기를 원합니다.

    특히 주일날, 교회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거룩한 접촉점이 반드시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18: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눅18: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물음이 새삼스러운 것 같습니다.

    무엇을 원하다니요? 당연히 눈을 뜨는 것을 원하죠! 그런데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눈은 안떠도 되니까 먹고 살만한 동전이나 금덩어리를, 눈은 안떠도 되니까 집한칸이라도...

    이미 체념해버린 꿈, 포기해버린 꿈, 안주해버린 삶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그 꿈을 묻습니다!

    우리의 기도제목도 막연한 것 보다는 구제척이어야합니다.

    오늘,

    나의 날마다의 삶 속에서 무엇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지, 

    내일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지,

    그것이 이루어지를 원하는 이유는 무엇이라는 것을,

    스스로 확인해보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맹인은 분명히 대답했습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믿음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습니다!

    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아나블레폰! Ἀνάβλεψον

    보아라! Receive your sight!


    지금 눈을 떠! 보아라!

    지금! 눈을 뜨고 보아라!

    지금 시력이 회복되어 보아라!

    그리고 맹인은 눈을 떠 보게됩니다! 


    [눅18: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눅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사실, 예수님의 은혜가 그를 구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은혜를 받을만한 믿음이 있는 맹인을 축복하십니다.

    은혜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그릇이 있어야받습니다!

    맹인은 그 축복을 받을만한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적 이야기의 마무리 부분은 가장 중요한 것을 설명하고 이씁니다!

    맹인은

    맹인이었던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눅18: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그리고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리도 눈을 뜨기 원합니다!

    그런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치유, 구원완성의 길을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아멘!!


    • 이준원2017.03.22 10:57


      들을 것을 들을 수 있게하시고
      볼 것을 볼 수 있도록 하소서!

      내 마음과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깨달을 지혜도 주소서!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