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담임목사 칼럼
  

    신앙인은 이 땅을 사는 동안 행복하게! 아름답게! 충만하게! 웃으며! 열정적으로! 날마다 창조적으로 살아갑니다! 성공을 위하여 성취를 위하여 열심히 뛰기도 합니다! 신앙인도 때론 힘들고 때론 속상합니다. 그러나 신앙인이란! 그 모든 순간에 내 영혼 깊은 곳에 새겨진 그 인印, 그 자의식自意識, 나는 그 분이 던져주신 생의 의미를 찾아 풀고자 하는 구도자求道者요, 영원을 향해 떠난 순례자요, 진리의 별을 바라보며 여행하는 필그림Pilgrim이라는 것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자기의식이 있기에 구별되고 그래서 다릅니다. 신앙인은 그렇게 사는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변하지 못했던 슬픈 운명!
    첨부파일 5개

    가룟 유다변하지 못했던 슬픈 운명!



    가룟유다에 대한 많은 변명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고난을 일으키는 악역담당 역할론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결론은 결과적으로는 맞는 예정론일지 몰라도 과정적으로 볼 때 그는 의지적으로 예수님을 배반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변화를 거부하고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못했던 자의식의 소유자였습니다, 결국 유다의 문제는 변치 않는 자아의 문제였고, 아집의 문제였고,  그리하여 스스로 무너진 배신자였습니다.


    이 유다에 대한 평가는 이미 예수님께서 이미 판정하신대로 따릅니다.

    그는 마귀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었습니다!

    ☆[6: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의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6: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그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14:21)☆ [17:12]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유다의 이름 앞에 붙은 '가룟'이라는 이름에 대한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애국 암살단 Iscariot 이스카리옷의 단원이었다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유대지방 이름-그리욧(가룟이라는 지명으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이라는 지역 출신이라는 견해입니다. 요한복음 6:71절에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서 아버지에게도 가룟을 붙였으니 지역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기도 합니다. 다른 견해도 있습니다. 가롯이라는 말이 "가짜, 거짓말장이,위선자"를 뜻하는 "세케르"라는 아람어의 어근에서 나온 것으로 이 말이 당시 아람어를 사용하던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배반자를 부를 때 사용한 별명이었다는 견해입니다.


    유다는 처음에는 신뢰를 받아 세리출신인 마태를 제치고 재정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배신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겼다고 하는데 구체적인 배신의 죄목이 무엇입니까? 성경에서는 단 두가지 뿐입니다.


    유다의 죄목? 겟세마네 동산의 길을 가르쳐주고 얼굴을 가르쳐 준 것!

    어두운 밤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준 것과 그리고 예수님의 얼굴을 분별하기 위해 그 얼굴에 키스하여 신호를 삼은 것이었습니다.

    [1:16]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지로指路)>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26:47] 말씀하실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26:48] 예수를 파는 자가 그들에게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으라 한지라 [26:49]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26:50] 예수께서 이르시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하신대 이에 그들이 나아와 예수께 손을 대어 잡는지라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유다가 마음 속에서 예수님을 배신하고 있었다는 데 있습니다.

    마음의 배신이 더욱 큰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떠나지 않고 예수님을 음해했던 것도 더 큰 문제였습니다!!



    가룟유다를 가장 잘 나타내는 사건; 향유 옥합과 300데나리온 사건


    예수님과 가장 강하게 부딪힌 장면이 있었습니다.

    300데나리온 향유사건에 대한 견해 차이였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여러개 나타나는데 요한복음은 바로 가룟유다를 직접 지적합니다.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2:6]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마태복음 26장은 바로 이 사건 직후에 가롯 유대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고 기회를 찾았다고 말합니다.

    마가복음 14장도 이 사건 직후에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으로 서술합니다.

    [막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막14: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막14: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이 사건 직후에 가룟유다는 예수님께 실망했든지 아니면 예수님께 심하게 꾸짖음을 들었든지 그의 마음에 배신의 결단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유다 나름대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을 다시 생각합니다.

    300데나리온을 간편하게 3천만원으로 생각합니다.

    큰 돈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도와야한다고 가룟유다가 외치고 여인을 비난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

    어떻게 이 말씀을 이해하십니까?

    가룟 유다만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이나 다른 제자들은 지금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입니까? 가룟유다가 훨씬 상식적으로 보이고 의로워보이고 판단력이 정의로워보입니다. 재정스트레스가 혹시 쌓였던 것일까요?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다!

    [막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막14: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룟유다야, 무슨 큰 일하는 것처럼, 혼자 정의롭고 혼자 인정이 가장 많은 것처럼 이 '가난한 여인'을 힐난하지 말고  남의 돈으로 자기가 선심쓰려고 하지도 말고, 이 여인의 옥합 때문에 네가 흥분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네 곁에 있어 도우려고만 맘먹으면 너무 많을테니 평생 네 말처럼 네 마음처럼 도우며 살아라! 그렇게 이해합니다.

    도우려면 언제든지 내 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많습니다. 도와야할 가난한 사람들은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가난한 자를 돕고 싶다면 바로 옆에 있으니 자기 돈으로 할 수 있는데까지 도울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정녕 지금 이 여인이-아마도 가룟유다가 말하는 가난한 그 여인이- 애지중지 간직하던 그것을 깨뜨리지 않을 수 없었던 마음은 이해하고 있었을까요?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가룟 유다가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누가 가난한 사람인가요? 이 여인은 가난한 여인인가요 부자인가요? 가룟유다는 지금 누구를 향해 어떤 가난한 사람들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요? 이 여인, 아마도 정말 가난했을 이 여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던 것일까요?

    어느 부목사님 한분이 했던 명언을 기억합니다.

    "교인들은 헌금을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둘 중의 하나만 합니다."

    ( 헌금을 하지 않는 사람일수록 불평불만 말이 많고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은 오히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ㅠ사정이 있겠지요~~)


    그때부터 가룟유다는 예수님을 마음으로 떠났던 것 같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이용했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 이유가 자신의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 즉 세상을 바꾸고 혁명운동을 하는 것이었다면 그도 괴로웠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만 하는 예수님! 그렇다면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생각으로 바뀔 수는 없었을까요?

    어느 사극 드라마에 그런 대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멋있어서 인용합니다^^)

    네 속에 벌레가 있다! 그 벌레가 너를 삼키고 말 것이다!”

    아마도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벌레가 자라고 있었던 듯합니다.



        가룟유다가 변하지 않은 것, 변하지 못한 것은 누구 책임인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하지 않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하면 예정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유다를 통하여 구원의 역사가 부분적으로 일어났을지 모르지만 변하지 않은 것, 배신자의 길로 들어간 것은 유다의 책임입니다.

    유다는 정말 정의롭고 솔직한 사람입니까?

    정말 유다가 솔직했다면 그는 자기 사상을 따라 뛰쳐 나와서 아예 바라바처럼 투쟁운동을 해야했습니다. 그는 솔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솔직하기 보다는 이중적인 마음을 품고 있었던 위선자였습니다. 나아가 그는 은근히 제자들에게도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는 척, 자기의 의를 과시하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려고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변하지 않은 것은 변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기 자신의 책임입니다!

      

    본인의 책임! 그 자유의지(自由意志 Free Will)의 무서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기지 못했다!



    생각관리에 실패한, 생각을 다스리지 못한 유다!

    [요13:2]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13: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유다가 버림받은 것은 그의 속에 악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악한 것에서 끝까지 돌아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날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신했으나 회개했고 가룟유다는 후회했으나 회개에 이르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고 말았습니다.


    회복에 성공한 베드로, 회복에 실패한 가룟 유다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27: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7: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베드로도 배신했습니다.

    가룟유다도 배신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배신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회개했고 가롯유다는 후회에 그쳤습니다.

    베드로는 회개의 결단을 통해서 새로운 결심으로 부끄러운 과거를 지워나갔고 가로유다는 후회하면서 스스로를 무너뜨렸습니다.

    아래 헬라어에 차이가 있습니다.

      μεταμέλομαι 메타멜로마이

    (후회 後悔 regret 가롯 유다- 스스로 뉘우쳐; 후회 속에 무너진 생)


    μετανοίας 메타노이아

    (회개 悔改 repentance- 베드로; 의지적 결단- 새로운 삶의 시작!)


    메타노이아는 새로운 출발을 뼈를 깎는 심령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와의 싸움,

    버림,

    비움,

    내려놓음,

    감당함,

    끝까지 이 결심을 지킴...

    은혜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기도합니다.



    • 이준원2017.01.26 16:48


      맨 윗 동영상은 유명한 Jesus Christ Superstar에서
      유다의 죽음 부분입니다.

      아래 "예수 나를 오라 하네"와 겹칠 수 있으니
      하나는 중지시키고 들으셔도 좋겠습니다^^

      12제자의 마지막 시간,
      베드로부터
      가룟유다에 이르기까지
      우리 속에 있는 그 모든 모습들,


      다시
      제자의 사명을 기억하고
      감당하는
      생애가 되기를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며....

    새글 0 / 768 

    검색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48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기 원합니다!! [1
    2017.03.02
    47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1
    2017.03.01
    46 손 안씻으면 지옥가는가? [1
    2017.02.28
    45 "하나님의 직지直指! 시대와 영혼에 .. [1
    2017.02.26
    44 네가 어떻게 읽느냐 [1
    2017.02.24
    43 제자들도 기뻐하고 예수님도 기뻐하시고! [3
    2017.02.23
    42 < 팔복묵상 八福黙想> 2) 심령이 가.. [1
    2017.02.22
    41 사람을 만나러 가라! 가거라! 그것이 너의 .. [1
    2017.02.22
    40 아브라함 레크 레카! לך-לך 네 자신에게로 .. [3
    2017.02.21
    39 비전Vision은 나의 힘, 우리의 힘! [3
    2017.02.21
    38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누가복음 8:16-25 [1
    2017.02.15
    37 Slain in the spirit! 성령 안에서 죽다!! [1
    2017.02.12
    36 성찰의 힘! 나를 돌아보다! [1
    • 3829_Sunshine-over-snow-covered-trees-HD-wallpaper.jpg

      다운로드

    • 9183_Sunny-winter-day-white-field.jpg

      다운로드

    • 9269_Spring-blue-flowers-in-the-white-snow-Wonderful-nature.jpg

      다운로드

    • 9273_Wonderful-yellow-flower-grows-from-the-snow-HD-wallpaper.jpg

      다운로드

    • winter-snow-mountains-and-trees-white-scenery-dazzling-sunshine-2K-wallpaper-middle-size.jpg

      다운로드

    2017.02.10
    35 힘의 논리와 사랑의 논리 [1
    2017.02.09
    34 < 팔복묵상 八福黙想> 1) 서론 [1
    2017.02.08