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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성찰의 힘! 나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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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6장의 말씀은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같은 내용입니다.

    아픈 내용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오래 되어 이미 선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알 것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향해 외식外飾하는 사람들이라고 꾸짖으십니다!

    겉으로만 꾸민다는 뜻입니다!

    사고의 이중성, 인격의 이중성을 말씀하십니다.

    위선의 허울을 지적하십니다!


    [눅6: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눅6: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눅6: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구약에서는 예언자를 영어로 seer씨어- 보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진정한 선생은 보는 사람들이 되어야합니다. 사물의 허와 실을 보고 숨겨진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보지 못합니다.

    자기도 앞을 못보면서 왜 보는 척하고 다른 맹인을 인도합니까?

    신앙적 과시욕 때문에, 영적 허영심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잘 보는 것은 있습니다.

    남의 눈에 있는 티입니다.

    그런데 잘 못보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입니다.


    저도 설교하며 평생 느끼는 화법의 문제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요즘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때로 저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나를 빼놓은 채 "여러분, 이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되셔야합니다"가 아니라

    (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해야하는 것입니다.

    선생의 자리에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구도의 길을 걷는 동반자로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신서도 경고합니다.


    [딤전1: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약3: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은 내면 세계의 이중적 잣대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불편하고 평생 괴롭습니다. 논리적 일관성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힘의 논리, 대결의 논리와 사랑의 논리가 분별되지 않고 혼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훌륭한 영적 지도자들의 특징을 세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순수성, 일관성, 투명성입니다.

    순수성을 단순성이라고도 부르는데 생각이 복잡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신앙이 복잡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비전과 방향의 일관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일관성에 안정이 있습니다.

    인격과 삶이 투명한 사람입니다. 투명성에 신뢰가 있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철학의 기초가 있습니다. 네 자신을 알라!입니다.




    네 자신을 알라!

    Know yourself!  헬라어; 그노티 세아우톤!"gnothi seauton" ( γνῶθι σεαυτόν)


    세상의 철학도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을 사유의 기초로 삼습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사유思惟의 첫걸음입니다.

    그것은 또한 성찰省察의 힘이기도 합니다.


    성찰의 힘이 있어야합니다.

    자기 인정의 진실성이 있어야합니다.

    교정의 용기가 있어야합니다.

    내가 비교적 질투심이 많다거나 명예욕이 많다거나 욕심이 많다거나 핑계가 많다거나 하는 것들을 인정하기만 해도 그는 성찰의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기만 해도 그는 깨달음의 길 앞에 서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교정의 용기까지 간다면 더욱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성찰의 힘이 있고

    교정의 용기와 실천이 있을 때 그는 선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의 일치,

    그것이 우리를 열매맺게 할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이중적 사고방식과 가치관 중에 어느 것이 우위에 있느냐는 결국 그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증거가 됩니다.

    그의 내면은 표정으로 언어로 습관으로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말보다, 그것이 그의 진실이 됩니다.

     [눅6:43]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눅6: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눅6: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주님은 믿음의 주초를 놓은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즉 성찰의 힘을 가지고 교정의 용기와 실천을 비교하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개역한글 성경에는 주초柱礎(기둥의 기초)라고 나와있는데 개정성경은 그것을 한글로 바꾼 '주추'라고 기록해놓았습니다. '주추'는 한글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한문 주초柱礎에서 온것이기에 그냥 주초柱礎로 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집을 짓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눅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눅6: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눅6: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눅6: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처음부터 흙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파다가 파다가 반석이 나오지를 않으니 적당한 선에서 포기한 것입니다.

    결국 반석의 문제는 끝까지 자기 자신과 싸우는 치열함에 달려있습니다.

    끝까지 파느냐가 중요합니다.

    힘들어도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돌아보면 자기와 싸우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인격적 성격적 표정적 습관적 언어적 약점을 인지하고 교정의 용기로

    파내고 또 파내는 사람이

    마침내 반석 위에 집을 짓게 될 것입니다.

    그 집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행복할 것입니다.


    바울도 그렇게 노력을 했습니다.

    [고전9: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끊임없이 파내고 또 파내어 그것을 버리고

    진리를 스스로 납득하고 감사할 때 까지 노력하고 또 애쓰는 삶의 기쁨이 있기를 원합니다!



     

     


    • 이준원2017.02.10 10:53


      오늘 아침, 눈이 내리는 가운데도
      새벽을 지키신 사랑하는 우암 가족여러분께
      감사와 사랑을 드립니다!

      새벽기도 후 교회마당에 쌓인 눈을
      함께 치워주신
      장로님들, 또 남자권사님들...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흰눈같은 아름다움이
      늘 넘쳐나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도 많이 웃으세요!
      오늘도 열심히 사랑합시다!^^

      감사드리며,
      축복하오며!! ^^

      샬롬!
      샬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