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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위한 고민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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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6장에는 안식일 논쟁이 이어집니다.

    안식일날 밀밭에서 밀을 비벼먹은 것, 그리고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일입니다.

    [눅6:1]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눅6:2]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눅6: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눅6:4]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눅6:5]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그것이 안식일날 금지된 노동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꾸짖으십니다.

    그들에게서 사랑이 사라지고 믿음이 자기만 좋다고 과시하는 자기과시를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죄하고 싶어하고 판단하고 싶어하는 인간적 욕망을 보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잘지킨다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었으나 그러나 결국 율법을 죽이는 사람들이 되었고 하나님의 뜻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신앙이 권세가 되고 자기 의를 과시하는 것이 되면 주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정죄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는 의롭고 너는 틀렸다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사랑은 사라집니다.


    먼저 밀밭에서 밀을 비벼먹은 것은 너무도 시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제자들이 시장하여"(12:1)란 말을 첨가합니다. 제자들의 이러한 행위는 율법에서도 분명히 허락하고 있습니다.

    [신23:24]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신23:25]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신명기 율법에는 곡식을 추수할 때 땅에 떨어진 것은 놔두어서 고아나 과부나 나그네들이 먹을 수 있도록 했고 포도나무나 무화과도 싹쓸이해서 따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함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율법의 뜻이었습니다!


    [레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신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24: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신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하나님의 율법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지금 바리새인들은 훗날 생겨난 자신들의 잣대로 지금 제자들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을 비빈 것도 안식일 날 일을 한 것이으로 간주하여 안식일을 범한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사랑은 사라졌습니다. 형식만 남고 자기 의만 남았습니다. 신앙적 교만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무엘 상 21장에 나타난 다윗의 예를 들어 정말 어려울 때에는 성전 떡을 먹도록 허락하기도 했다고 가르치십니다.

    [삼상21:4]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그 소년들이 여자를 가까이만 하지 아니하였으면 주리라 하는지라 [삼상21:5] 다윗이 제사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참으로 삼 일 동안이나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떠난 길이 보통 여행이라도 소년들의 그릇이 성결하겠거든 하물며 오늘 그들의 그릇이 성결하지 아니하겠나이까 하매 [삼상21: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손마른 병자를 고치시는데 그것도 바리새인들은 날카롭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도 일하는 것이 되기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일으켜 세우고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병자를 고쳐주십니다.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 보다도 율법의 근본 정신인 사랑과 공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눅6:6]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눅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눅6:8]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눅6: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눅6:10]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눅6:11]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형식논리 때문에 잃어버린 사랑!

    바리새인들은 사랑을 잃어버린 형식논리자가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사랑은 죽어버리고 정죄와 판단만 남았습니다. 사실은 자기 과시였습니다. 자기들이 남보다 더 잘믿는다는 것을 과시하고싶은 자기의의 교만이었습니다. 법 논리에 얽매어 사랑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균형감각을 지킬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나도 모르게 내 믿음을 과시하며 교만하며 자랑하며 자기 의로 남을 정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을 위한 깊은 고민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이켜봅니다.


    회색(灰色)의 영역 (The Gray Area)

    [상황윤리](situation ethics,狀況倫理)

    죠셉 플레쳐(Joseph Fletcher 1905-1991)



    미국의 기독교 윤리학자인 죠셉 플레쳐(Joseph Fletcher 1905-1991)는 1966년 출간된 [상황윤리](situation ethics, 狀況倫理)에서 몇가지 판단하기 어려운 회색(灰色)의 영역 (The Gray Area)의  고민을 말한 바 있습니다.


    * 남극 탐험대가 길을 잃어 방황하던 중 한 대원이 중상을 입었는데 차마 놓고 떠나지 못해서 결국은 다 죽었는데, 이 때 그 대원을 놓고 나머지 대원들은 살아야했지 않는가?

    * 피난민들이 감시를 피해 탈출하고 있는데 아기가 너무 심하게 울어 그 입을 막다가 결국 아이가 죽었는데 그때 아기를 살려야했나? 아니면 아기를 죽여서라도 피난민들을 살려야했나 등의 까다로운 문제들입니다.


    저도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 성폭행으로 임신을 했는데 낙태해도 죄가 되지 않습니까? 저는 낙태라하라고 말합니다.

    * 중환자실 연명호흡기로 나머지 가족들이 탈진해서 돈도 소멸하고 다 지쳐있습니다. 저는 할 수 있으면 떼도 괜찮을 것 같다고 권면한 바도 있습니다.


    어렵습니다.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데 요셉 플레쳐는 중요한 한가지 말을 합니다. 누구도 판단하기 어려운 이 상황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

    이 모든 판단에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느냐 한가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동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만 의로운 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이들의 마음과 형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정말 깊은 마음으로 고민하고 고민했는지,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그 사랑을 이루는 일인지 고민했는지가 남는다는 것입니다. 남극탐험대도 어쩌면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그곳을 과감히 떠나는 것이 사랑이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나만 살겠다고 나만 의롭다고 과시하고 정죄하고 싶어했는지를 물어야할 것입니다.


    판단이 복잡한 모든 갈등! 사랑으로 판단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다시 사랑을 생각합니다.

    사랑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룩한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 이준원2017.02.07 08:44

      날씨가 아주 춥다고는 하는데
      이곳 청주는 아직 그런대로 따사함, 맑음이
      있는 아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의 가정마다
      그리고 마음마다
      안식을 주시는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더 좋은 일이 많을 줄로 믿습니다!
      샬롬!
      샬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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