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손 안씻으면 지옥가는가?
    첨부파일 5개


    6번의 화있을진저!


     


    [눅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눅11: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이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점심식사 초청을 받아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논쟁이 시작됩니다. 종교적 관습과 신앙의 진실이 부딪히는 장면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식사 전 손을 안씻었다고 놀라고 이상히 여깁니다.

    물론 손을 씻으면 좋지만 씻을 수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고 이미 씻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씻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입니까?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정도일 뿐인데 바리새인들은 마치 손을 씻고 안씻고에 따라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는 것이라고 보는 정도로 종교적 관습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자기 논리에 집착하고 굳어 있었습니다.


    [눅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눅11:40] 어리석은 자들아 밖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눅11: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예수님께서 관찰하시고 판단하신 그들의 모순입니다. 말은 번드르하게 하는데 실제적 자기의 것을 내어놓아 구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그들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대접받는 것은 좋아했지만 자기 것을 사람들에게 쓸 줄을 모르는 인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내면에 섬김이 결여되어있었습니다.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라!  


    [눅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박하와 운향과 채소는 마태복음에는 회향과 근채라고 되어있습니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상당한 고가의 특용작물, 인삼 정도 된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채소는 그리 비싼 것은 아니래도 그들은 그것의 십분의 일, 십일조도 다 바쳤습니다. 그렇게 철저히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대단히 잘한 일인데 문제는 그 마음의 동기였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잘믿고 너보다 잘믿는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마음이 있었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보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버린 것'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었습니다.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는 그 십분의 일의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천하는데 마음을 쏟고 시간을 쏟고 정성을 쏟았어도 세상은 좀더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공의를 잃어버리고 사랑도 잃어버렸습니다.

    아니 스스로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의에만 집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도 분명히 정확히 그렇게! 드려야한다고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인정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자기 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중요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사랑을 버려서는 안된다고 분명히 또한 경고하십니다!


    손씻는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그것은 사실 정의의 문제가 아니었고 불의의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손을 안씻는 것이 불의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것을 비판하는 것은 사랑은 더군다나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관습에 안맞는 것, 자기생각과 달랐다는 것 때문에 지금 예수님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고집과 습관과 자기 믿음이 당신보다 좋다는 과시일 뿐이었습니다.

    종종 이런 문제들에 우리가 얽혀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기도시간에 눈뜨면 큰 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두손을 모으지 않고 무릎을 꿇지 않고 기도하면 큰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과장하자면 지옥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릎을 꿇는다고 천국가는 것은 아니며 눈을 뜨고 기도했다고 천국에 못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다 압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 하나님의 사랑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것!


     

    상석에 앉고 싶어하는 마음


    [눅11: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눅11: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높은 자리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한국처럼 상석이 따로 구분된 문화도 없을 것입니다. 유교문화의 흔적입니다. 물론 그런 관습에 정중한 예의도 담겨있어서 우리를 정서적으로 편안하게 할 때가 많지만 그것은 종종 권위주의의 상징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 관습에 너무 젖어 저도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부목사 때에는 어느 자리가 상석인 줄을 알아야했고 또 누가 더 높은 사람인지 알아서 모셔야되는 일이 참 피곤했었는데 이젠 저도 젖어가면 살아갑니다. 그리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자기 자리를 뺏긴 것이라고 생각되면 흥분하고 분노하고 또 기분이 상하며 살아갑니다. 자리! 자리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일까요? 젊은 이들은 어른에게 자리 양보를, 어르신들은 자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을 일! 자리집착을 버리면 좋겠습니다.


    [눅11: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율법교사가 항의합니다. 그렇게 느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강하십니다.

    여기에서 6번씩이나 화있을진저!를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충격요법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죽기까지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평생 기를 쓰고  내가 너보다 옳다! 내가 너보다 높다! 내가 너를 이길 것이다! 를 부들부들 떨며 붙들며 살아갑니다.

    제가 알던 어느 교회의 분란이 그렇게 심해서 노회에서 양측을 찾아가 양보를 권면도 해보았는데 콧김만 씩씩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논리와 고집에 집착하던 사람이 병원에 시한부로 입원해서는 갑자기 어린이처럼 순수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몇년 후 그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죽기 전에 달라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지금 6번의 화있을진저를 되풀이 하십니다.


    [눅11: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자기도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자기는 한손가락도 까딱하지 않는 율법교사들의 위선! 통렬하고 아픈 지적입니다. 특히 교회를 오래 다니고 가르치는 직분을 가지게 된 우리들의 모순일 수 있습니다. 너무 오래되어 이제는 모순일 줄도 모르는 모순일 수 있습니다.


    종종 유체이탈 화법을 듣습니다. 성경공부를 자원하여 인도하시겠다고 하셨던 평신도 한분, 어렵게 조심스럽게 맡겼는데 늘 명령조요 지시조였습니다. 영적권위를 가지려고 의도적으로 그랬는지 늘 '당신들은 그러면 안된다'고 지시하니 거부반응들이 많았습니다. 설령 영적 권위를 공식적으로 가진 교역자들이라해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적 설득법이 "이렇게 해야합니다."라는 지시화법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과 내가 함께, 그렇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라는 고백화법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본질은 가르치는 선생이 아니라 주님 앞에 서있는 구도자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눅11: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눅11: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눅11: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 [눅11: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눅11: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아벨과 사라랴, 죽임을 당했던 의인들!

    무지한 백성들의 자기 자존심과 집착과 분노와 열등감이 결국 예언자들을 죽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나는 자존심을 믿습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믿습니까?

    이것을 분명히 돌아보는 거룩한 성찰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내 고집과 자존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눅11: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눅11: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눅11: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있더라

    지식의 열쇠!

    성경은 참 많이 아는데!

    삶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적용되지 못했습니다!


    우리끼리니까 솔직히 한번 말해보실까요?

    여러분 정말 50-100년 가까이 예수님을 믿는 동안 정말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사는 목회자나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집사님을 얼마나 많이 보셨나요? 정말 인간의 감정은 하나도 없이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살던가요?

    예? 못보셨다구요? 엥? 솔직히 깨놓고 하나도, 한분도 못보셨다구요?

    아니 그게 뭐... 솔직한 겁니까? 여기 이목사도 있는데, 섭섭하구만유~~ ㅠ


    저는 그래도 믿습니다! 교우님들을 믿습니다.

    지식의 열쇠로 잠궈 놓고 나도 안들어가고 들어가는 사람도 막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당연히 약점도 있고 말도 때로는 한심하고 감정조절도 안되지만 그래도 들어가보면 다 그 속에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거룩한 씨앗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나오고 그러니까 모순을 품고도 새벽을 지키며 기도하는 그 영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차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모든 교인들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

    다만, 나는 평생 설교를 듣고 또 듣고 또 들어서 엄청난 지식의 열쇠뭉치만 가득 가득한데도 실제로는 내 인격이 못나서 못들어가도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나 않았으면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또 우리 모두의 기도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다시 기도할 뿐입니다.

    오늘 다시 내려놓을 뿐입니다.

    오늘 다시 사랑할 뿐입니다.

    주님께 맡기는 거룩한 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 평안 늘 충만하소서!








    • 이준원2017.02.28 09:02


      오늘 벌써 2월 28일, 2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번 한달도 열심히 살아오신
      우리 사랑하는 교우님들을
      축복합니다!
      수고 많이 많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3월의 멋진 매일에도
      충만하고 가득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샬롬!
      샬롬입니다!!

    새글 0 / 794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74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 [1
    2017.03.30
    73 < 팔복묵상 八福黙想> 6) 긍휼히 여.. [1
    2017.03.30
    72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그리고 내 것! [1
    2017.03.29
    71 그 돌에 부딪쳐 깨어져! [1
    2017.03.28
    70 "영혼 사랑의 진실성이 그 사람의 진.. [1
    2017.03.27
    69 백색 순교殉敎 White Martyrdom; 생활 순교 [1
    2017.03.27
    68 아무 것도 안한 너의 사고방식을 꾸짖는다! [3
    2017.03.24
    67 삭개오의 회심 [1
    2017.03.23
    66 < 팔복묵상 八福黙想> 5) 의義에 주.. [1
    2017.03.23
    65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1
    2017.03.22
    64 결단! 하나님께서 바꾸실 때 순종하는!! [1
    2017.03.21
    63 예수님은 나의 힘! 아름다운 생애를 만들어.. [1
    2017.03.20
    62 돌아온 나병환자; 천국은! [1
    2017.03.17
    61 실족, 용서, 믿음, 종의 자세 [1
    2017.03.16
    60 < 팔복묵상 八福黙想> 4) 온유한 자.. [1
    201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